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카드’로 우려를 한순간에 뒤집어버렸다. 12월1일 임명된 박영수 특별검사는 후보로 거론되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하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박 특검은 지난해 6월 황교안 총리의 국회 인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섰다. 그는 당시 황 후보자에 대해 “부처 장관, 국회와 협조하면서 부드럽게 수행할 수 있는 적합한 인물이다”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또 박 특검은 ‘우병우 라인’으로 분류되는 최윤수 현 국정원 2차장을 양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다. 이런 법조계 인연이 특검 수사의 칼날을 무디게 할 수 있다는 걱정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우려를 씻어버리겠다는 듯, 박 특검은 황교안 총리에게 임명장을 받자마자 윤석열 검사에 대한 파견을 요청했다. 파견 검사 20명과 검찰·경찰·국세청 파견 공무원 40명을 지휘하는 수사팀장으로 윤 검사를 임명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 특검이 “날카로운 칼을 움켜쥐었다”라고 평가했다. 이로써 윤석열 검사는 박근혜 정부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사건을 맡았다. 윤 검사는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됐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강금원·안희정 등 친노 핵심 인사를 구속 수사한 바 있다. 그만큼 좌고우면하지 않는 강골 검사라는 게 검찰 내부 평가이다. 박영수 특검과 윤석열 검사는 중수부장과 대검 파견 검사로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를 함께했다. 그때도 윤 검사는 현대차 비자금 사건의 ‘시작과 끝’을 맡았다. 비자금 사건의 단초가 윤석열 검사에게서 나왔다. 당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근무하던 윤 검사는 현대차그룹의 실무자급 직원한테 제보를 받았다. 현대차그룹의 비자금 조성이 글로비스를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과 비밀금고 위치 등이었다. 그는 대검에 보고한 후 대검에 파견되어 수사팀에 합류했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 바로 박영수 특검이었다.
 

ⓒ시사IN 윤무영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수사하게 된 박영수 특별검사(가운데)는 대통령을 비롯해 대기업 총수, 검찰 내부까지 베어내야 할 ‘환부’가 많다.


‘잘 드는 칼(윤석열)’을 움켜쥐었다고 하지만 특검 앞에 놓인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박근혜 대통령부터 대기업 총수, 김기춘·우병우 등 검찰 내부까지 베어내야 할 ‘환부’가 많다. 무엇보다 헌정사상 최초 현직 대통령 수사다. 최장 120일까지 박근혜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검팀의 과제를 꼽아봤다.

갈 길 바쁜 박영수 특검, 거침없이 속도전

특검은 초반부터 속전속결 태세다. 박 특검은 임명된 다음 날 기자들과 만나 “준비 기간 20일을 채우는 건 국민께 죄송한 일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2년 전 〈법률신문〉 기고에서 “그동안 특검은 발동될 때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증거 수집이 미진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 때문인지 초반 행보가 빠르고 거침없어 보인다. 박 특검은 특검법에 명시적으로 기재되지 않은 ‘세월호 7시간’ ‘최태민 유사종교’ 문제도 다룰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일찌감치 수사 대상에 포함한 것이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특검법에는 수사 대상을 15가지로 꼽았다. 크게는 △최순실씨와 측근의 국정 농단과 이권 개입 △청와대 문건 유출 및 외교·안보상 국가기밀 누설 △정유라씨 이화여대 부정입학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직무유기 의혹을 비롯한 14가지에다, 마지막으로 수사 중에 인지한 사건도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인지수사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세월호 7시간 수사 대상’ 발언은 바로 인지수사 규정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포석이다.

 

 

 

ⓒ시사IN 이명익‘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된 윤석열 검사(위)가 특검 수사팀장으로 내정되었다.

 


특검은 검찰 수사를 넘어서야 성공할 수 있다. 세 갈래 수사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또는 제3자 뇌물제공죄 적용 여부, 재벌에 대한 수사, 그리고 검찰 내부에 대한 수사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11월20일과 27일 잇따라 기소한 피고인 최순실·안종범·정호성과 차은택·송성각·김영수·김홍탁·김경태에게만 직권남용·강요·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이 사건에서 돈을 건넨 대기업을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로 규정했다. 대가성이 없기에 뇌물죄로 적용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다. 뇌물죄나 제3자 뇌물제공죄 적용 여부에 따라 형량 차이가 크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1억원 이상의 뇌물을 받으면 법정 최저형이 10년이다(〈시사IN〉 제480호 ‘나라 위했다던 그들 모두 유죄였다’ 기사 참조).

