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바람처럼, 이 책은 백신이다. 다만 후유증이 혹독하다. 지금까지 많은 작품 속에서 형상화한 악인들 중에서도 ‘유진’은 단연 압도적이다.

전작들을 통해 악인을 진화시켜온 작가 정유정은 이 책의 ‘유진’에 그 방점을 찍었다. ‘악’을 상상하고 표현하는 것을 고집해온 작가가 이번 작품의 주인공을 드러내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고민했는지 상상하니 애처로운 마음까지 든다.

흡인력 있는 서사의 대가 정유정 작가의 팬이었던 내가 영화 〈7년의 밤〉으로 특별한 연을 맺게 된 후 더욱 기다려온 신작이다. 순식간에 읽히는 흐름 뒤에 날카로운 메시지를 담는 정유정의 색이 매우 짙게 배어 있다.

‘군도신도시’와 작가의 전작 속 가상 도시들을 연결 지어 상상하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이다. 가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현실적이고 섬세한 정유정식 세계관의 연장선이다. 현실에 가깝게 빚어내고자 번뇌했을 작가에게 그저 존경심을 표한다.

〈7년의 밤〉의 현수나 영제, 〈28〉의 동해는 행동의 기저 심리를 짐작하는 것이 가능했던 반면, 〈종의 기원〉의 유진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이해하기 버거운 인물이다. ‘유진’을 통해 그려진 ‘존재의 악’은 간담이 서늘하다가도 어딘가 처연하다.

작가는 이 책으로 호소한다. ‘악’은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찾아가는 불운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존재라고, 추하고 불편해도 내면의 악을 직면하고 관찰해야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고 자아를 지배하려 할 때 맞서 싸울 수 있다고 말한다.

유례없는 시국 때문에 읽기가 너무 무거운 책일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생의 희망을 꿈꾸기 위해서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은행나무 펴냄
맞아야 하는 백신 같은 책이다. 이 책은 나에게 영혼을 해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숙제를 남겼다.

다음은 정유정 작가의 말이다.

“인간은 생존하도록 태어났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는 진화 과정에 적응해야 했고, 선이나 악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선과 악이 공진화했으며, 그들에게 살인은 진화적 성공, 즉 경쟁자를 제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이 무자비한 ‘적응 구조’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우리의 조상이다. 그에 따르면 악은 우리 유전자에 내재된 어두운 본성이다. 그리고 악인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누구나일 수 있다.”

기자명 류승룡 (배우)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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