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예측 가능했으면 좋았을 텐데. 태어났을 때는 몰랐지. 동토 위를 삶의 근거지로 삼게 될 줄은. 사할린으로 오기까지, 사할린에서 살기까지. 조선인이었다가 일본인이 되었고, 오랜 시간 무국적자였고 한때는 소련인이었던 사람들. 두 나라 국기와 두 정상 사진을 삶의 배경으로 붙든 얼굴과 손의 주름마다 신산한 세월이 고였다. 고향이라는 게, 조국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저 오래된 시간을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
-
지식 공장의 하루하루
지식 공장의 하루하루
엄기호(국민대 사회학과 강사)
한국에서 공부란 지식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 아니라 피부에 새기는 일이다. 배움은 심연, 영혼에 닿지 않고 표면, 피부에 머문다. 지식을 익혀서 다루는 법을 배우지 않고 노예의 몸에...
-
이화여대에서 시작된 느린 민주주의
이화여대에서 시작된 느린 민주주의
장일호 기자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해야 할 싸움을 피하지 않는 과정 속에 정의가 깃든다. 학교에 투입된 1600명 경찰에 맞서 ‘벗’들은 서로의 팔과 팔을 엮었다. ‘...
-
1번은 없다, 촛불은 있다
1번은 없다, 촛불은 있다
김연희 기자
2016년 7월12일 이후 경상북도 성주는 전과 같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오늘 참외 몇 박스 땄어예?”라고 인사하던 주민들은 한여름 내내 참외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
그의 무덤에 사죄하라
그의 무덤에 사죄하라
김연희 기자
물대포 조준 사격으로 한 시민의 목숨을 빼앗아간 공권력은 그의 시신까지 노렸다. 지난 9월25일, 농민 백남기씨가 사망했다.백씨가 눈을 감자, 경찰은 서울대병원을 둘러쌌다. 부검영...
-
조국과 국적과 고향이 하나가 아닌 사람들 [역사의 뒤 페이지]
조국과 국적과 고향이 하나가 아닌 사람들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문학 세계는 1890년의 사할린섬 기행을 전후로 나뉘곤 한다. 기행 이전에도 명성이 높았지만, 〈갈매기〉(1896), 〈바냐 아저씨〉(1899), 〈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