박 특검도 이를 명확히 인식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본질을 직권남용 등으로 보는 것은 구멍이 많은 것 같다. 대기업들이 거액의 돈을 내게 된 과정이 무엇인지, 거기에 대통령의 역할이 작용한 게 아닌지, 즉 근저에 있는 대통령의 힘이 무엇이었는지를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뿐 아니라 일부 대기업 관련자에 대해 뇌물죄 또는 제3자 뇌물죄 적용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박근혜 대통령을 사실상 주범으로 판단했다. 11월20일, 11월27일 잇따라 공개된 ‘박근혜 게이트’ 공소장을 보면, 검찰은 범죄행위의 최정점에 박 대통령이 있다고 보았다(23쪽 표 참조). 피고인 최순실·안종범·정호성의 공소사실이 담긴 31쪽짜리 공소장을 보면 혐의의 위계질서를 알 수 있다. 공소장에는 이들이 ‘대통령과 공모하여’ 범행을 저질렀다는 문구가 9차례 나온다.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를 받아’와 같은 표현도 14차례 반복된다.

공소장을 보면 박 대통령의 지시는 꼼꼼하고 구체적이다. “피고인 안종범은 2015. 10.21 대통령으로부터 ‘재단 명칭은 용의 순수어로 신비롭고 영향력이 있다는 뜻을 가진 미르라고 하라’ ‘사무실은 강남 부근으로 알아보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안종범은 2015. 1월경 및 2015. 8월경 대통령으로부터 ‘이동수라는 홍보 전문가가 있으니 KT에 채용될 수 있도록 KT 회장에게 연락하고, 신혜선도 이동수와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지시를 받았다. 두 달 후에는 두 사람 보직을 변경해주라고 했다”.

피고인 차은택·송성각 등의 10쪽짜리 공소장에도 ‘대통령의 지시’가 4번, ‘대통령과 공모하여’가 1번 쓰여 있다.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직권남용·강요·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범죄행위가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는 뜻이다.

 

 

 

 

ⓒ연합뉴스삼성이 최순실 일가에 건넨 돈은 박근혜 게이트의 2차 폭발을 일으키는 뇌관이다. 자칫 재벌 게이트로 폭발할 수 있다. 위는 구속 수감된 최순실씨 모습.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최순실 등의 공소장이 공개된 지난 11월20일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검찰 수사 결과가 중립적이지 않다며 대면 조사를 받지 못하겠다고 밝혔다. 유 변호사는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검찰 조사를 비난했다. 검찰의 두 번째 대면 조사 요청일이었던 11월29일에도 박 대통령은 바빠서 조사를 받을 수 없다고 하루 전날 밝혔다.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대국민 담화문을 뒤집는 발언이었지만 검찰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검찰 처지에서 대면 조사를 거부한 박 대통령을 강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검찰 내부에서 체포영장 청구 등 강경 발언이 나오기도 했지만 검찰 수뇌부는 강제 수사에 선을 그었다. 박 대통령은 박영수 특검을 임명하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검찰 수사 전례를 보면 박 대통령이 조사에 응한다는 보장도 없다. 박영수 특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박 특검은 “서면 조사는 시험 보기 전에 답안지를 미리 보여주는 거다. 바로 대면 조사를 하겠다. 여러 말을 하다 보면 그 말에서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고, 단서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진술을 받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11월30일 국회 국정조사 1차 기관 보고가 이뤄졌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유상현 대체투자실장과 신승엽 리스크관리팀장의 휴대전화를 꺼내봐 달라고 요구했다. 박 의원이 “검찰 압수수색 직전에 (두 사람이) 휴대전화를 바꿨다”라고 따져 물었다. 유상현 실장은 이를 인정했다. 다만 이전 휴대전화도 검찰에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신승엽 팀장도 휴대전화를 바꿨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그는 “휴대전화가 고장이 좀 생겨서 바꿨고, 고장 난 휴대전화는 집에 가서 쓰레기통에 버렸다”라고 증언했다. ‘깡통폰’만 검찰에 제출한 것이다. 박영선 의원은 “보통 사람이 휴대전화를 쓰레기통에 버리느냐. 그만큼 검찰의 압수수색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입증하는 장면이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과 관련해 핵심 구실을 했다고 지목된 실무자다. 지난해 7월 합병 당시 표결에서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 12명 중 두 사람을 포함해 8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1대0.35)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이재용 삼성그룹 일가가 대주주인 제일모직에 유리한 결정이라는 비판을 샀다. 삼성물산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당시 삼성의 승계구조에 유리한 결정을 하면서 반대로 국민연금이 손해를 봤다는 의혹이 ‘박근혜 게이트’로 다시 불거졌다.

