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11일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핵에너지에 대한 거부감을 확산시켰다. 2015년 12월12일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총회는 파리기후변화협정(파리협정)을 맺었다. 오는 11월 발효되는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유지하고, 더 나아가 온도 상승 폭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협정이다. 사실상 석탄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태양열·바이오매스·지열·풍력 등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가 주목받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5 세계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서 2040년 세계 에너지 생산의 55%를 신·재생 에너지가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신·재생 에너지 수요는 2011년부터 매년 전년 대비 10% 이상 증가하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 공급이 미미한 한국에서는 100% 신·재생 에너지로만 돌아가는 세상이 실감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이미 와 있다. 〈시사IN〉이 ‘100% 신·재생 에너지’ 도시를 찾았다.

 

 

ⓒ시사IN 이명익

‘레고 마을’ 같은 새하얀 신축 아파트 단지 너머로 해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100% 신·재생 에너지 지역 반슈타트다. 이곳은 말 그대로 신·재생 에너지로만 도시 전체가 운영된다. 반슈타트를 대표할 또 하나의 건축물이 지어지고 있다.

지난 10월5일 오후 5시, 이곳의 주상복합단지 중 하나인 ‘하이델베르크 빌리지’의 상량식 파티가 열렸다. 2015년 착공식을 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다. 2017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완공되면 세계에서 가장 큰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에너지 낭비를 줄인 건물)’ 주상복합단지다.

이날 행사는 소박했다. 공사장 모래밭에 지붕을 올린 하이델베르크 빌리지를 배경으로 세워진 작은 천막이 파티장이었다. 하이델베르크 반슈타트 공공 유치원 어린이 합창단은 행사에서 동요를 불러 흥을 돋우었다. 아이들은 안전모를 쓰고 삽과 양동이를 가지고 놀았다. 공사장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섞였다. 이들은 1년 전 착공식 이후로 매주 ‘수프 키친’을 열어 입주 예정자들과 어울려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위르겐 오츠추크 하이델베르크 시장은 “하이델베르크 빌리지는 특별하고 혁신적인 프로젝트다. 하이델베르크 전체의 탄소 배출을 줄이고 녹색 도시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이델베르크 빌리지를 설계한 건축가 볼프강 프라이가 연단에 오르자 박수가 쏟아졌다. 프라이 씨는 “하이델베르크 빌리지는 무엇보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설계했다. 이곳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물어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이델베르크 빌리지는 1만5000㎡ 규모의 5층 건물 두 개로 이루어진 주상복합단지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보다 조금 더 큰 면적이다. 총 216세대에서 500명 이상이 살거나 일할 계획이다.

하이델베르크 빌리지가 완공되면 일반 건물의 95%까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거주자가 특별히 에너지를 절약하지 않아도 된다. 적은 에너지로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단열재·환기시설·조명시설 등 에너지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도저히 절약할 수 없는 에너지 수요는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된다.
 

ⓒ연합뉴스반슈타트 입주 어린이들도 가족과 함께 상량식에 초대됐다.

이곳만의 에너지 절약 아이디어가 구석구석 숨어 있다. 예를 들어 건물의 겉면에 얇은 벽을 세우고 이 벽에서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했다. ‘수직 정원’이라고 불리는 이런 구조는 여름에는 햇빛을 차단하는 그늘 구실을 하고, 겨울에는 열이 빠져나가지 않게 붙잡는 외투 구실을 한다. 냉난방을 위한 에너지 소비를 그만큼 줄일 수 있다. 덤으로 식물들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는 효과도 누린다.

옥상에 조성될 정원과 텃밭도 에너지를 절감한다. “하이델베르크의 여름은 덥고 건조하다”라며 프라이 건축가는 옥상정원 효과를 설명했다. “보통 건물 옥상 표면의 온도가 80℃까지 올라가는데 이는 실내 온도에도 영향을 준다. 실내 온도를 20℃로 유지하려면 60℃의 온도차를 줄일 만큼 전력을 써야 한다고 가정하자. 옥상정원이 있으면 한여름에도 옥상 표면의 최대 온도가 32℃다. 실내 온도를 20℃로 유지하려면 12℃의 온도차만 줄이면 된다. 그만큼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 빌리지는 에너지를 생산하기도 한다. 창가에는 태양광 패널이 3중으로 비스듬히 설치돼 차양 구실을 한다. 계절에 따라 태양의 고도가 다른 것을 이용해, 여름에는 햇빛을 차단하고 겨울에는 햇빛이 들어오는 각도로 차양을 달았다. 태양광 패널이 생산한 전력은 한국처럼 집으로 끌어들여 바로 소비하지는 않는다. 송전선을 타고 지역 전력회사로 보내진다. 전력회사는 하이델베르크 빌리지에서 생산한 태양광 전력을 독일 재생에너지법(EEG)이 정한 가격에 사들였다가, 다시 그 값만큼 전력을 공급해준다. 각 세대에서는 태양광 전력을 생산한 만큼 전력을 무상으로 쓰는 셈이다. 비싼 축전시설도 집집마다 구매할 필요가 없다.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만들어야”

일반 건물에 비해 다양한 디테일이 추가된 만큼 가격이 더 비싸지는 않을까? 설계를 맡은 프라이 씨는 “감당할 수 있을 만한 비용을 맞추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라고 말했다. 하이델베르크 빌리지의 경우 일반 건물에 비해 건축비용이 15~20% 더 들었다. 이는 집세에도 반영됐다. 세대 크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하이델베르크 빌리지의 ㎡당 월세는 시 전체 평균 ㎡당 월세보다 20% 정도 더 비싸다. 하이델베르크 빌리지는 매매가 가능하지 않고 월세로만 입주 가능하다. 프라이 건축가는 “절약되는 에너지 비용을 생각하면 주거비가 (하이델베르크 일반 주택에 비해) 특별히 더 비싸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프라이 씨는 혁신적인 주거공간 디자인으로 ‘인구 가치’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2015년 독일 환경건설부로부터 상을 받았다.
 

