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수확의 계절이 왔다. 올해 추석은 9월15일, 이른 추석이다. 농민이나 식품 제조업자, 유통업자들은 소비자들보다 추석 준비가 이르다. 보통 유통업자는 추석 명절 90일 전에 준비에 들어간다. 당연히 제조업자와 농민은 그보다 더 이르게 추석 채비를 한다. 이런 추석 명절이 닥치면 농민·제조업자·유통업자 모두 ‘대략 난감’해진다.

적어도 8월 중순부터 작물을 수확해야 하므로 맛도, 모양새도 제대로 내기 어렵다. 올해는 난감함을 더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열대야다. 열대야는 사람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다. 과일이나 곡식도 온도가 적당해야 맛이 드는데 열대야가 그걸 막는다. 식물은 한낮에 햇빛으로 광합성을 하고, 땅의 기운을 받아 영양분을 비축한다. 밤이 되어 기온이 25℃ 이하로 떨어지면 비축한 영양분으로 몸을 키우고 맛을 농축한다. 열대야가 지속되면 식물도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멍한 상태로 지속된다. 사람이 더우면 무기력해지듯 과일이나 곡식도 사람처럼 축 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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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8월28일 부산 반여농산물도매시장에서 소비자들이 각종 과일을 살펴보고 있다. 올해는 이른 추석이라 조생종 과일과 곡식으로 차례를 지내야 한다.

지난여름의 무더위와 상관없이 올해도 추석은 어김없이 코앞에 다가왔고 차례상 걱정을 해야 한다. 아는 사람들 중에는 벌써부터 올 추석 음식 맛 때문에 가족모임이 불편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알고 준비하면 쥐구멍에도 볕이 든다. 돈 낭비도 막을 수 있다. 몇 가지 추석 음식 준비 요령을 알아보자.

쌀은 조금씩 자주 사라

8월 휴가철에 바다로 계곡으로 오가는 길에 넓게 펼쳐진 논을 만난다. 다른 벼들이 진한 녹색으로 물들고 있을 때 유독 어떤 논의 노르스름함이 눈에 띈다. 벼에 병이 들었나 할 수도 있겠지만, 추석에 맞추어 수확하기 위한 극조생종 벼를 심은 논이다. 말 그대로 아주 빠르게 자라는 품종이다. 극조생종 벼는 모내기한 후 100~120일 정도면 수확을 한다. 일반 벼가 150일 지나야 수확하는 것에 비해 빠르다. 극조생종의 미덕은 ‘빠름’이다. 대신 ‘밥맛’의 희생을 요구한다. 이는 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극조생 혹은 조생 품종 식물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우리가 살면서 빠르고도 정확하게 일을 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빠른 만큼 손실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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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맞추어 나오는 햅쌀은 수분이 많을 수 있다. 밥을 지을 때 평소보다 물을 적게 잡아야 한다.

농산물의 손실은 바로 맛이다. 그렇다고 전혀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철에 나오는 것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추석에 맞추어 나오는 햅쌀은 수분이 많을 수 있다. 수확한 후 벼를 말리는 기간을 충분히 둔 후 도정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탓이다. 쌀 안에 수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수분이 많고 조직이 여물지 못하니 밥을 지을 때 평소보다 물을 조금 넣어야 한다. 그러므로 추석 전에 나오는 햅쌀은 2~4㎏의 소포장으로 조금만 사는 것이 좋다. 추석 전에 나오는 쌀은 그저 차례상에 올리고 식구들끼리 나눠 먹을 수 있는 양이면 된다. 지난해 생산된 쌀 역시 여름을 넘기고 나면 미질이 떨어진다.

평소에 맛있는 쌀을 구입하는 방법은 이렇다. 첫째, 도정 날짜가 오래 지나지 않아야 할 것. 도정한 지 보름이 지나면 산화가 진행돼 미질이 떨어진다. 도정 날짜가 구입하는 날과 가까워야 한다. 당연히 소량 포장으로 자주 사는 게 좋다. 둘째, 품종에 ‘혼합미’라 표시된 것은 가급적 피하자. 쌀 포장지에 혼합미라고 표시된 것은 묵은쌀, 품종이 서로 다른 것, 수입 쌀 등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쌀을 섞어 도정하고 포장한 것이다. 혼합미는 대부분 가격을 낮추려는 방편이다.

배는 황금배로, 사과는 골이 깊은 것으로

벚꽃이 질 즈음 사과와 배가 하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꽃이 만발하면 가지마다 꽃을 일부러 따낸다. 가지에 너무 많은 열매가 열리면 나무도 힘들거니와 과일의 크기나 맛이 좋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량을 조절해 품질을 높이는 자연스러운 작업이다. 이처럼 농사는 자연과 호흡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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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황금배가 과즙이 풍부하고 당도가 높다. 감천·만풍 품종의 배도 맛이 좋다.

