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가.”

“엄마랑 같이 가.”

“아무리 애들이 괴롭혀도 축구에 꽂혀서 견딜 만했거든. 근데 축구부에 들어간다는 희망이 사라지니까 괴롭히는 애들이 무서워. 맞을 때마다 아파.”

“일단 집에 가자. 선생님한테 말씀드리고 와.”

KBS 드라마 〈공항 가는 길〉 8화에 등장했던 장면이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쓰는 학생의 모습이 쉬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동료 교사에게 “학생들은 언제 학교에 오기 싫어질까?”라고 질문하자 그는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당연히 학교에 오기 싫겠지”라고 답했다. 그러고 나서도 동료 교사는 많은 이유를 꼽았다. “자유로운 학생이 규칙에 얽매이고 늦은 시간까지 있어야 하니 얼마나 가기 싫겠어” “훈련이 너무 힘들었으니 얼마나 가기 싫겠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니 얼마나 가기 싫었겠어” 등등.

교사 생활 첫 학기에는 알 수 없었다. 학생이 중간에 학교에 나오지 않을 줄은 짐작도 못했다. 학기 초 깨끗했던 출석부는 시간이 갈수록 지저분해졌다. 질병에서부터 무단지각, 결과, 결석…. 분명 반갑게 인사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학생이 보이지 않는다. 각 반, 아니 학교 전체가 이 문제로 씨름하고 있다.
 

ⓒ김보경 그림

영환(가명)이는 운동을 했다. 부상도 당했고 운동도 힘이 들었다. 자퇴를 희망했고,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벌었다.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이렇게 지내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집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가족과 연락도 자주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영환이는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채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년에 검정고시를 보겠다면서 “오히려 이런 삶이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진영(가명)이에게 “학교 다니는 게 많이 힘들어?”라고 물었다.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하는 게 힘들단다. 중학교도 간신히 졸업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 “자퇴요.” 또다시 들은 자퇴 얘기에 가슴 한구석이 아렸다. “자퇴하면 뭐 할 건데?”라고 묻자 “운전면허 따서 바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거예요”라고 답했다. 주변 친구들도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자퇴할 거야” “검정고시 보면 돼”라는 이야기를 너무나 쉽게 꺼냈다. 이미 주변에 자퇴한 학생들이 많고 검정고시를 보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들이 자퇴를 입에 달고 사니, 나도 ‘자퇴가 과연 나쁘기만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 안에서건 학교 밖에서건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면 되는 것이 아닐까? 한 동료 교사는 자퇴를 하고 스스로 앞길을 잘 개척하는 아이의 경우도 봤다고 했다. 자퇴하자마자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대학에 진학했고, 교사가 있는 학교까지 찾아와 인사를 했다.

‘나를 발견하는 교재’를 만들어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대개의 경우,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이런 학생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궁리하다 작은 실천을 해보았다. 체험학습을 가는 1학년 학생들에게는 이미 다녀온 선배 학생들과 머리를 맞댔다. 재미있게 체험학습을 할 노하우를 전수받게 했다. 방 포스터 만들기, 버킷리스트 공유하기, 진행 도와주기 미션, 재미있는 단체사진 미션 등 여럿이서 협력해서 할 수 있는 각종 활동거리를 스스로 만들어보게 했다.

또 교사 몇 명이 모여서 ‘공감’이라는 학습 공동체를 꾸렸다. 학교에 부적응하고, 앞으로의 계획이 없거나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상담하고 조언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하기로 했다. 그 첫 시작으로 학생들과 함께 쓸 수 있는 ‘나를 발견하는 교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작은 실천을 통해 얻은 결론은 단순하다. 학생들이 최소한 학교에서 지내고 있을 때만은 진심으로 즐거운 경험을 하게 해주자. 재밌게 학교를 다니려면 친구들과 더 친해지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자. 그러면 학생들도 학교 밖에서보다는 안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갈 것이다. 작은 실천은, 그리고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기자명 차성준 (포천 일동고등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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