“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라고 했다면 ‘이런 일’이 어떤 일인지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된 해결책과 대안을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관련 사진만 봐도 충분히 괴로워서 언론이 알려주는 사실 말고는 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식에 참여하러 가는 길에 이 책을 샀다.

색인까지 해서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기록물인 이 책은 정치적 의견을 피력한 책도 아니고 남은 가족들의 육성을 전하는 책도 아니고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봤던 시민으로서의 반성문도 아닌, 순수 기록물이다. 그러나 이 책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처럼 배가 급변침하는 순간부터 완전히 가라앉기까지 약 두 시간에 걸쳐 일어난 모든 팩트를 배 안에서, 해경의 처지에서, 회사 측과 그 문제 많은 배를 출항시키기까지 관여한 인허가 기관 및 관리·감독 기관들의 행적 그리고 사고 후 활약해야 했던 각 관제센터 시각에서 시간순으로 반복 기술하고 있어서 마치 잘 만들어진 재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분노와 성찰의 자세로 눈 부릅뜨고 보다가도 아이들 카톡 내용이 기술된 곳에선 속절없이 무너져 한참을 소리 내어 울다가 다시 책을 집어들기를 반복했다. 싸울 대상이 명확하다면 전의를 불태우며 차라리 신이 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실들’을 접하고 나니 알면서도 겁이 나서 도망갔거나, 들었지만 책임질 일이 무서워서 위증을 하거나, 눈앞의 돈을 위해 작은 비리쯤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모른 척했던 이 책의 수많은 등장인물들, 즉 어느 하나만 빠졌다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한나 아렌트가 말한 그 ‘평범한 악인들’ 중에서 내 모습을 발견했기에 감당하기 힘들 만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
진실의힘 세월호
기록팀 지음
진실의힘 펴냄
세월호 참사 책임자 처벌과 진상 규명 그리고 선박 인양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내재돼 있는 안전 불감증과, 모든 ‘찜찜한 일들’을 관행과 통상적 분위기로 치부해버리는 비리 불감증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이런 사고는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 미련하기 짝이 없고 비겁하기 짝이 없던 사고 관련자들이 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진 그저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었기 때문이다. 척박한 여건 속에서도 진실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사명감으로 이 잔인한 시간들과 행적들을 일일이 찾아내 책으로 옮겨낸 ‘진실의힘 세월호 기록팀’에 격려와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배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에도 학생들과 승객들이 온 힘을 다해 위로 밀어 올려준 덕에 살아남은 권 아무개 양이 10년 후 별이 된 아이들만큼 자랐을 때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는 이들의 후기는 기록이 지니는 숭고함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기자명 오지혜 (배우·방송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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