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 추락, 한심, 침묵, 무자격, 개탄, 식물, 좀비, 문외한, 눈치 보기, 무용론, 봉숭아 학당, 꼭두각시, 암흑기, 흑역사.’

최근 수년간 언론들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를 평가하면서 쏟아낸 비판이다. 이보다 더 쓰리고 아픈 말들이 또 있을까. 정말 이러려고 인권위를 만들었나 자괴감이 들 뿐 아니라 참담함과 분노를 넘어 허탈하고 허망하다.

인권위는 권력에는 쓴소리를 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은 특별히 보살피라는 국민의 엄명과 열망 속에서 탄생한 국가기관이다. 지난 11월25일로 만 15주년이 되었다. 초기 6~7년간은 국제적인 모범 사례로 칭찬을 받았던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추락하는 인권위의 위상에는 날개가 없었다. 권력의 눈치 보기를 넘어 본분을 망각한 파행이 이어졌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협하는 인권유린에 대해서조차 민감한 사항은 철저히 외면했다.

역주행의 일차적 책임은 무자격 전직 인권위원장과 일부 인권위원에게 있다. 공적인 자리에서 흑인을 ‘깜둥이’라 말하는 등 스스로도 인권 문외한이라고 자인한 그 위원장은 무려 6년이나 버티면서 인권위를 고사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의 재임 기간 중 반인권적 결정이 줄을 이었고 주요 인권 현안은 방치됐으며 인권 감수성과 전문성이 높은 직원들은 쫓겨났다. 한 상임위원은 유엔에 제출하는 한국의 인권 상황 보고서에서 세월호 참사와 통합진보당 해산, 성 소수자 혐오세력 발호 등을 삭제했다. 그는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고 인권위원직을 헌신짝처럼 버리더니 현재는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활동 중이다. 아무래도 권력에 쓴소리하는 인권위원보다는 권력의 보호에 더 적임자였던 듯싶다.

이런 사례는 훨씬 많지만 중요한 것은 그 배경에 인권의 가치를 추락시키고 적극 방해한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이 있다는 점이다. 이 두 대통령과 주변 참모들은 인권위를 보수 정권을 공격하는 좌파 이데올로기의 무기쯤으로 여기고 눈엣가시처럼 생각했거나, 아니면 무관심 또는 무지했다. 이명박 정권이 전자라면 박근혜 정권은 후자에 가까운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여하튼 두 대통령은 무자격 인권위원장과 인권위원을 임명함으로써 인권위를 무용지물로 만든 장본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를 되새겨본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의 근본 가치를 담은 이 조항은 ‘국민은 존엄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의 주체이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자’임을 못 박고 있다.

국민은 행복하게 살 권리의 주체이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자다

새삼 이 조항을 한 자도 빠짐없이 적어보는 것은 도대체 두 대통령이 헌법의 이 엄중한 명령을 알고나 있었을까 싶어서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머리 손질부터 하는 대통령이 알았을 리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대통령이, 아니 사람으로서 이럴 수 있겠는가. ‘개·돼지’ 발언을 한 교육부 고위 공직자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킬 인권의 옹호자여야 한다는 본인의 직분을 알았을 리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이게 나라냐”라고 탄식하며 절망해야 했던 밑바탕에는 인권에 대한 기본 인식조차 갖지 못한 두 대통령과 참모들이 있다.

광장에서 일렁이는 촛불은 대통령의 탄핵만 외치는 게 아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라고, “돈보다 사람이 우선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라고 외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람이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할 최소한의 권리가 인권이다. 인권의 보장 및 향유는 인간다운 삶, 행복한 삶의 전제조건이다.

탄핵 후 정국을 준비하는 많은 대선 주자들이 있다. 이분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은 철저히 검증되어야 한다. 인권으로 무장한 대통령, 인권친화적인 정부가 아니고는 퇴행을 거듭한 한국의 인권 상황도, 추락한 인권위도 바로잡기 어렵다. 무엇보다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와 소수자들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을 또다시 만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12월1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인권선언의 날이다.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이 인류 보편의 규범이 이 땅 구석구석에,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도록 광장을 인권의 촛불로 가득 채우자. 인권은 저절로,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인권의 나무는 시민의 감시와 참여만큼 자란다.

기자명 문경란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위원·전 서울시 인권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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