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달리던 자동차에서 누군가 창밖으로 개를 집어던집니다. 길 위에 버려진 개는 죽을힘을 다해 자동차를 쫓아갑니다. 달리고 또 달립니다. 개는 자신이 가족으로부터 버려졌다는 사실을 여전히 모르고 있습니다.

〈어느 개 이야기〉의 첫 장면은 대단히 충격적입니다. 달리는 차의 뒷모습과 무자비하게 창밖으로 던져진 개의 모습이 간결한 크로키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상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이 장면은 아주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숨이 멎은 것처럼 고요합니다. 마치 작가 가브리엘 뱅상이 빠른 손놀림으로 달리는 차와 허공에 던져진 개를 그리는 순간, 자동차와 개도 함께 멈춰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개를 버린 가족들은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전속력으로 개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개는 달리다가, 달리다가, 달리다가 멈춰 섭니다. 이제 길 끝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길은 아주 텅 비었습니다.

그런데도 개는 포기할 줄을 모릅니다. 이제 고개를 숙이고 길 위에서 냄새를 맡습니다. 냄새를 맡다가 고개를 들어 다시 길을 살핍니다. 그리고 다시 냄새를 맡습니다. 개는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개는 가족들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습니다. 이제 이 개 앞에는 어떤 모험이 펼쳐질까요? 과연 가족들은 개에게 다시 돌아올까요?

〈어느 개 이야기〉 가브리엘 뱅상 지음, 열린책들 펴냄
어릴 때 미술 시간이 생각납니다. 그때 선생님이 크로키를 뭐라고 설명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미술 선생님이 재촉하는 바람에 아주 빨리 그림을 그려야 했고 동작이 느린 저에게 크로키는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도대체 왜 크로키를 연습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가브리엘 뱅상의 그림은 크로키의 위력을 전해줍니다. 간결한 그림에서 뱅상의 빠른 손놀림이 느껴집니다.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뱅상이 그토록 붙잡고 싶었던 삶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뱅상의 그림은 너무나 단순한데도 사진이나 영상이 포착하기 어려운, 살아 있는 순간들을 붙잡아냅니다.

“인간이 개를 키운다는 건 착각이에요”

뱅상이 그린 크로키가 특별한 이유는 그의 그림이 독자에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입니다. 뱅상의 그림은 독자의 가슴을 찌르고, 눈물샘을 톡 터트립니다. 그의 그림은 독자의 마음을 다독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뱅상의 그림책에 글이 필요 없는 이유입니다. 가브리엘 뱅상의 〈어느 개 이야기〉는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벨기에에 〈어느 개 이야기〉가 있다면, 일본에는 충견을 다룬 〈하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라세 할스트롬이 감독하고 리처드 기어가 주연으로 출연한 미국 영화 〈하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유명 감독과 배우가 만나서 이런 후진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실망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재미없다고 불평하면서도 죽은 교수를 기다리는 주인공 개 하치를 보며 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지막에는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어느 개 이야기〉와 〈하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개가 가족과 이별하는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앞서 말한 대로 〈어느 개 이야기〉의 개는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반면, 〈하치 이야기〉의 개는 가족의 죽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별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두 작품이 같은 감동을 지닌 건 개가 먼저 사람을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하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처럼 믿음직한 사람이 드물기 때문 아닐까요?

개는 차별하지 않습니다. 개는 가족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가족을 사랑합니다. 어리든지 늙었든지, 성적이 좋든 좋지 않든, 나아가 인종이나 국가, 성별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개의 가족에 대한 사랑은 무한하고 희생적입니다.

그러고 보니 부처님이 말씀하신 차별 없는 사랑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희생적인 사랑을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는 존재가 바로 개입니다. 분명 개는 인간의 스승이고 사랑 그 자체입니다. 인간이 개를 보호하고 키운다는 생각은 인간의 착각일 뿐입니다.

가브리엘 뱅상의 〈어느 개 이야기〉는 인간의 비정함과 개의 위대한 사랑을 놀라운 크로키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그림책 〈어느 개 이야기〉는 독자에게 아무런 말도 글도 필요 없는, 아주 강렬하고도 뜨거운 체험이 될 것입니다.

기자명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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