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오늘보다 맛있을 거야
  • 신윤영 (<싱글즈> 디지털스튜디오 팀장)
  • 호수 485
  • 승인 2017.01.06 10: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통 ‘독서를 한다’고 할 때, 요리책 읽는 것은 독서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정말 즐겁고도 진지하게 읽는 책 중 상당수가 요리책 혹은 요리에 관련된 책이다. 그래서 오늘도 요리책을 한 권 소개하려 한다. 제목은 <요리하기 좋은 날, 오늘의 요리>.

이 책의 저자는 현대미술을 전공한 후 패브릭 브랜드를 운영했던 사람으로, 취미로 하던 요리가 SNS에서 화제가 되며 요리책을 내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실린 요리의 면면도 아주 어렵거나 복잡하다기보다는 일상식으로 가볍게 해먹기 좋은 것들이다. 모둠솥밥·바지락수제비 같은 식사, 해물쌈장이나 치킨가라아게 같은 반찬(혹은 안주), 오코노미야키나 해산물 파에야 같은 별미 등 요리가 취미라면 이미 해봤거나 할 줄 아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즐겁게 읽었다. 이 책이 구석구석 아주 예뻤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들 먹고사느라 고단하다. 그러다 보니 요리는 종종 취미의 영역을 벗어나 버거운 가사노동이 된다. 구구절절하고 고단하고 가끔은 해치우듯 해내야 하는 서글프고 처연한 숙제, 급히 때우는 한 끼, 요리라는 가사노동을, 이 책은 음전한 판타지처럼 다루고 있다. 버섯들깨매운탕을 손바닥만 한 스타우브 베이비웍에 담아냈고(실제로는 그렇게 작은 냄비에 탕류를 끓이기 어렵다), 오징어콩나물국은 수프 그릇에 담아 한 세트인 접시로 받친 후 그 아래 북유럽풍 식탁보를 깔았다(밥 없이 국만 먹는다고 생각하면 아주 말이 안 되는 세팅은 아니다). 총 4쪽에 걸쳐 다룬 ‘파인애플볶음밥’ 중 레시피가 실린 것은 단 1쪽으로, 심지어 어느 페이지에는 클로즈업한 파인애플의 잎사귀 사진 한 컷만 커다랗게 실려 있다. 사진의 구도에서도 ‘요리를 잘 보여주겠다’보다는 ‘근사한 사진을 찍겠다’는 의도가 명백하게 느껴진다.

<요리하기 좋은 날, 오늘의 요리>
홍서우 지음
비타북스 펴냄
이 책은 어떤 사람들에겐 딱히 도움이 안 되는 요리책일지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이 책이 좋았다. 유난히 낙담할 일이 많았던 올해, 의욕이 바닥을 칠 때마다 습관처럼 이 책을 펼쳤다. 1년 내내 평균기온 15℃ 근처일 것 같은 책 속 세상을 한참 구경하다 보면 ‘슬슬 요리 좀 해볼까’ 하는 의욕이 생기곤 했기 때문이다. 손 하나 까딱하기 싫었던 어느 토요일에는 냉장고에서 상하기 직전이던 토마토와 오이를 꺼내 그릭샐러드를 만들었고, 어느 밤에는 갑자기 놀러온 애인을 위해 냉동실을 털어 감바스알아히요를 만들었다. 그리고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금요일에는 맥앤치즈 레시피를 응용한 콘버터 오븐구이로 조촐한 자축의 맥주를 한잔했다. 일상에는 판타지가 필요하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지리라, 같은 판타지도 그중 하나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