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콜롬비아 정부와 좌파 게릴라 반군 ‘콜롬비아 혁명무장군(FARC)’이 휴전협정을 맺었다. 국민투표에서 협상안이 부결되었지만, 양측은 다시 싸울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로써 52년간 지속된 내전의 총성은 멈췄다. 콜롬비아 내전 앞에는 ‘세계 최장기’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따져보면 최장기 내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곳 대부분은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인도 동북부 나가랜드의 분쟁이 1954년부터,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의 모로 반군들과 공산 반군들의 활동이 1969년부터 있었다.

문자 그대로 ‘세계 최장기 내전 지역’은 따로 있다. 바로 미얀마이다. 미얀마 카렌족은 1949년 ‘버마(당시 국가명)’가 독립한 이듬해부터 ‘버마로부터 독립’을 내걸고 무장투쟁을 벌여왔다. 그 미얀마에서도 휴전이 화두다.

카렌족 최대 반군인 카렌 민족연합(KNU)이 지난해 10월15일 ‘전국 휴전’에 서명하면서 카렌 주 교전 상황은 부쩍 줄었다. 그럼에도 66년 내전 기간 카렌 주 무장조직은 분파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모든 단체가 휴전에 동의한 건 아니다. 그런 분파 조직 중 하나로 1994년 카렌 민족연합에서 떨어져나온 ‘민주카렌 불교도군(DKBA·민주카렌 자비군이라고도 불린다)’이 있다. 이들은 친정부 무장단체로 한때의 동지들을 무력화하는 데 크게 기여해왔다. 이 조직이 다시 (친정부) 국경수비대와 반정부 분파 그룹 등으로 갈렸고, 카렌 주에는 지금 최소 6개 무장단체가 난립하고 있다. 미얀마 전역으로 보자면 ‘무장 반군’으로 부를 만한 조직이 20개가 넘는다. 군벌이나 민병대를 제외한 조직만 해도 이만큼 많다. 무장단체가 난립했다는 건 휴전에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전국 휴전(NCA)’이다. 미얀마 전역 모든 반군들과 일괄적으로 휴전하여 총성을 멈추게 하겠다는 야심적인 제안이었다. 그 전국 휴전협정식이 지난해 10월15일 있었다. 하지만 이 협정에 동의한 조직은 초대받은 17개 중 8개밖에 안 된다. 동의한 단체들은 최근 몇 년간 무장 충돌이 없었던 조직이고, 또 지하자원에 기반한 사업권을 따내며 재미를 본 경우가 적잖다.
 

ⓒ이유경미얀마 무장단체 간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위는 카친 주 젊은이들이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장면.

카렌 민족연합도 그중 하나였고 샨 주의 최대 무장조직인 ‘샨 주 남부군(RCSS/SSA)’도 마찬가지다. 정작 총성이 멈춰야 할 카친족 반군과 샨 주의 다른 무장조직들은 협정에 동의하지 않았다. 일부 무장단체는 아예 정부가 휴전 대상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결국 총성을 멈추려던 꿈은 물거품이 됐다. 더 심각한 건 그 전국 휴전이 지금 또 다른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탕 민족해방군(Ta’ang National Liberation Army:TNLA)’ 외무국장 타파안라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샨 주 남부군이 전국 휴전에 서명한 지 정확히 보름 만에 우리 땅을 침범했다. 이들이 전투 물자를 실어 나를 수 있었던 건 정부군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게 바로 미얀마 군의 분열정책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정부군과도 싸우고 샨 형제와도 싸우는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탕 민족해방군은 샨 주에 거주하는 또 다른 소수민족 팔라웅(Palaung)족의 군대다. 이들은 전국 휴전에 초대받지 못했다. 현재 샨 주 북부에 거점을 두고 있다. 반면 이들 영토를 침범했다는 샨 주 남부군은 샨 주 남부에 거점을 둔 단체다. 지난해 10월 정부군과 휴전한 뒤부터 북부에 출몰하는 일이 잦아졌다. 같은 샨 주이긴 해도 북부와 남부 간 이동은 정부군 초소를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짧은 거리라도 정부군 초소를 피하려면 중국 국경으로 나갔다 되돌아오는 방식의 이동을 해야 한다. 병력과 화력을 실은 차량이 국경을 오갔을 리 만무하다. 정부군 협조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올 1월에는 병력 300명가량이 아예 정부군 차량을 타고 북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타파안라 국장은 올해 들어 미얀마 군과의 충돌 횟수가 120회이고 샨 주 남부군과의 충돌 횟수는 103회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전 중인 샨 주 북부에는 샨 주 북부군(SSPP/SSA)과 카친 독립군(KIA) 4여단까지 군 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1월에는 샨족의 일부인 ‘레드샨족’이 자신들의 무장 조직 ‘샤니 민족군(Shanni Nationalities Army:SNA)’을 발족했다. 레드샨족은 이미 친정부 성향의 민병대를 유지해오다 본격 무장조직으로 바뀐 것이다. 샨 주와 카친 주는 남북으로 인접해 있다. 결국 경계가 모호한 카친 남부와 샨 주 북부 일대에는 무장조직 5개가 다양한 전선에서 다투고 있는 꼴이다.
 

