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20일 오후 2시. 인천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경기장에 정유라(개명 전 정유연) 선수가 등장했다. 경기 10여 분을 치른 후, 그때까지 전광판에는 1등이라고 표시됐다. 마방에 말을 두고 언론 인터뷰에 응한 정 선수에게 SBS 기자가 “(특혜)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정 선수는 “신경 안 쓴다. 공주라는데 기분 좋죠”라고 대답했다. 자신을 둘러싼 특혜 의혹과 관련해 붙은 ‘승마 공주’라는 별명을 스스로 언급했다. 오히려 “진짜 공주(당시 타이 공주가 선수로 출전했다)를 이겨서 기분 좋다”라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정씨가 인터뷰를 하기 직전, 그녀 뒤를 지키던 이가 있었다. 최순실 집안의 또 다른 핵심으로 지목되는 장시호(개명 전 장유진)씨다. 정유라 선수의 사촌언니다.

장시호씨는 최순실씨 언니 최순득씨의 딸이다(29쪽 인물 관계도 참조). 장씨 또한 승마 선수였다. 1997년 대통령배 전국승마대회에서 우승한 바 있다. 승마계의 한 인사는 “사촌언니 (장)시호씨를 따라 주말마다 승마장에 오기 시작한 (정)유라가 네 살 때부터 취미로 말을 탔고, 성악을 공부했는데 소질이 없었는지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승마를 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최순실씨의 조카인 장시호씨(오른쪽) 역시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최순실씨 집안의 일을 20년 가까이 도와준 한 관계자는 “시호가 대학을 가고부터는 승마보다는 연예계 쪽으로 관심을 옮겼지만, 사촌동생 유라의 승마뿐만 아니라 최순실과 관계된 일을 가장 가까이서 챙겼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연예계에 발이 넓은 장시호씨가 차은택 감독을 최순실씨에게 소개했고, 이러한 인연을 기반으로 차 감독이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황태자’로 떠올랐다는 말도 나온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장시호씨의 영향력도 또한 심심찮게 언급된다. 지난해 비영리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설립되는 데 그녀가 힘을 썼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센터는 은퇴한 체육 선수가 스키와 같은 동계 스포츠 종목을 어린이에게 가르치는 사업 등을 한다. 이규혁·전이경 선수와 같은 스포츠 스타가 이사로 이름을 올린 신생 법인이다. 특별한 실적이 없는 이곳에 문화체육관광부가 6억7000만원에 가까운 예산을 배정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삼성 또한 5억원을 후원했다. 장시호씨가 또 다른 실세여서 가능한 일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한 관계자는 10월28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장시호씨는 사무총장도 아니고 여기서 일을 한 적이 없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날 외국에 머물던 이 센터 허승욱 회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장시호씨가 공식 직책이 없었던 건 맞지만, 법인 설립이 잘 안 되고 그럴 때 도움을 준 것 같기는 하다”라고 말했다. 10월27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국내에 남아 있는 장시호씨가 최순실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증거인멸 시도를 하고 있으니 긴급체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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