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로 진입 7분 후, 생각도 못한 열차가 170km로 달려왔다
  • 전혜원 기자
  • 호수 472
  • 승인 2016.10.0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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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 일대에서 지진이 발생한 다음 날 새벽 김천구미역 인근에서 선로 작업을 하던 노동자 2명이 지연 운행하는 KTX 열차를 피하지 못해 사망했다. 외주업체 비정규직인 이들은 열차 운행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다.
“열차다!” 9월13일 오전 0시47분. KTX 상행선 김천구미역에서 7㎞ 떨어진 지점을 지나던 노동자 11명 중 한 명이 소리쳤다. 맞은편에서 KTX 열차가 시속 170㎞로 달려오고 있었다.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노동자 2명이 숨졌다. 2명은 넘어져 다쳤다.

이들은 모두 코레일 외주업체인 ㅅ업체 노동자다. 매일 열차 운행이 끊긴 시간에 선로 유지·보수 작업을 한다. 사고 시각인 0시47분은 평소라면 열차가 다니지 않았을 시각이었다. 이날은 달랐다. 전날인 9월12일 경북 경주 일대에서 발생한 두 차례 지진으로 열차가 서행하면서 1시간20분 넘게 지연됐다.

지진에 따른 KTX 서행과 지연 사실은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하지만 정작 선로 유지·보수에 투입된 일선 노동자들에게는 이 사실이 전달되지 않았다. 결국 지진 진앙지인 경주에도 없었던 인명 피해가 김천에서 발생했다.

ⓒ경북 김천소방서 제공사고 발생 직전 노동자들은 열차 선로 밖으로 손수레를 밀어냈다. 2명이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건 직후 코레일은 “작업 시간은 새벽 1시부터인데 노동자들이 작업 시간 전 승인 없이 선로에 진입했다”라고 해명했다. 경찰 조사에서 코레일과 ㅅ업체 작업반장의 진술이 엇갈렸다. 0시40분 김 아무개 ㅅ업체 작업반장이 이 아무개 코레일 측 선임 시설관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코레일 시설관리장은 ‘선로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고 주장하고, ㅅ업체 작업반장은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거짓말탐지기 조사도 고려 중이다.

〈시사IN〉은 당시 현장에 투입된 ㅅ업체 작업반장과 노동자를 만났다. 김천경찰서 관계자와 코레일 홍보실, 숨진 송 아무개씨 유족도 취재했다. 취재 내용을 종합해 사건을 재구성했다(이 아무개 코레일 측 선임 시설장에게는 전화와 문자로 수차례 연락했으나 “경찰 조사 중이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뒤에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9월12일 오후 10시30분 경북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코레일 오송고속철도 약목시설사업소에 이 아무개 선임 시설관리장과 ㅅ업체 공구장(책임자), 작업반장 5명이 모였다. 약목시설사업소는 ㅅ업체에 관할 선로의 유지·보수 업무를 맡겼다. 시설사업소는 매일 밤 ㅅ업체에 작업 지시를 내린다. ㅅ업체 노동자들은 이를 ‘코레일 회의’라고 부른다.

이 자리에서 이 아무개 선임 시설관리장이 지진으로 열차가 두 시간 넘게 지연된다는 내용을 전했다고 김천경찰서 관계자는 말했다. 그날 사고 현장이 아닌 다른 팀에 투입된 ㅅ업체 김성호 작업반장도 “두 시간 정도 지연된다고, 허락하기 전에 올라가지 마라, 이런 식으로 분명히 우리한테 이야기했다”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밤 10시40분 ㅅ업체 책임자인 공구장과 작업반장(팀장) 5명은 약목시설사업소 뒤에 있는 걸어서 3분 거리의 건물로 돌아왔다. ㅅ업체 노동자 30여 명은 매일 이곳에 밤 10시에 맞추어 출근한다. 공구장까지 모두 일용직이다. 1년 또는 8개월씩 계약한다. ㅅ업체 공구장은 이들을 네 팀으로 나누어 이날 작업을 배분했다. 그날그날 작업 내용도, 팀도 다르다. 이 짧은 ‘공구장 회의’가 끝난 뒤 네 팀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평소처럼 차를 나눠 타고 각각 작업할 장소로 떠났다.

손수레 밀어내 열차 탈선은 막았지만…

사고가 난 팀은 11명으로 인원이 제일 많았다. 마모된 자갈을 회수하는 업무를 부여받았다. 마대자루 16개와 투광기 등 공구를 싣고 차로 30분가량 떨어진 김천 성내동 ㅅ목욕탕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작업구역으로 가는 선로 진입 게이트(22쪽 사진)가 있는 곳이다.

ⓒ시사IN 전혜원당일 작업 지시를 전달받고 있는 외주업체 노동자들. 코레일과 현장 노동자는 직접 소통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공구장도, 작업반장 김 아무개씨도 노동자들에게 ‘열차가 두 시간 넘게 지연된다’는 이야기는 전하지 않았다. 당시 사고 현장에 투입된 노동자 박재운씨는 “(공구장에게) 지진 나면 책상 밑에 숨으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열차가 지연된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 평소대로 운행될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사고 현장에 투입된 김 아무개 작업반장은 ‘코레일 회의’ 전달사항을 이렇게 기억했다. “오늘 KTX 연착될지 모르니까 현장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지연 시간이 얼마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팀원들에게 열차 지연 관련 이야기를 따로 하지 않았다.

9월13일 오전 0시30분. 김 아무개 작업반장과 노동자 10명이 게이트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갔다. 김 아무개 작업반장이 번호로 된 자물쇠를 열었다. 복수의 ㅅ업체 노동자들에 따르면, 작업반장들은 이 번호를 알고 있으며 평소에도 종종 코레일 측 감독자 없이 게이트 자물쇠를 연다. 작업 시간은 일정하지 않은데, 보통 0시30~40분에 시작한다. 평소처럼 들어갔다는 얘기다.