삼성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금 204억원을 출연했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35억원과 추가로 43억원을, 조카 장시호씨에게 16억원을 지원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결국 삼성이 최순실 일가에 건넨 돈은 박근혜 게이트의 2차 폭발을 일으키는 뇌관이다. 특검 수사로 박근혜 정권과 삼성의 ‘정경유착’이 드러난다면, 박근혜 게이트는 재벌(삼성) 게이트로 폭발한다. 검찰은 국민연금공단을 11월23일 압수수색했지만 검찰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삼성의 로비 의혹 수사와 관련해 현재 독일에 머무르는 정유라씨의 강제 귀국도 중요하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정유라씨를 강제소환하지 않았다. 검찰은 독일 검찰 쪽에 공식·비공식으로 수사 협조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박영수 특검도 “정유라씨는 어떻게든 입국시켜 수사해야 한다. 소환 등 절차를 독일 쪽과 잘 얘기해야 한다. 최순실씨 측을 통해 입국하도록 하는 방안을 다양하게 강구해보겠다”라고 말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에 대한 특검 수사도 관전 포인트이다. “김기춘이 정유라를 잘 돌봐주라고 했다(김종)” “최순실 지시로 김기춘을 공관에서 만났다(차은택)”. 검찰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모르쇠로 일관하던 김종 전 문체부 차관과 차은택 감독은 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말을 바꿨다. 이들의 폭로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도 의혹의 눈길이  쏠렸다. 그는 지금까지 최순실씨를 모른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김 전 실장은 차 감독 쪽의 발언이 나오자,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만났을 뿐 최순실씨를 알지 못한다”라고 거듭 밝혔다.

‘우병우·김기춘’에게도 특검의 칼날 향할까

하지만 의혹은 점점 커지고 있다. 사실상 박근혜 게이트의 중심에 최순실씨와 함께 김기춘 전 실장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김기춘 전 실장의 지시와 발언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2014년 ‘정윤회 문건’ 사건을 비롯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법부 길들이기’ 등에 그가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2014년 문체부 1급 실장들을 정리한 건 김기춘 비서실장이다”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검찰은 뒤늦게 김기춘 전 실장도 수사 대상이라고 밝혔지만, 그를 소환조사 한번 하지 않았다.

검찰의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도 미온적이었다. 우 전 수석은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기 전부터 검찰 수사 대상이었다.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수사 의뢰에 따라 사건이 배당되었다. 지난 8월 검찰은 우병우-이석수 특별수사팀을 꾸렸지만 수사 내내 공정성 시비에 시달렸다. 윤갑근 특별수사팀장은 우 전 수석과 가까웠다. ‘뒷북’ 압수수색과 팔짱낀 우 전 수석의 모습이 담긴 검찰청 사진이 공개되면서 ‘황제 조사’ 논란이 일었다. 김기춘 전 실장, 우병우 전 수석 둘 다 특검 수사를 피할 수 없다. 특히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는 특검법에 명시되어 있다. 민정수석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직무유기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활동을 방해했다는 의혹 등이다. 박영수 특검은 김기춘 전 실장에 대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그분 논리가 보통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역대 특검은 검찰 내부로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검찰 내부에 대해 면죄부나 봐주기 수사를 한다면, 촛불이 향할 곳은 청와대나 광화문이 아니라 특검일 수도 있다. 박영수 특검도 이 점을 잘 아는 듯, 언론과 인터뷰에서 “특검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수사해달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이 수사에 대해서는 좌고우면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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