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에 등장하는 주정뱅이들은 불우하고 또 불우하다. 술은 주정뱅이들을 ‘다른 삶’으로 옮겨놓는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술은 시간을 분절(分節)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취한 인간은 자아와 의식의 지배에서 벗어나 ‘깨어 있음’의 반대편에 서게 된다. 취한 존재가 마치 죽음처럼 깨어 있음에서 외출할 때, 착란이라는 시간의 잠재성에 도달한다. ‘나’는 취한다. 고로 ‘나’는 의식의 상투적인 연속성을 분절시키는 저 비밀스러운 미지의 시간을 살아낸다.

〈이모〉에서 ‘이모’의 삶은 “쉰다섯 살에 홀연 사라지기까지 평생 결혼하지 않고 직장 생활을 하며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리고 2년여간 잠적하며 혼자 살았고, 췌장암에 걸려 석 달간 투병하다 죽었다”라고 요약된다. 좌절된 연애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짐 지워진 터무니없는 불우 속에서 그녀의 삶은 닫혀 있었다. 타인에 대한 적의와 무례한 이웃에 대한 증오밖에 남지 않았을 때, 그녀는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게 된 ‘그 이상한 날’, 지나치게 절제된 일상에서 예기치 않은 순간이 도래한다. “어느 순간 시간이 흐름을 멈추고 서서히 엉기기 시작”했으며, “눈앞이 번쩍하더니 모든 기억이 반지 모양의 작고 까만 원형 속으로 빨려들”게 된다. 그리고 “전생처럼 오래전”의 일, 호감을 표시한 남자의 손바닥을 담뱃불로 지져버린 자신과 그 “묵묵히 고통을 견디는 자의 무표정”을 대면한다. 술이 호출한 이 비밀스러운 기억들은 지독하게 금욕적인 삶에 가라앉아 있던 침전물이었을 것이다. 술이 그 침전물을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순간, 그녀는 이 끔찍한 불우의 ‘지속성’을 멈추는 돌발적인 시간의 틈임을 경험한다. 기억이란 실체라기보다는 ‘잠재적인 시간’이며, 술이 만들어낸 ‘기억술’은 그녀의 신산한 삶 전체에서 예외적인 순간을 출현시킨다.

ⓒ시사IN 자료
〈봄밤〉에서 중증 알코올의존증 환자와 치명적인 류머티즘 환자 부부는 요양원에서 동거한다. “자신에게 돌아올 행운의 몫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의아할” 정도로 그들의 삶에 드리워진 불우는 너무 가혹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는 기이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한다. 그들은 “유난히 의가 좋고 사랑스러운 대신 화약처럼 아슬아슬한” 사랑을 감당한다. 술을 마실 수 없는 요양원에서 견딜 수 없게 되면 아내는 요양원 밖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온다. 이것이 그들이 서로를 ‘환대’하는 방법이다.

삶의 모든 가능성을 소진한 유령들

〈안녕 주정뱅이〉권여선 지음창비 펴냄
아내가 술을 마시는 시간에 불행한 남편이 생을 다했을 때, 그들은 서로 떨어져서 그러나 거의 동시에 ‘함께’ 죽음을 만난다. 남편의 죽음이 육체적 죽음이라면, 아내의 죽음은 “알코올성 치매로 인한 금치산 상태”가 되는 의식의 죽음이다. ‘남은 자’로서 그녀는 남편을 기억하지 못하며 “다만 자신의 인생에서 뭔가 엄청난 것이 증발했다는 것만을 느낄”수 있다. 의식되지 못한 시간들 속에서 그들은 참혹한 생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에서 만나고 있다.

주정뱅이들은 삶의 모든 가능성을 소진한 자로서 이미 죽은 자들이며, ‘죽음’에서 계속 되돌아오는 유령의 존재(revenant)이다. 권여선의 소설은 술과 함께 ‘소진된’ 삶 안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한 숭고와 무한의 순간들을 가리킨다. 삶의 가능성을 소진시킴으로써 술은 마지막 시간의 이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주정뱅이들의 비천함과 불우는 그렇게 타인의 비극에 대한 무지를 뒤흔들고, 소설은 저 비참하고 위대한 주정뱅이들을 기어이 환대하게 한다. ‘안녕 주정뱅이’에서 ‘안녕’은 맞아들임의 첫인사이며 애도의 마지막 인사이다.

기자명 이광호 (문학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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