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래, 한국 국민들은 끝도 없이 꼬리를 무는 최고위 권력층의 부패와 공모, 그리고 정실 인사에 경악했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거대한 ‘광화문 점령’ 시위는 자신들의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한국민들의 결의를 드러내는 한편, 민주주의 정신을 지키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 현명하게도, 대중들은 자신들을 향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것이 비굴한 사과의 형태이든 거짓사임의 양상으로 나타나든, 그들은 마음을 흐트러뜨리기를 거부한다.

ⓒEPA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들이 “박근혜 하야!” 요구에 레이저를 쏘듯 집중하는 반면, 정당들은 한 걸음 늦게 확실한 길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현재로서 국민들이 국내적 위기 해결에 집중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상황이 질질 끌어지게 될 경우, 서울의 정치적 진공상태가 초래하는 국제적 비용은 점점 불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미국에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다는 것, 그것이 한반도에 던지는 의미, 그리고 현재처럼 한국에 신뢰받는 리더십이 부재하다는 사실 자체가 국제무대에서 어쩔 수 없이 초래하게 될 위험 요소 등을 곰곰이 생각해볼 때 그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큰 문제

힘의 공백상태는 국익에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압도적 다수 시민들 눈에 기본적 합법성을 결여한 지도자를 가진 나라는 외교정책 수행에서 절름발이나 다름없다. 도널드 트럼프를 뽑은 미국 대선 이후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타이밍이라는 것이 한국보다 더 나쁜 경우도 없을 것이다. 트럼프는 동맹이라는 것에 대해 미국의 납세자들이 더 이상 지불해서는 안 되는, 한국에 대한 특혜라고 생각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층 더 걱정스러운 것은(진짜 재앙의 가능성마저 있는),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접근방법을 둘러싼 불확실성과 서울의 국내정치적 위기에 기인한 한국의 대응 결여라는 사실이다.

ⓒ연합뉴스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2016.11.29

선거 캠페인 초기에 트럼프는 김정은과 대화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면서 큰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뒤로 뺐고, 선거전이 진행되면서 (결함 많은) 종래의 ‘현명한 정책’, 즉 북한 핵문제는 중국이 해결하는 게 쉽다는 입장으로 바뀐 듯이 보인다. 이처럼 입장이 왔다갔다 하는 것은 북한문제라고 하는 것이 트럼프가 심사숙고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암시했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그가 평양문제에 열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사점들이 눈에 띤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급박한 문제, 최우선 순위의 과제가 되어가고 있음을 트럼프 정권인수팀에게 경고했다(지난 8년간의 오바마의 정책이 ‘전략적 인내’였음에 비춰볼 때, 아이러니한 일이다). 트럼프를 위한 정보보고가 그에게 평양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환기시켰음이 분명하다. 그가 대통령 당선인 자격으로 가진 언론계 대표들과의 첫 만남에서 북한문제는 트럼프가 ‘심각하게’ 다룬 유일한 정책문제였다.

진정한 위험

북한문제는 큰 문제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해결방법들이 더 큰 문제다. 미국 대외정책의 최대 딜레마이자 정보 분야 최대의 난제인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누가 트럼프에게 조언하고 있는가? 트럼프내각에 이름이 거론된 것으로 소문이 나돈 가장 유력한 인물은, 체제 변동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극단적 입장을 견지하는 존 볼튼 전 유엔대사다. 국가안보보좌관 후보 물망에 오른 마이크 플린 예비역중장은 이라크 및 아프간 사태에는 풍부한 경험을 가졌으나, 아시아지역에는 어떠한 전력도 없는 인물이다. 〈전장(戰場)〉 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플린은, 이란과의 관련성 선상에서, 즉 ‘급진 이슬람’의 사실상의 동맹으로서 북한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그가 주장하는 이른바 전 세계 미국의 적을 상대로 한 ‘지구적 전쟁’에서 그는 북한을 이란 다음 가는 적국으로 다루고 있다. 트럼프가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지명한 마이크 폼피오 하원의원 역시 북한이 이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협상은 문제 해결의 길이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는 것 같다. 이른바 ‘악의 축’이 귀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빅맥을 먹으면서 김정은과 얘기를 나눌 수도 있다던 트럼프의 입장은 강경노선을 주장하는 주위의 무수한 조언의 물결 속에 잠겨버릴 수도 있다.

ⓒAP Photo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철저한 보호무역주의자다.

한층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그것은 정치적 힘의 공백 상태인 서울이 치러야 할 대가다. 북한이 미국을 핵미사일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면서, 트럼프는 불가피하게, ‘선제적’ 혹은 ‘외과적’이라고 완곡하게 표현되는 군사적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마이클 멀린 전 해군참모총장은 이미 앞서 9월에 미 외교협회에서 연설하면서 ‘선제타격’을 띄운 바 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엘리엇 코헨 교수가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를 받았는데, 여기서 그는 트럼프가 공격 결정을 조기에 내리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확언하고 있다.

혹자는 트럼프가 ‘미국제일주의’ 구호를 내걸기는 했으나, 1953년 한국전쟁 이래 최초의 평양에 대한 재앙적 수준의 군사공격을 결정할 때, 한국에도 발언권이 있음을 그가 인정해줄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절대다수의 한국민들이 (대통령 하야 요구 외에) 단 한 가지 동의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아마 어느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와 회담을 할 때 자신들을 대표하는 국가원수를 가지고 있지 않을 경우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서울로부터 설득력 있는 반대가 없을 경우, 워싱턴은 대 북한 정책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데 있어 훨씬 더 과감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험의 대가는 고스란히 서울이 치르게 되고.

자연은 힘의 공백 상태를 싫어한다. 강대국들도 똑같다. 서울이 겪는 정치적 위기의 지향점이 어디이든 상관없이 이제 정치수업은 어서 끝내고 목표점에 서둘러 도달해야 한다. 현 상황은 지속불가능하고 위험하다.

* 이 글은 필자가 시드니 소재 로위국제정책연구소(Lowy Institute for International Policy)가 발행하는 매체 〈인터프리터〉(The Interpreter)에 기고한 것을 필자 자신이 업데이트하여 수정 보완한 것임.

기자명 존 델러리(연세대 국제대학원 부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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