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잘 쓰인 다큐멘터리 각본과 같다. 건축보다는 오히려 정치·사회·문화 쪽에 가깝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건축이란 결국 우리의 생각을 담는 것, 그래서 후대의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그럼으로써 스스로 문화가 되고 문화를 이어주는 것”이라 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 연결점을 상기시켜, 건축을 스스로 고립된 고상한 어떤 것이 아니게 한다.

게다가 흥미진진해서 단숨에 읽힌다. 종묘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집트의 하트셉수트 장제전과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바티칸의 피에트로 광장과 영국의 로열 크레센트를 불러낸다. 그러고는 단순 명쾌하게 신성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류가 동서고금을 통틀어 발견한 가장 위대한 방법은 ‘기둥을 줄지어 세우는 디자인’, 즉 줄기둥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줄기둥 디자인 범주에 속하는 조선의 대표 신성 건축물 종묘는 네 번에 걸쳐 증축되다가 왕조의 멸망과 함께 그 성장을 멈추었다. 조선은 자국 최고의 건축물을 단번에 가장 크고 웅장하게 짓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증축하는 방식으로 가꿔나간 유일한 나라”였고, 종묘가 위대한 건축이 될 수 있는 것은 이 건물에 담긴 이런 독특한 생각,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Only.1)’의 문화적 가치에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경복궁이 더 이상 자금성의 축소판이 아니라 진정 독특하고 아름다운 조선의 궁궐이라는 점을 수긍하게 된다. “힘을 바탕으로 위계를 만들어야 하는 중국과 달리 조선은 왕권과 신권이 때론 견제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정치 문화였고, 강력한 시각 연출로 주변 나라에게 조공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으므로 특별한 효과를 억지로 집어넣을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라며, 저자는 조심스럽게 경복궁의 열쇳말로 ‘덕의 건축’을 내민다.

〈세상에서
가장 큰 집〉
구본준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결코 쉬운 이야기가 아닌데도 쉽게 읽히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어보다는 구체적인 사실과 사실들의 연결 및 상세 묘사 덕분이다. 더불어 살아 있는 낱말들을 접하는 재미 또한 빠트릴 수 없다. 비문화적 건축물의 대표 사례로 꼽은 독립기념관 묘사에 나타난 저자의 진지하지만 귀여운 분노를 증거로 제시한다. 동양 최대, 세계 최대에 ‘환장’한 ‘마인드가 형편없는’ 권력자들이 거대 건축을 통해 자신의 힘을 보여주려고 ‘헛소리’를 가끔 하는데, 그 건설 과정은 대체로 ‘한심’하고 시공 완성도는 ‘개판’이 되어 결과로 남겨진 건물은 문화 융성은커녕 덩치만 부풀린 ‘추물’이 되어 볼 때마다 괴롭다. 따옴표 안의 낱말은 실제 이 부분에서 인용했다. 건축 전문기자로서 너무 일찍 떠난, 고 구본준 기자의, 우리 시대 거대 건축에 대한 ‘사이다 발언’이다. 구 기자 특유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기자명 김주원 (건축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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