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대공황의 원인 중 하나는 은행들이 고객의 예금으로 위험한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의 거품이 터져 은행들이 당초의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자 고객들 역시 예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이런 사태가 전 사회적으로 번져나가면서 상당수의 금융거래가 끊겨버린 것이 공황의 실체다.

당시 미국 정부와 의회는 금융공황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글래스-스티걸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예금을 받는 상업은행(Commercial Bank)은 증권 중개 및 발행, 증권투자, 펀드 등 금융투자업을 영위할 수 없게 되었다. 금융투자업을 영위하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들은 예금을 받을 수 없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금융기관이 상업은행업(예금·대출)과 투자은행업을 한 지붕 밑에서 운영할 수 없도록 선을 그은 것이다.

글래스-스티걸법이 폐지된 것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남편인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으로 있던 1999년이다. 이후 금융기관들은 상업은행업과 투자은행업을 겸하면서 덩치를 엄청나게 불렸다. 심지어 금융감독도 느슨해졌다. 현장에서 노는 은행가들이 정부보다 시장을 훨씬 잘 파악하고 똑똑하기 때문에 굳이 금융감독 기관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시장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된 결과였다. 이런 믿음은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로 배신당하고 만다. 당시 미국의 거대 금융복합체들은 상환 능력이 없는 가계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퍼붓는(상업은행업) 동시에 이에 기반한 파생 금융상품까지 발행해서 사고파는(투자은행업) 과정에서 대형 사고를 터뜨리게 되었다.
 

ⓒGoogle 갈무리글래스-스티걸법 부활을 주장하는 시위.

세계 금융위기 직후 집권한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도드-프랭크법을 제정한다. 이에 따르면, 대형 금융기관을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Systemically Important Financial Institution:SIFI)’로 지정해서 엄격히 감독해야 한다. 상업은행은 사모·헤지펀드 등 투자업체에 과도하게 투자할 수 없으며, 파생 금융상품의 거래도 제한된다. 감독 당국인 연방준비제도는 SIFI에 대해 업무 정지는 물론 분리 권한도 갖게 되었다. 법에는 강력한 금융 소비자 보호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고객이 주택을 담보로 받은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경우, 금융기관의 책임도 일부 인정하는 방식이다. 은행이 고객의 상환 능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대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상환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 금융기관들은 도드-프랭크법의 빈틈을 파고들어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도 오히려 덩치를 불렸다. 버니 샌더스를 비롯한 민주당 좌파와 금융 개혁 시민단체들이 상업은행업과 투자은행업의 분리를 명시한 글래스-스티걸법의 부활을 요구해온 이유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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