ⓒReuters미얀마 곳곳에서 충돌이 빚어지지만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 겸 외무장관은 무력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미얀마 정부군의 분열정책이 통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면에는 전국 휴전에 서명하지 않은 카친 반군 처벌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군이 휴전 그룹과 종족 간의 미묘한 갈등을 이용해 이 일대 거점을 넓히려는 것도 카친 공격을 염두에 둔 전술로 보인다. 카친 주는 2011년 6월, 17년간의 휴전이 깨지면서 미얀마 내전의 최대 격전지가 되었다. 지난 8월 이래 정부군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반군의 수도 라이자(Laiza) 목전까지도 공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병력 보충이 시급해진 카친 독립군들이 무리한 징집을 감행하여 이 또한 논란을 낳고 있다. 〈미얀마 타임스〉의 지난 2월 보도에 따르면 카친 독립군은 이 일대 다른 종족들을 강제징집하고 심지어 납치까지 벌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미얀마 무장단체들은 사실상 자기 종족 내 의무병제를 실시해왔고 미성년자 병사도 고질적 문제로 존재해왔다. 하지만 납치까지 벌이는 건 드문 경우다.

휴전을 변수로 무장단체 간 갈등이 생기면서 이들이 속한 소수 종족 간에도 갈등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미 서부 아라칸 주에서 심각하게 전개돼온 문제다. 2012년 이 지역 라카잉 불교도와 로힝야 무슬림 간에 폭력 사태가 불거졌는데 결국 로힝야에 대한 학살로 이어져 최소 280명이 목숨을 잃었다. 바로 그 아라칸 주에서도 새로운 분열정책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10월9일 로힝야로 추정되는 괴한들이 국경 경찰 초소를 공격해 경찰 9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시민권·기본권을 박탈당해온 로힝야는 그동안 무장조직이 없는 유일한 소수 종족이었다. 그러나 10월의 공격은 이들이 무장저항에 나서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았다. 이 공격 후 미얀마 경찰과 아라칸 주정부는 라카잉 불교도 민간인들을 ‘자기방어’ 명목으로 무장시키겠다고 말했다. 11월7일부터 훈련이 시작됐다. 인권단체 포티파이 라이츠(Fortify Rights)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미얀마 정부는 이를 즉각 중단시키라”고 촉구했다. 아라칸 주에는 이미 라카잉 무장조직인 아라칸 군(AA)이 지난해부터 반정부 게릴라 활동을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국가 공권력이 한 종족만을 무장시킴으로써 두 종족 간 폭력 휘발성을 더욱 증폭했다. 이는 ‘라카잉 무장조직 대 정부군’과 ‘라카잉 불교도 대 로힝야 무슬림’ 등 두 개의 전선을 더욱 선명케 했다.

불교도와 무슬림 간 폭력 사태로 280명 희생

아웅산 수치가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국가자문역 겸 외무장관으로서 미얀마를 이끌고 있지만 내전 종식은 멀기만 하다. 헌법상 국방과 국경 업무 등 내전과 연계된 영역은 민간 정부 휘하에 있지 않다는 점이 우선 한계다. 그렇더라도 수치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수치는 로힝야족 문제 해법을 위해 코피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을 의장으로 하는 ‘라카잉 위원회(‘라카잉’은 아라칸 주의 다른 이름)’를 꾸렸다. 그러나 현재 계속되는 군사작전으로 방화와 살상 그리고 정부군에 의한 로힝야 여성 강간 의혹이 나오고 있지만 ‘라카잉 위원회’는 거의 수면 상태다. 11월15일 코피 아난의 우려 표명이 딱 한 번 나왔을 뿐이다.

기자명 이유경 (프리랜서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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