철조망 벽으로 둘러싸인 해당 게이트 입구에는 코레일 이름이 붙은 파란색 ‘CCTV 안내문’이 ‘본 건물 주요 개소’를 ‘24시간’ 촬영하고 있다고 알리고 있지만, 이 입구를 비추는 CCTV는 없다. 계단을 올라가면 자물쇠 없이 밀어서 여는 철문이 있는데, 이 문을 비추는 CCTV도 없다. 계단을 올라가 철문을 연 노동자들은 철문 앞 노반(궤도를 받치는 토대) 위에 공구를 올려놓고 앉아 10분간 대기했다.

오전 0시40분. 박재운씨가 작업반장에게 코레일 이 아무개 선임 시설관리장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말했다. 박재운씨는 “승인을 받아야 (공구를) 차려서 일하게 돼 있다. 전에도 관리장이 없을 때는 전화로 승인받고 일을 했다. 통화 내용이 들리지 않았지만 관리장이 보고받고 승인한 걸로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김 아무개 작업반장은 기자와 만나 “코레일 시설관리장에게 전화로 ‘작업하러 들어가도 됩니까’라고 물었고, 된다고 해서 들어갔다. 안 된다고 하면 못 들어간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김 아무개 작업반장과 노동자들이 ‘트롤리’라 부르는 손수레에 공구를 싣고 선로를 따라 밀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7분 뒤 “전혀 생각도 못한 열차”가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노동자들은 짧은 순간 손수레를 선로 옆으로 밀어내 열차 탈선과 같은 더 큰 사고를 막았지만, 2명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숨졌다.

ⓒ시사IN 전혜원노동자들은 위 게이트를 통해 작업 현장으로 향했다. 코레일 측은 “승인 없이 선로에 진입했다”고 했지만 노동자들은 “평소처럼 했다”라고 반박했다.
ㅅ업체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승인 없이 선로에 들어갔다가 사고가 났다는 코레일의 설명에 분노했다. 박재운씨는 “자살행위인데 열차가 다닌다고 하면 올라가겠나? 우린 지시에 따라 일을 한다. 코레일이 하지 말라 하는데 기어이 고집대로 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승인 없이 절대 선로에 못 올라간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코레일 감독자가 동행하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다고 입을 모았다. “사고 난 그 자리만 관리장이 없었다”(다른 팀 작업반장 김성호씨). “다른 팀들은 관리장이 다 있었다. 나도 지연 얘기는 전혀 몰랐는데 우리는 관리장이 있어서 그 위에 가서 대기하고 있었다”(사고 현장에서 4㎞ 떨어진 팀에 투입된 한 노동자).

〈시사IN〉이 확인한 사고 당일 작업지시서에는 ㅅ업체 노동자들의 야간작업 시간이 ‘00:40-05:00’라고 되어 있었고, 이들 11명 감독자 난에 이 아무개 선임 시설관리장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현장에 동행하지 않았다. 그날 현장에 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 선임 시설관리장은 “지진으로 급하게 업무 지시가 내려왔다. 선로를 순회하며 점검하는 것으로 근무가 변경됐다”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천경찰서 관계자는 “매뉴얼에는 선로 유지·보수 시 코레일 감독자가 동행하도록 돼 있다”라고 말했다.

코레일 시설사업소 감독자가 없으니 외주업체 노동자들은 열차 운행 주체인 코레일과 연락할 방법이 아예 없었다. 이들의 선로 진입 자체를 관제센터나 역에서는 파악하지 못했다. 당시 사고 현장에 투입되었던 노동자 박재운씨는 “관리장은 전부 다 무전기가 있다. 우리는 무전도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화상이 아니면 연락할 방법이 없다. 코레일 측의 관리 소홀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전혜원
“사고 난 그 자리에만 관리자가 없었다”


이만호 철도노조 대외협력국장은 철도 관제-시설사업소-외주업체로 이어지는 지시 체계의 취약성을 지적했다. “선로 진입은 철도 관제가 판단한다. 관제에서 시설사업소에 막차가 언제 들어간다고 승인을 하면, 시설사업소가 외주업체에 작업 지시를 내린다. 각 주체가 똑같이 협의해 일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렇게 지시받는 시스템에선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외주업체가 관제와 직접 소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차 지연 정보가 단계를 거치면서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도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규직이라면 직통 연락이 됐겠지만 지금 구조에서는 정보가 현장 감독자를 통해 흘러가게 되어 있다. 평소에야 굴러가겠지만 이번 같은 비상 상황에서 홀로 떨어진 외주업체 노동자는 ‘낙동강 오리알’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 번 전달하고 끝날 게 아니라 바뀌는 상황을 계속 소통해야 하는데, 외주업체는 조직의 가장 외부에 있어서 상황 파악이 제일 늦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열차 운행이 끝나지 않은 시각에 선로에서 작업하다 열차에 치인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신태인역 사고로 7명이 사망했고, 2011년 계양역 사고로 5명이 사망했다. 모두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사고 때마다 철도 운행 주체는 ‘작업자들이 관제 승인 없이 예정 작업 시간보다 빨리 선로에 진입했다’고 주장했고, 노동자·유족 측은 ‘운행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다’고 맞섰다.

외주업체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은 이번 사고에서도 반복되었다. 이번 사고로 숨진 송 아무개씨의 동생은 “졸지에 상주 노릇을 하게 된 조카가 고등학생인데 코레일 주장만 실린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코레일은 마치 작업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들어가서 작업하다가 열차에 치인 것처럼 하청업체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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