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지진 이후 사람들의 의구심은 하나로 모아진다. 내가 사는 집은 안전한가, 혹은 안전하게 지어지고 있는가. 여기에 해답의 실마리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건축물의 안전 여부를 검토하는 ‘건축구조기술사’들이다. 일반인에게는 낯선 직업군이지만, 국내에서 내진 설계에 관한 한 거의 유일한 전문가 집단이다. 이들은 벌써 10년 전부터 건축 안전에 구멍이 뚫렸다며 제도 정비를 요구해왔다. 9월21일 정광량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을 만나 건축물 안전 실태를 물어보았다.

건축 안전 실태는 어떤가. 고층건물 거주자들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일단 언론 보도에 문제가 많다. 내가 판단할 때 15층 이상 고층건물은 지진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지진 특성상 건물이 출렁출렁 잘 흔들려야 지진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다. 이걸 ‘댐핑’이라고 하는데, 고층건물일수록 이런 댐핑 구조가 잘 되어 있다. 동일본 대지진 때 고층건물들을 보면 좌우로 엄청나게 흔들리면서도 마감재 하나 안 떨어진다.

그럼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고층건물 거주자가 지진이 났을 때 밖으로 나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괜히 밖에 나갔다가 깨진 유리에 맞아 다칠 공산이 더 크다. 대신 지진이 나면 일단 현관문을 열어놓아라. 지진으로 문이 찌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장실처럼 떨어질 물건이 적은 곳에 피해 있는 게 가장 좋다. 지진 때 인명 피해가 생기는 건 집이 무너져서가 아니라 ‘비구조체’(천장 마감재, 타일, 커튼벽 등)가 떨어져서인 경우가 많다.
 

ⓒ시사IN 신선영정광량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위)은 ‘내진 성능 확인 특별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지금 가장 위험한 건축물은?

현행 건축법상 3층 미만 건물은 내진 설계를 안 해도 된다. 내진 설계가 아예 되지 않은 3층 미만 오래된 벽돌 건축물이 가장 위험하다. 벽돌은 유리 다음으로 유연성이 떨어지는 건축 재료다. 외부 충격이 오면 철근은 휘어지면서 버티지만, 벽돌은 어느 순간 빠개진다. 단순히 건물 외벽을 벽돌로 마감한 건축물이 아니라, 구조물 자체가 벽돌로 된 경우가 위험하다. 등기부등본에 ‘연와조’ 건물이라고 돼 있다. 서울 강북 지역에 많이 있다.

내진 설계가 도입된 1988년 이전에 지은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경우는 어떤가?

내진 설계 도입 여부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지진이 났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사실 땅이다. 땅이 지진에 취약하면 아무리 튼튼한 건축물도 무너진다. 경주에 방폐장이 들어선 이유가 땅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암반 덩어리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활성 단층이 그 근처에 있는 거다. 이번 지진의 규모가 5.8인 데 비해 피해가 적었던 이유도 땅이 튼튼해서다. 다른 나라였다면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1985년 멕시코시티 대지진의 피해가 막심했던 것은 그 땅이 매립지였기 때문이다. 타이완 지진이나 쓰촨성 지진 때도 보면 지진 이후에 산 하나가 사라질 정도로 땅이 취약했다.

우리나라가 지진에 강한 지형이라는 이야기인가?

문제는 지금 전 국토에 건물을 짓고 있다는 점이다. 지반이 취약한 지역에 지은 건물은 염려가 된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타이완이나 일본 고베 지진 때 현장에 가보니까 ‘비정형 건물’(정사각형이 아닌 기역자, 니은자 형태 등으로 지은 건물)이 쉽게 틀어지더라. 1층에 상가나 주차장이 들어선 ‘필로티 건물’도 문제다. 국내 다세대주택 대다수가 이렇다. 필로티 건물에 비정형이면 아주 취약하다.

국토부가 2층 이하 건물에도 내진 설계를 의무화한다고 하는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몇 층짜리 건물에 내진 설계를 하느냐는 건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내진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다세대주택의 경우 아예 건축구조기술사가 참여할 통로가 없다. 주택 감리 과정에서 업자들이 마음대로 처리하는 곳이 대다수다.

왜 이런 문제가 오랫동안 방치되어왔을까?

결국 자격증 싸움 문제가 컸다. 아무래도 건축업계가 건축사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건축 안전에 대한 업무 전반까지 건축사가 다 하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종합병원 병원장(건축사)이 정형외과 의사(건축구조기술사)가 해야 할 수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내진 설계에 관한 한 건축구조기술사가 전문가인가?

정확히 말하면 건물의 뼈대에 관한 전문가다. 그런데 우리는 법적으로 ‘건축관계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건축관계자는 건축주·설계자·감리자·시공자를 말한다. 우리는 이들에게 협조해야 하는 ‘관계전문기술자’로 규정돼 있다. 우리가 건축 과정에 참여하느냐 마느냐는 이들 건축관계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이런 현실에서 건축사들이 굳이 건축구조기술사를 쓸 필요가 없다. 돈이 드니까. 쉽게 말해 건축사들이 정규직이라면 우리는 비정규직이라고 보면 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나. 설계부터 기초 골조공사, 마감재 작업이 끝날 때까지 건축구조기술사가 참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설계도면대로 시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까지 생긴다.

 

 

ⓒ시사IN 신선영서울 신대방동 보라매 안전체험관 지진 체험장에서 시민들이 안전 대비 훈련을 받고 있다.

설계대로 시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예컨대 기둥을 세울 때 철심(주근)을 박은 뒤 이를 다시 철근으로 감싸게 되어 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내진 강도가 크게 달라진다. 현장에서는 이게 굉장히 귀찮은 일이다. 설계도면에 나와 있어도 제대로 되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 어느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더니 공사 관계자가 지적 사항을 다 삭제해달라고 하더라. 지적 사항을 받아들이면 이미 만들어진 것까지 다 새로 처리해야 하니까. 건축구조기술사가 처음부터 공사 감리자로 참여하게 되면 이런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

내진 설계를 강화하면 건축비용이 크게 늘어나는 것 아닌가?

서울 개포동 재건축 단지 분양가가 1평(3.3㎡)당 4000만원 정도다. 그런데 아파트 총공사비가 3.3㎡당 400만원 수준이다. 총공사비의 30%인 120만원 정도를 골조공사 비용으로 쓴다. 내진 설계 비용은 골조공사비의 10%에 불과하다. 많아야 3.3㎡당 15만원이다. 도어록도 몇십만원씩 하는 마당에 이 정도 내진 설계 비용이 많은가.

이 문제의 책임자는 결국 정부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진 성능 확인 특별법’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기존 법을 고치려고 하면 복잡해진다. 재난안전관리법 등과도 충돌하고. 골조 설계, 건물 보강, 대피방법 등 내진에 관계된 것만 가져와서 특별법을 만드는 게 답이라고 본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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