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시작하자.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한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독자 리뷰를 먼저 읽었다. 우리는 왜 ‘가방끈이 길어질수록 가난해지는가’라면 몰라도,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라는 제목은 요령부득이라는 내용이었다.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는 학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성공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니까. 그런데 정말 그런가?

요컨대 두 가지 공부가 있다. 먼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공자님 말씀으로 대표되는 공부. 그것은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인 공부, 삶을 살아가며 멈춰서는 안 되는 공부다. 이때 공부는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공부하고, 공부하기에 인간인 것이다. 원한다면 그것을 ‘진짜’ 공부라고 해도 좋다.

ⓒ연합뉴스빚을 내어 대학을 다니지만 빚 갚을 방법은 없는 ‘부채 세대’가 탄생했다. 위는 한 대학의 입시설명회에 모인 학부모들.
다음은 현실적인 의미에서의 공부다. 초·중·고교 12년 동안 우리가 하는 공부. 대학교 4년(실제로는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우리가 하는 공부. 그것은 시험을 위한 공부, 돈으로 바꾸기 위한 공부다. 이때 공부는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된다. 우리는 먹고사는 데 필요한 ‘라이선스’를 얻기 위해 인생의 어느 시기를 치열하게 공부하며 보내야 한다. 다시 말해, 그 시기를 지나면 더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 대학에 가기만 하면 애인이 줄을 서고 뭐든지 맘껏 할 수 있다던 담임선생님의 말씀은 단적인 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부는 후자다. 그것이 초·중·고교를 다니며 우리가 배우는 것이고,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다. “모두가 대학에 가지만,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그리고 대학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을 하지 않는 사회”에서 학생들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대학이라는 이름의 취업 전문기관을 향해 떠밀려 갈 수밖에 없다. 이때 일류 대학은 더 나은 직업을 위한 사다리가 된다. 이런 현실에서 ‘진짜’ 공부 운운하는 뻔한 당위는 자칫 공허하기 쉽다. 잘못된 것은 시스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학력주의가 뿌리 깊은 한국 사회에서 ‘가방끈’과 ‘공부’는 한 번도 다른 말이었던 적이 없다.

문제는 그 시스템조차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서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던 시대는 외환위기와 함께 끝났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에서 ‘IMF 체제’의 효과는 국가·가족·학생들에게 대학만이 살길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났다(‘신학력주의’). 국가는 ‘교육 기회의 평등’을 실현한다는 목표 아래 학자금 대출 제도를 마련하고, 대학에 고급인력 양성을 위탁함으로써 그 비용을 학생들이나 부모가 부담하도록 했다. 대학 등록금이 오르니 빚을 지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 과정에서 대학생은 ‘채무자’라는 하나의 계급으로 출현하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빚을 내고 대학을 다니며 더 많은 빚을 내야 하지만 빚을 갚을 방법은 없는 ‘부채 세대’가 탄생했다.

ⓒ연합뉴스〈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는 신학력주의와 학생 채무자를 양산해내는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헤친다.
저자는 실제 채무 당사자이자 부채 연구자로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신학력주의와 학생 채무자를 양산해내는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헤친다. 상세한 숫자와 함께 제시되는(일례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등록금이 비싼 한국 대학교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치기까지는 2억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대학 교육제도의 야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천주희 지음
사이행성 펴냄
만성과 감당하기 힘든 부채를 짊어지고 모든 것을 유예하며 살아가는 대학(원)생들의 현실은 참담함 그 이상이다.

하지만 책은 고발이나 호소, 비판에 머무르지 않는다. “문제는 부채를 극복하는 방식에 있지 않다. 예속화 과정에서 핵심은 채무자의 삶에 순응하고 비판하지 않는 데 있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학생 채무자를 복지나 수혜의 대상 혹은 구제의 대상, 사회적 피해자로 바라보는 시선에 반대한다. 단순히 빚을 졌다는 사실 그 이상을 말함으로써 학생 채무자라는 삶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정치적인 것을 만들어낼 집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바로 그 시작이다.

기자명 금정연 (서평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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