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시대에는 권력을 가진 무사나 정치인이 사람 목숨을 간단히 빼앗을 수 있었던 만큼 개·돼지 취급을 받은 이들이 똘똘 뭉쳐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많다.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덮어놓고 읽는다.

문제는, 일에 집중할 만하면 불쑥불쑥 등장하는 낯선 단어로 인해 매번 애를 먹는다는 거다. 〈유곽 안내서〉를 예로 들자면 요시와라(에도 시대에 존재했던 대규모의 유곽)니, 오이란(요시와라 유곽의 유녀 중에서 등급이 높은 유녀를 가리키는 말)이니 하는 말이 첫 장부터 빈번하게 등장해 헤매고 말았다. 이럴 땐 모르는 용어 따위 제쳐두고 이야기의 흐름을 졸졸 쫓아가는 편이 내 체질에 잘 맞는다. 〈성문종합영어〉 해석하듯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며 읽다가 지쳐서 몇 번이나 나가떨어진 끝에 익힌 노하우다.

게다가 이 소설은 소재가 독특해서 중간에 지체할 시간도 없었다. 거문고·샤미센·다도·꽃꽂이·서화·시조 등을 전문가에게 사사받는 것도 모자라 대개의 오이란들이 3년에 걸쳐 익히는 모델 워킹을 단 1년 만에 숙지한 천재 오이란의 실종 사건을 다룬다. 그녀는 그냥 천재가 아니라, 뭇 남자들을 쩔쩔매게 만드는 박력, 고용인까지도 깍듯하게 ‘님’자를 붙일 만큼의 카리스마, 질투와 시기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유녀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한 그곳에서 주변 사람을 몽땅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포용력까지 겸비한 천재다. 한마디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고, 그런 만큼 사라진 방법도 거의 〈알카트라스 탈출〉 수준이다. 당연히 유곽을 몰래 빠져나가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이 정도로 유명한 오이란이라면 어디서든 눈에 띄기 때문에 혼자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곽 안내서〉
마쓰이 게사코 지음
박정임 옮김
피니스아프리카에 펴냄
그렇다면 대관절 그녀는 어떻게 연기처럼 사라진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품고 유곽을 찾은 누군가가 신조(오이란 옆에서 시중을 드는 여자), 반토신조(오이란의 매니저 역할을 했던 여자), 후리소레신조(유녀 견습생) 등을 차례로 만나 실종 사건의 전말을 풀어나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터뷰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인터뷰한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말할 수 없다. 이런 종류의 소설은 읽기를 마치기 전까지 ‘도대체 왜’라는 궁금증을 얼마나 증폭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니까 소개하는 쪽에서도 그 부분을 신경 쓰게 된다. 그러다 보면 온통 ‘말할 수 없다’는 것투성이지만 이 이야기의 교훈이라면 얘기해버려도 괜찮을 것 같다. 그것은 ‘여자든 남자든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칭찬이랍시고 남의 외모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마침맞은 소설이 아닐지.
기자명 김홍민 (북스피어 출판사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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