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씨, 잘 지내나요
  • 장일호 기자
  • 호수 476
  • 승인 2016.11.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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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보면 된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지금 이 땅에 사는 30대 여성의 삶에 대한 훌륭한 보고서다. 이색적으로 문학평론가가 아닌 여성학자의 작품 해설이 덧붙었다.
출산 열흘 전까지 프로그램 기획안을 썼다. 아이를 낳는 것과 일을 그만두는 것이 ‘같은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불규칙한 출퇴근 시간도,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도 거대한 벽이었다.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10년 동안 만들던 프리랜서 방송작가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전업주부가 되었다. 방송작가라는 번듯한 이름 뒤에 숨은 실체가 비정규직 노동자였을망정, 주부만큼 당황스러운 직업은 아니었다. 자라는 동안, 대학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장래 희망’에 주부는 없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

시간은 자꾸만 흘렀다. 성공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일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일터로 다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바랐다. 친정과 시댁의 도움을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라는 ‘또 다른 여성’을 착취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제는 이 집 말고는 내가 있을 곳이 없구나.

두 시간 간격으로 젖을 찾는 갓난아기와 24시간 씨름하면서 조남주씨(39)는 ‘무언가 하고 싶다’는 욕망을 놓지 않기 위해 애썼다. 할 게 없으면 키보드라도 두드리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보면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내가 왜 잠도 안 자고 이러고 있지… 싶을 때가 많았죠. 근데 나도 쓸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나 스스로에게라도 계속 증명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소설을 써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었지만 ‘읽은’ 경험만은 충분했다.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속 썼다. 이게 소설일까, 혹은 소설 같은 걸까, 의심하면서.

ⓒ시사IN 이명익소설가 조남주씨(사진)는 “쓸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아이가 만 두 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면서 조금이나마 숨 쉴 구멍이 생겼다. 하루 중 반나절 시간을 벌었다. 그 외의 시간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2년 동안 원고지 1000장 분량의 이야기 한 편을 틈틈이 완성했다. 가난하고 지능이 낮은, 그러나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조씨는 이 소설로 제17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았다. 은희경을 배출하고, 천명관의 이름을 알린 바로 그 상이었다. A4 용지 뭉텅이에 불과하던 글이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제목으로 책의 꼴을 얻었다. 조씨 역시 소설가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다.

좋은 직업이었지만, 외로운 직업이기도 했다. 신인 작가에게 지면을 약속해주는 곳은 없었다. 종종 생각했다. ‘이번 생은 망한 것 같다.’ 망하긴 망했는데, 그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때 실패 이후에도 삶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한때 체조 선수를 꿈꿨던 서른여섯 살 백수 ‘고마니’의 이야기는 그 마음 안에 고여 있었다. <고마네치를 위하여>는 은행나무출판사와 논산시가 주최하는 황산벌청년문학상의 제2회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4년 만에 두 번째 책이 세상에 나왔다.

이번에 출간된 세 번째 책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은 조씨가 가장 짧은 기간에 완성한 소설이다. 지난해 9월부터 쓰기 시작해 3개월 만에 탈고했다. 공모전에 내겠다는 목표도 없었고, 누구에게도 청탁받지 않은 소설이 어쩐지 술술 써졌다. 탈고 후 출판사에 바로 투고하는 방법을 택했다. “내 것 말고도 얼마나 많은 소설이 저 메일함에 있을까. 읽어보긴 할까, 반신반의했죠.” 예상을 깨고 한 달 만에 연락이 왔다. ‘문학성·다양성·참신성을 기치로 한국 문학의 미래를 이끌어갈 신예들이 펼쳐가는 경장편 시리즈.’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13번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눈 밝은 편집자는 이 책에 문학평론가가 아닌 여성학자의 작품 해설을 붙이자고 했다.

<82년생 김지영>에는 가정주부로서 작가가 담아두었던 속 깊은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 ‘여아 살해(낙태)’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던 1982년, 운 좋게 태어난 김지영씨가 결국은 ‘맘충’이 된다는 이야기. 김씨는 결국 이상 증세를 보인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엄마로 빙의해 속으로만 삼켰던 말들을 쏟아내는 식이다. “‘데스 노트’ 쓰는 기분이었어요(웃음). 평소 제 속에 있었던 말이 다 나왔다고 해야 할까요. 얼마 전 다른 엄마들하고 그런 얘기를 했는데, ‘왜 광년이는 있는데 광놈이는 없을까’라는. 남자는 미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세상인데, 여자는 미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 아닐까.”

평범하고 흔해서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이름

소설은 김지영씨의 삶을 연대기로 보여준다. 1982년 4월1일, 키 50㎝, 몸무게 2.9㎏으로 서울에서 태어난 둘째아이. 갓 지은 따뜻한 밥을 아버지-남동생-할머니 순서로 퍼 담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지영씨는 남동생이 부럽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원래 그랬으니까. 반장 선거를 하면, 동아리 회장을 뽑으면 꼭 남학생이 뽑히는 일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위협을 당하고도 혼나는 사람은 ‘몸가짐을 단정치 못하게 한’ 김지영씨였다. 소설은 여성들이 숨 쉬듯 경험하는 먼지 같은 차별에 대한 김지영씨의 고백을 각종 통계로 뒷받침하며 ‘팩트’를 완성한다. 지금 이 땅에 사는 30대 여성의 삶에 대한 훌륭한 보고서이자 르포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주인공 캐릭터를 정하기 위해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가장 많이 등록된 여아의 이름을 찾아봤다. ‘지영’이라는 이름, 거기에 가장 흔한 성 중 하나인 ‘김씨’를 붙였다. 김지영씨. 평범하고 흔해서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되었다. 작품 해설을 쓴 김고연주씨의 말마따나 “특수성이 아니라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이 소설의 특수성”이다. 하나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인데, 그래서 주변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러다 보니 눈물 나는 이야기. 모두 다 다른 개인이지만 ‘여성’이라는 정체성 안에서만큼은 한국인의 절반이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김지영씨가 대학생이 되고 회사원이 되고 며느리가 되고 엄마가 되는 동안 세상은 많이도 바뀌었다. 그런데 왜 지영씨의 삶이 나아지는 속도는 그보다 훨씬 더딘 걸까. 조씨는 그 대답을 마지막 장에 숨겨뒀다. “여성혐오 이슈에 대해 말하다가 이야기가 통하지 않으면 저도 종종 ‘당신 딸이라고 생각해봐’라는 말이 튀어나오곤 하는데, 그 말의 한계에 대해 꼭 쓰고 싶었어요. 마지막 장은 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합니다.”

2015년은 작가에게 ‘여성혐오’라는 네 글자를 가르쳐준 해였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이, 당하고도 당한 줄 모르고 그냥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다 성차별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대중매체를 통해 여성 문제와 관련해서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는 여성들을 보면서 저도 각성이 됐던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여성은 이렇게 취급받아 마땅한 사람들인가 하는 질문이 생겼고요.” 모르니까 생각할 수 없었고, 생각하지 못하니까 말하거나 행동할 수 없었던 수없이 많은 경험들이 그제야 선명하게 떠올랐다. 관련 기사와 자료를 스크랩하는 동안 ‘맘충’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던 날의 상처 역시 새삼 또렷해졌다.

이 땅에서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건 사회가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조씨가 자신의 딸 도윤에게 바치는 소설이기도 하다. 딸이 살아갈 세상은 자신이 살아온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되어야 하고, 될 거라 믿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 같은 것들. 그래서 세상의 많은 딸들이 더 크고 많은 꿈을 꿀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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