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채 볶음 만들어줘.” 윤희가 아주 오랜만에 오징어채 볶음을 먹고 싶다는 신호를 보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집 앞 슈퍼에 가서 오징어채를 사왔다. 오랜만의 ‘주문’인 만큼 이번에는 좀 색다르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핵심은 고추기름이다. 야단법석을 피우며 고추기름을 직접 만들었다.

고추기름 레시피는 이렇다. 매운 고춧가루와 안 매운 고춧가루를 1:1 비율로 섞은 다음 마늘·대파·올리브오일과 함께 볶는다. 프라이팬 손잡이를 높여 기름이 모이도록 하고는 가장 약한 불에서 가열한다. 기름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매운 향에 재채기가 나오지만, 고추기름이 제대로 된다는 신호다. 불이 조금이라도 강하면 매운 향보다 탄내가 먼저 난다. 불 조절이 관건이다. 15분 정도 가열하면 맑고 빨간빛이 도는 고추기름을 만들 수 있다.

굳이 고추기름을 내지 않고도 오징어채 볶음은 만들 수 있다. 고추장·설탕·고춧가루·마늘 등을 넣고 양념장을 만든 다음 기름을 두른 팬에 살짝 양념을 무치는 정도로 해주면 된다. 고추장과 고춧가루 대신 간장을 사용해도 되고 이도 저도 싫으면 소금·설탕·마늘만 넣고 볶아도 괜찮다. 이런 식으로 오징어채 볶음을 만들어오다가 최근 어떤 셰프가 고추기름을 직접 만드는 걸 보고 흉내를 내봤다.

ⓒ김진영 제공
귀는 젓갈로, 다리는 술안주로, 몸통은 볶음용

다 된 고추기름은 체에 찌꺼기를 걸러내 맑은 기름만 사용한다. 고추의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은 기름에 잘 녹기 때문에 찌꺼기를 버려도 고추기름에 매운맛이 오롯이 남아 있다. 프라이팬에 고추기름과 오징어채를 함께 넣고 기름이 잘 섞이도록 한 다음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고 살살 볶는다. 오징어채가 볶아졌다 싶으면 불을 끄고 꿀이나 조청을 넣은 뒤 팬에 남아 있는 잔열로 볶는다. 올리고당은 사용하지 않는다. 사실 올리고당이라는 게 설탕을 재가공하거나 GMO 옥수수를 효소 분해해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이미 오징어채 자체에 MSG·설탕·포도당 등이 들어가 있으므로 꿀이나 조청을 넣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꿀이나 조청을 넣으면 오징어채 겉면이 코팅되면서 먹음직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조금씩 넣는다.

요리법이 바뀐 오징어채 볶음에 대한 윤희의 반응이 궁금했다. “윤 어때?” “흠~ 좀 다르네. 나쁘지 않은데? 괜찮아.” 실제로 내가 맛을 봐도 괜찮다. 고추장 위주로 만들었을 때보다 기분 좋은 매운 맛이 도드라진다. 밥도둑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도둑질할 때 망 봐주는 수준은 된다. 남은 고추기름으로 멸치를 볶으면 훌륭한 밑반찬이 된다.

아쉬운 건 오징어 자체다. 급한 김에 슈퍼에서 사온 오징어채는 멀리 남미에서 수입한 ‘대왕오징어’다. 정식 명칭은 ‘훔볼트 오징어’로 2m까지 자라는 대형 오징어다. 페루·아르헨티나·칠레 등에서 주로 수입한다. 이 오징어는 국내에서 여러 가지 가공식품에 사용한다. 넓은 귀는 주로 오징어 젓갈로, 긴 다리는 ‘가문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바뀌어서 호프집 등에서 술안주용으로 팔린다. 몸통은 볶음용으로 쓰이거나 휴게소 등에서 가끔 사 먹는 버터구이 오징어의 재료로 사용한다. 짬뽕의 해산물 건더기 중 얇고 희면서 씹으면 스펀지 질감이 나는 것이 바로 대왕오징어를 얇게 저민 것이다.

국내산 오징어로 만든 것도 있다. 대왕오징어에 비해 씹는 맛이 훨씬 낫다. 문제는 수입산에 비해 가격이 두 배 정도 비싸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이 수입산 대왕오징어를 써야 한다면 요령은 있다. 오징어채를 구매할 때 상온에 있는 것은 피하고, 가능하면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 골라야 한다. 오징어채는 건어물이지만 수분이 많아서 곰팡이가 피기 쉽다. 냉장고에서는 곰팡이가 피기 어렵지만 상온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온에서 파는 것들에는 곰팡이가 필 수 없도록 보존료를 포함한 각종 첨가물이 많이 들어가 있다.

기자명 김진영 (식품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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