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서울 대치동의 한 유명 학원 강사가 구속 기소되었다. 6월에 있었던 수능 모의평가 문제를 유출했다는 혐의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보통 한 강사의 커리큘럼을 1년 동안 따라가며 배운다. 갑자기 강사가 사라지면 수강생들은 혼란을 느낀다. 내가 가르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앞으로 구속된 강사가 어떻게 되느냐고 먼저 묻는다. 그 수업을 듣던 친구들은 어떡하나 걱정해주다가, 결국은 자신한테 이득이 될지 아닐지를 따져본다. 당장 수능이 코앞이다 보니 관심이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안 걸렸으면 대박인데” 같은 농담도 나왔다. 그런 일까지 해가며 돈을 벌고 싶지는 않은 대다수 강사와 달리, 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학생들의 점수를 책임져줄 것 같은 이미지를 아이들에게 확실하게 심어주었다.

2014년에도 시험지 유출 사건이 있었다.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가 2년여간 시험문제를 학생에게 돈을 받고 제공한 사실이 적발되었다. 그 학교 학생들은 그가 가장 잘 가르치던 교사였다며 당혹감을 표시했다. 1학기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때였기에 학부모들도 교사가 교체되는 것이 자녀의 성적에 영향을 줄까 염려했다. 아이들은 건너건너 당사자를 아는 이들에게 “(유출 문제를 받은) 그 언니는 대학 잘 갔대?” 하고 물었고 그 호기심은 어른이라고 예외일 리 없었다. ‘그 언니’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대답이 긍정적이지 않기를 바랐다. 불법을 저질러서 얻는 결과가 징벌을 상회할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유혹적이기 때문이다.

ⓒ김보경 그림
시험지 문제 유출은 드문 일이다. 교사 공동체가 추구해온 가치는 물론이고 시험 직전에 문제지가 완성되는 업무 환경을 고려해봐도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교육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 당시에도 강사나 해당 학교를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 이런 일이 터지면 의혹의 눈길은 확산된다. 문제 유출을 염려하며 내신 평가의 공정성을 의심하던 이들의 불안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교사와 강사들은 순식간에 죄인이 되고, 모든 어른들은 열심히 공부해온 평범한 학생들 앞에서 죄책감을 느낀다. 시험지 유출 사건에 대해 한 학부모는 “그동안 조금이라도 더 등수를 올려보려고 아등바등했던 아이들이 생각나 어른으로서 부끄럽다”라며 참담함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그래도 그 수업을 들어서 좋은 대학에 간다면…” 하고 말한다. 학생들 중 몇몇은 ‘안 걸리면’ 돈 주고 시험지를 사오거나 사올 수 있는 강사를 고용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절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뛰어난 점수를 인정하기보다 한 번쯤 의심의 눈초리를 던진다.

‘걸리지만 않는다면…’의 유혹

대다수 강사나 부모들은 부정하게 얻은 결과가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충고한다. 편법을 사용해 얻은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해봐야 대학 교육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라고 아이들을 다독인다. 하지만 솔직히 대학 간판의 힘 때문에 ‘그 언니’의 현재나 미래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치 운동선수들에게 쥐여진 스테로이드 약물 같다. 약물을 복용해서라도 메달을 따고, 걸리지만 않는다면 그는 메달리스트로 남는다.

대학 입학은 성적으로 갈린다. 원하는 곳을 골라서 갈 수 있는 1등이 아닌 이상, 입시는 모두에게 좌절감을 준다. 똑같은 노력을 해도 결과가 시원치 않은 학생들은 ‘타고난 공부머리’가 없다고 자조하고, 자신의 점수에 비해 목표가 너무 높은 학생들은 ‘노력으로는 안 되는 것 같다’고 절망한다. 공부 외의 것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지 못한 학생들이 너무나 많다. 부정과 불법은 이런 학생들의 불안과 답답함에 기댄다. 강사나 학생은 쉽게 유혹에 넘어간다. 성적 외의 다른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걸리지 않는다’는 불확실성 하나에 피워보지도 못한 자신의 가능성 전부를 걸 수도 있다. 학생들의 간절함을 이용해 어른들은 불법이 자라날 토양을 제공한다. 아이들이 공동체 규약을 지키는 일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게 된다면 결국은 사회가 더 큰 손해를 입을 것이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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