ⓒ Heidelberg Village de하이델베르크 빌리지는 태양광 패널을 차양 대신 설치해 건축비를 절감했다.

하이델베르크 빌리지가 위치한 반슈타트는 에너지 수요 자체를 줄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여준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 못지않게 소비를 줄이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반슈타트가 속한 하이델베르크는 전기 등 에너지원을 전부 독일의 다른 지역에서 사왔다. 현재도 많은 에너지를 프랑크푸르트나 만하임의 발전시설에 의존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시 환경부 에너지 담당 랄프 베르미히 씨는 “우리 지역의 발전 능력 자체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에너지의 경제적 효율성 면에서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난방, 전기를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절약할 수 없는 에너지는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이델베르크 시는 반슈타트를 모범 사례로 앞세워 2050년까지 시 전체를 100% 신·재생 에너지 도시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2012년부터 2014년 6월까지 2년간 ‘기후변화 방지 마스터플랜 100%’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목표를 먼저 정해놓고 거기에 이르는 과정을 탐색하는 ‘백캐스팅’ 방법의 시나리오다(〈시사IN〉 제425호 ‘한국은 여전히 새로운 길 외면’ 기사 참조).

시나리오를 세우는 과정에 하이델베르크 기후변화연구소(IFEU) 전문가와 대학교수·기업인·학생·일반 시민 수백명이 참여했다. 1년6개월에 걸친 전문가 워크숍과 시민 워크숍을 통해 방향성을 제시하고 아이디어를 모았다. 워크숍은 ‘에너지 효율 건물과 리노베이션’ ‘친환경 이동수단’ ‘교육’ ‘전력원 공급’ ‘에너지 효율적 제품과 서비스’ ‘친환경 대학’ 등 7개 워킹그룹으로 나뉘어 현재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찾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시민 중에서는 특히 대학생들의 참여가 활발했고, 이들의 아이디어는 실제 계획에 반영되기도 했다. “오래된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리노베이션 인센티브를 설계하자” “신규 건축물 기준을 발전시키자”라는 아이디어가 특히 주요했다.

시나리오는 100% 신·재생 에너지 도시로 전환하는 과정을 크게 2단계로 나눈다. 1단계는 인구 변화, 에너지 소비 추이 등을 반영한 구체적인 수치를 기초로 전체 방향성과 전략을 짜는 기간이다. 이 전략을 기초로 2단계에서 제도적인 도입을 시작한다. 마스터플랜 시나리오 작성은 1단계에 해당하는 셈이다.
 

마스터플랜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금까지 하이델베르크 시 안에서 시도됐던 신·재생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를 정리하고 그 성과를 평가한다. 과거의 성과를 이어나가고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시나리오는 ‘2050년의 하이델베르크’를 두 가지 모델로 제시한다. 지금처럼 소비·공급 형태를 그대로 유지했을 때와 마스터플랜이 제시하는 다양한 방식을 적용해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모델이다. 2050년 하이델베르크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두 가지 모델을 비교 제시한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마스터플랜 시나리오에 담긴 모델을 추구한다. 바로 이 마스터플랜 시나리오의 핵심이 하이델베르크 빌리지처럼 패시브 하우스를 확대해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는 것이다. 마스터플랜 시나리오대로라면 2050년 하이델베르크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992년 대비 95% 이하, 에너지 소비량은 1992년 대비 50% 줄어든다. 그런 다음, 태양열·바이오매스·바이오가스 발전을 확대해 남은 에너지 수요를 충당한다.

하이델베르크 시가 현재 사용하는 에너지원 중에서는 바이오매스·태양열·풍력 같은 신·재생 에너지가 가장 많고(36.9%, 2015년 11월1일 기준), 수력(33.2%), 석탄 화력(19.6%), 핵(7.9%), 천연가스(1.7%), 가스(0.7%) 순서다. 넥타르 강의 소규모 수력발전소를 제외하면 대부분 독일 내 다른 지역에서 사온 에너지다.

“2050년까지 하이델베르크 시 전체를”

“하이델베르크가 정말 2050년에 100% 신·재생 에너지 도시가 될 수 있겠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베르미히 씨는 “가능하지만 어렵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서 쉽지 않은 과제다. 하이델베르크도 현재 반슈타트라는 한정된 곳에서만 실현하고 있다. 중앙정부, 국제사회가 협력해야만 가능한 프로젝트다”라고 말했다.

하이델베르크는 마스터플랜 시나리오를 실천하고 있다. 지난해 시는 노면 전차(트램)와 시청 건물 등 공공·교통 부문을 100% 신·재생 에너지로 바꿨다. 지역난방을 통해 에너지를 분배하는 인프라도 구축했다. 이웃 도시 만하임에서 기계가 돌아갈 때 발생하는 열로 데운 온수를 하이델베르크 시 동쪽의 대형 보일러에 보내고 개별 주택에 난방을 공급한다. 또한 시민들에게 오래된 건물을 패시브 하우스로 리노베이션하라며 각종 금융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베르미히 씨는 “시민들은 100% 신·재생 에너지 정책을 환영한다. 갈등이 전혀 없지 않지만 불만족스러운 목소리는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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