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풍경이었다. 목소리를 높이려 광장을 찾은 사람들은 조용히 둘러앉아 한 사람을 지켜봤다.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던 얼굴, 요즘 들어 텔레비전에서 보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사람들 사이 홀로 우뚝 선 그는 차례차례 시민들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어떤 사람은 욕을 뱉어냈고, 어떤 이들은 자신이 광장에 왜 나왔는지 조곤조곤 설명했다. 한 청년이 말했다. “썸도 타야 하는데 썸 탈 시간이 없어요. 토요일이 없어서. 광장 다녀오면 주말이 없어요.” 한탄하는 청년을 보며 그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크흑, 아이고.” 한 초등학생이 나와 박근혜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이렇게 말했다. “이 시간에 〈메이플 스토리〉를 하면 렙업(레벨 업)이 되는데,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그가 답했다. “저는 지금 이 시간부로 여덟 살이 되면 대통령 투표권을 주자고 제안합니다.”

그의 감탄사에, 그의 코멘트에 광장에 몸을 기댄 사람들은 다 같이 웃었다. 다 같이 느꼈다. 웃기고, 슬프고, 괴롭고, 허탈한 이 감정이 옆에 앉은 낯선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시대가 옭아맨 이미지가 있다. 방송인 김제동씨를 둘러싼 ‘투사’ 이미지가 그렇다. 진영 논리에서 김제동은 단편적으로 소비된다. ‘탄압받는 연예인’이라는 이미지는 그가 정부를 거칠게 공격하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경북 성주에서, 서울대병원에서,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 그는 거친 말이 아닌 정제된 말로 공감을 이끌어냈다.

2016년 광장의 시민들은 권력자들이 휘두르는 힘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무기로 헌법을 택했다. 김제동씨는 광장에 밀려나온 분노를 헌법으로 엮어내며 모두의 감정을 대변했다. “여러분은 지금 헌법적 권리를 행사 중입니다. 함께 비를 맞읍시다.” 김제동씨는 광장에서 헌법을 가장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전문 강사였다. 학자와 언론이 거창한 말로 언급하던 헌법을 김제동씨는 대중의 언어로 풀어서 설명했다.
 

ⓒ시사IN 조남진


“우리는 주권자이며(제1조), 인간다운 삶과(제34조) 쾌적한 생활(제35조)을 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특수계급을 만들어(제11조 2항 위반) 나라를 혼란하게 만들었으니(제84조 위반), 그를 쫓아낼 권리(제65조)가 있다.”

그는 헌법 구절을 차근차근 읊었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그런데 그 국가가 국민이 행복할 권리를 추구하지 못하게 했다면 헌법 제10조 위반이고 저는 그것이 내란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을 석방하라” “내가 나라 걱정 때문에 장가도 아직 못 가고 이 자리에 서 있다. 헌법 제36조(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위반이다”. 시민들은 절규 대신 환호와 웃음으로 ‘김제동식 헌법 풀이’를 즐겼다.

“우리가 일개 시민 아니라 그들이 일개 권력”

촛불이 거리를 밝힌 두 달간, 대중 언어로 바꾼 헌법의 다른 의미는 곧 ‘상식’이었다. 이 기간에 김제동씨는 전국을 누볐다. 서울·대전·창원·광주·대구 등지에서 텔레비전 속 자신이 즐겨 쓰는 방식으로 ‘촛불 토크’를 진행했다. 조연을 자처하는 김제동식 공감형 토크에서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당신이 정당하다는 것을 대중 언어로 전달했다.

광장에서 한 시민이 말했다. “저는 일개 시민에 불과합니다만….” 김제동씨는 말을 가로막고 바로 되물었다. “왜 시민이 ‘일개’입니까? 시민인 당신이 진짜 권력자입니다. 대통령이 일개 권력자에 불과합니다.” 거리에 울려 퍼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노래가사처럼, 김씨는 헌법으로 광장의 시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거리에서, 주권자라는 인식보다 더 굳건한 자존감은 없었다.

김제동씨는 투사가 아니다. 큰 목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를 꼬집으며 권력자의 위선을 풍자해왔을 뿐이다. 그에게 싸움을 거는 사람들은 많지만, 싸움 앞에서도 무엇이 비정상인지를 짚어내는 것이 촛불에서도, 촛불 이전에도 그가 취한 태도였다.

경북 성주에서 그는 “성주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외부 세력이라면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국방부 장관도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으니 성주의 일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예전에 남긴 발언(군대에서 4성 장군 부인에게 ‘아주머니’라고 말했다가 영창 생활을 했다는 발언)을 문제 삼은 새누리당 국회의원에게 “국정감사에서는 내 얘기가 아니고, 국방의 얘기를 해야 한다. 세금 받고 일하는 국방위 공무원은 세금 주는 국민들의 안위에 대해 얘기해야 상식적으로 맞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거리에서도 웃음을 잃지 말자는 그의 말과 행동은 사실 이번 촛불 국면을 가장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모습이다. 분노하고 저항하되 겁먹지 말고 상식의 힘을 믿는다. 〈시사IN〉이 올해의 인물로 그를 꼽은 것은, ‘방송인 김제동’이 아닌 ‘시민 김제동’이 다른 시민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를 텔레비전에서 쉽게 볼 수는 없어도,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자신감을 우리는 광장에서 그와 함께 경험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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