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이슬람국가)에 관해선 내가 장군들보다 더 잘 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9월 유세 때까지만 해도 군부를 비웃기 일쑤였다. 이랬던 그가 최근 진행 중인 조각 작업에서는 외교·안보 핵심 요직에 장군 출신 인사들을 속속 기용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내년 1월20일 대통령에 공식 취임하는 트럼프는 이미 국가안보보좌관은 물론 국토안보장관과 국방장관 후보로 퇴역 장성을 지명한 바 있다. 그런데 중앙정보국(CIA) 국장까지 육사 출신 인사를 기용해버렸다. 그뿐 아니다. 연방정부 내의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물론 국무장관까지 퇴역 장성을 기용하려는 조짐이 보인다. 이쯤 되면 트럼프 행정부는 ‘장성들의 내각’이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트럼프 자신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가 모두 외교 문외한인 상황에서 퇴역 장군들이 외교·안보 요직을 사실상 독점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군부가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타이, 파키스탄, 터키 등과 미국이 다를 게 뭐냐’는 푸념까지 나온다.

사실 트럼프가 외교·안보 부문에서 첫 인사였던 국가안보보좌관에 장성 출신인 마이클 플린 전 국방정보국(DIA) 국장을 지명했을 때만 해도 ‘잘된 인선’이란 평가가 대세였다. CIA 국장에, 웨스트포인트(육사) 장교 출신으로 현역 공화당 하원의원인 마이크 폼피오를 지명했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국토안보장관에 존 켈리 전 남부군 사령관을 내정하자 우려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트럼프가 국방장관에 제임스 매티스 전 중부군 사령관을 공식 지명하면서 비난의 불길이 솟구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군에 대한 통제 차원에서 국방장관에는 ‘문민 인사’를 기용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무장관 후보로도 CIA 국장 출신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가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EPA도널드 트럼프 당선자는 국방장관에 제임스 매티스 전 중부군 사령관(오른쪽)을 공식 지명했다.
트럼프가 후보 시절 그토록 조롱했던 군 인사들을 이처럼 대거 발탁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부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트럼프의 정치적 동기에서 찾는다. 즉 행정부와 의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이 역대 최고인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신뢰도를 누려온 군부의 명망가들을 영입해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을 속셈이라는 것이다. 고든 애덤스 아메리칸 대학 교수는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와 한 인터뷰에서 “외교·안보에 대해 잘 모르는 대통령과 부통령이 군 출신 인사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게 구조적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기용된 장성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대외 군사 문제에 비교적 온건 노선을 유지해온 오바마 행정부와의 불화나 갈등으로 물러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의 경우 국방정보국 국장 시절, 국제 테러 조직인 알카에다가 궤멸 위기라는 오바마 행정부의 주류적 견해에 맞서다 예편했다. 중부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매티스 장군은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을 자제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노선에 반기를 들다 미운털이 박혔다. 결국 당초 예정된 퇴역 일자보다 훨씬 앞선 2013년에 군복을 벗었다. 국토안보장관에 지명된 켈리 전 사령관도 쿠바 관타나모 미국 해군기지를 폐쇄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계획에 반대한 바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대화와 타협보다 군사력에 치중한 해법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많다.

CIA 국장에 지명된 마이크 폼피오 공화당 하원의원(왼쪽)과 남부군 사령관 출신 존 켈리 국토안보장관 내정자(오른쪽).
‘군에 대한 문민 통제’ 흔들릴까

트럼프가 군 출신인 매티스를 국방장관에 기용함으로써 미국의 전통인 ‘문민의 군부 통제’를 허물어버린 것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 관료를 지냈고 현재 민간 연구소 미국진보센터(CAP) 부소장으로 있는 비크람 싱은 “트럼프가 퇴역한 지 얼마 안 된 장군을 국방장관에 임명한다는 건 아무리 해당 개인이 자격이 있다 해도 매우 심각한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 중 하나인 ‘군에 대한 문민 통제’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스펜서 메러디스 국방대학 교수도 “장성 출신을 기용하는 것은 이들의 전략적 사고와 조직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장성 출신들이 모든 사안을 군사적 관점으로만 보려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위험한 인사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세기 이후 미국에서 군 장성 출신이 국방장관에 임명된 사례는 한 번밖에 없다. 1950년대 초반, 국무장관을 거쳐 국방장관을 지낸 조지 마셜 장군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전후 유럽 부흥계획인 ‘마셜 플랜’으로 외교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민간 연구소 신미국안보센터(CNAS) 로렌 슐만 부소장은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아무리 개인적으로 능력이 출중해도 너무 많은 정부의 업무를 군 출신 지휘관들이 맡으면 민·군 관계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미국에서는 1947년 발효한 국가안보법에 따라 국방장관만은 민간 인사를 기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다만, 대통령이 부득이 군 출신 인사를 국방장관으로 기용할 경우, 퇴역한 지 10년 이후에 가능하다고 한 ‘경과 규정’을 지켜야 한다. 이 경과 규정은 2008년 들어 7년으로 수정됐다. 매티스 전 사령관은 2013년 퇴역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국방장관으로 기용될 수 없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관에 대한 인준권을 가진 상원 재석 의원 100명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능하다. 실제로 매티스 지명자에 대한 인준청문회를 맡게 될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 등 공화당 의원들은 매티스의 국방장관 임명에 대체로 호의적이다. 하지만 야당인 민주당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공화당 상원 의석이 52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8명의 민주당 의원이 동의해야 매티스가 국방장관으로 취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민주당 커스텐 길리브랜드 상원의원은 “개인적으로 매티스 장군을 깊이 존경하지만 군부에 대한 문민 통제는 미국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이다”라면서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매티스 역시 자신의 국방장관 지명을 둘러싼 논란을 의식하고 있다. 최근 한 모임에서 기자가 매티스를 “장군님!” 하고 부르자,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그냥 짐(제임스의 애칭)이라 불러주세요. 한때 장군이었지만 그건 먼 옛날 일입니다. 지금은 기쁘게 민간 사회에 합류한 상태요.”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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