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동상이라는 장르를 통해 공공 장소에서 공론장의 소통 기제로 작동하는 공공미술의 존재방식을 알려준다. 동상(銅像)은 동(Bronze)으로 만든 기념인물상을 통칭한다. 돌이나 철·시멘트·플라스틱·알루미늄·나무 등 다양한 소재로 기념인물상을 만들곤 하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동으로 만든 인물상이 모든 기념인물 조각을 대표하는 보편명사로 쓰이곤 한다. 필자는 이런 점을 감안해 ‘한국 근현대 인체조각의 존재방식’이라는 부제를 달아서 이 책이 기념인물상 전반을 다루고 있음을 밝힌다.

동상의 주인공은 ‘현실 속으로 소환된 과거 인물’이지만, 그는 자기 소임대로 ‘오늘을 말하는’ 현재의 인물이다. 거리와 광장, 학교, 공원 등 도시 곳곳에 들어선 동상과 함께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사람들에 관한 기억을 축적하고 그것을 한 시대의 정신적 가치로 나눠 갖는다. 이순신 장군과 유관순 누나, 그리고 이승복 어린이 동상은 충성과 반공 정신을 일깨우며 대한민국 국민을 묶어주는 메신저 구실을 했다. 동상으로 통칭하는 기념인물상들은 위대한 인물의 영웅적 서사를 시민·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공공영역의 상징물로서 국민·시민의 공유 기억을 직조하는 문화정치의 장이다.

공공미술이 문화정치의 핵심으로 꼽히는 이유는 그것이 통치자의 의지에 따라 공론장을 좌우하는 문화적 소통의 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 세종로에는 세종대왕 대신 충무공이 존재했다(광화문 세종대왕상은 2009년 10월9일 건립). 1968년 애국선열조상위원회 이름으로 이뤄진 일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자신의 정당성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무신 이순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충무공에게 세종로를 내

〈동상:한국 근현대 인체조각의 존재방식〉조은정 지음다할미디어 펴냄
준 세종대왕상은 덕수궁에 자리를 잡았으니, 공공장소 기반의 예술이 통치이념에 따라 장소성 해석을 달리했던 그 시절, 권력과 동상의 존재방식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술사가이자 미술평론가인 필자 조은정은 한국 근현대 동상들의 연대기를 꼼꼼히 소개한다. 20세기 초반 배재학당 설립자 아펜젤러를 비롯해 많은 일본인들, 그리고 드물게 민영휘 등과 같은 조선인 인물상이 등장했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한국 최초 근대조각가 김복진을 비롯해 윤효중·김경승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공공미술의 계보도 훤히 드러난다. 6·25 전쟁 이후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을 지나면서 본격화한 동상의 문화정치는 애국·충성·반공·근면 이데올로기를 창출하며 예술공론장을 주도했다. 우리는 동상과 함께 부지불식간에 시대정신을 소비하며 ‘20세기라는, 이데올로기 충만한 한 시대’를 지나왔다.

기자명 김준기 (미술평론가·제주도립미술관 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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