하지만 요즘은 자연과의 호흡에 ‘요상한 과학’이 슬쩍 끼어들었다. 1938년 일본인이 발견한, 식물의 성장을 돕고 착색을 유도하는 과학 말이다. 대표적인 이름은 ‘지베렐린’이라는 식물성장 호르몬이다. 지베렐린 외에 아토닉·토마토닉 등이 있다. 배는 예전보다 크기가 커졌고, 포도는 알 하나하나가 크고 송이가 탐스러워졌다. 다 지베렐린 덕이다. 성장호르몬을 사용하면 과일은 색이 돌고 커지지만 맛있게 만들지는 못한다. 순리에 따라 세포 수가 많아져 조직이 치밀해져야 야물고 맛있는 과일이 생산된다. 하지만 호르몬의 작용으로 세포 수 증가보다는 세포의 크기가 커져 쉬이 물러진다. 맛은 밍밍하고 아삭함이 떨어진다. 최근에는 호르몬을 1년에 한 번만 도포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을 치는 경우도 있고, 지베렐린의 농도가 몇 배 높은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예쁘고 큰 것만이 최고라 여기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이러니 추석에 맛보는 배가 맛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배는 결코 맛없는 과일이 아니다. 추석이 끝날 무렵 지베렐린을 치지 않은 원황을 시작으로 겉이 푸른색과 노란색이 도는 황금배가 나온다. 황금배는 과즙이 풍부하고 당도가 높다. 껍질이 두꺼운 신고배와 달리 껍질째 먹으면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저장성이 본디 떨어지는 품종으로 잠시 나왔다가 사라진다. 때를 놓치면 다시 또 1년을 기다려야 맛볼 수 있다. 그 이후에도 감천·만풍 등 맛있는 배가 계속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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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새콤한 홍옥이 인기였지만, 소비자들이 달콤한 것을 좋아하면서 홍로(위) 사과가 더 인기다.

사과는 배와 달리 지베렐린 처리를 하지 않는다. 한여름에 아오리·아리수 등 극조생이 나오기 시작하고 9월 초면 해발고도가 높은 장수·진안·함안·무주·남원 등지에서 홍로 사과가 나온다. 예전에는 새콤한 홍옥이 인기였지만, 소비자들이 ‘새콤’보다는 ‘달콤’을 더 선호하면서 홍옥은 찾기 힘들어졌다. 차례상에도 대개 홍로가 올라간다(부사의 경우 대개 추석 이후에나 수확이 가능하다).

사과는 지베렐린 대신 비료 조절과 햇빛 반사판을 이용해 색을 입힌다. 성장에 필요한 마그네슘은 줄이고 칼슘을 넣어 색이 나도록 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알루미늄 반사판을 깔아 사과의 밑부분까지 색이 나도록 한다. 저절로 익는다기보다는 사과를 익히는 것이다. 홍로는 둥근 모양이 아니라 각이 진 모습이 특징이다.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서 나올수록 사과 꼭지 부분의 골이 깊고 당도나 아삭함이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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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전을 만들 때는 재래시장 생선 가게에서 냉동 생선을 사서 포를 뜨는 것이 좋다.

동태와 대구는 통째로 얼린 것으로

차례상에 오르는 대표적인 전의 재료는 대구와 동태다. 국내산은 없고 전량 수입산이다. 대구는 국내에서 잡히기는 하지만, 가격이 비싸거니와 따로 전 용도로 팔지 않는다. 마트에서 깔끔하게 포장된 전감을 사와 부치면 푸석한 식감에 맛도 별로다. 왜 그럴까. 수입 생선은 바다에서 잡는 즉시 바로 급랭한다. 이 냉동 생선을 전감으로 만들기 위해 1차 해동한 후 포를 뜨고 다시 얼린다. 우리는 대형마트에서 이 냉동 포를 사다가 다시 해동해 요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량의 수분이 생선살에 유입된다. 일부 생산자는 양을 늘리기 위해 물을 살에 강제로 넣기도 한다. ‘냉동→해동→2차 냉동→2차 해동’의 과정을 거치면서 살맛도 함께 빠진다.

전은 차례 전날 부쳐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원재료의 맛이 더욱 중요하다. 가급적 재래시장 생선 가게에서 냉동 생선으로 포를 뜨는 것이 좋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포장 제품에 비해 냉동과 해동을 한 번씩 덜하기에 식감이 낫다. 대구는 아예 포를 떠주는 곳이 없다. 굳이 물량이 부족한 대구를 고집할 게 아니라 동태 같은 다른 전감으로 대체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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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는 재래시장의 즉석 두부가 특유의 고소함과 구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두부는 재래시장 즉석 두부로

두부는 콩을 삶아 두유를 만들고 간수를 더해 만드는 식품이다. 콩의 품질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간수, 즉 응고제다. 응고제의 활용 여부에 따라 콩으로 만들 수 있는 두부의 양이 달라진다. 통상적으로 염화마그네슘, 글루코노 델타락톤, 밀키 마그네슘 등을 응고제로 많이 사용한다. 그중 두부 맛이 가장 좋은 것은 염화마그네슘이지만 만드는 사람이 일일이 신경을 써야 한다. 요즘에는 제조업체에서 다루기 쉬운 밀키 마그네슘을 많이 쓴다. 여기에 최신식 전자제어 기술이 만나면서 생산량이 늘어난 대신 두부가 싱거워졌다. 두부 생산량이 많아진다는 것은 콩 성분 대비 물의 비율이 높아져 싱거워졌다는 의미다. 두부를 기름에 부치다 보면 기름이 많이 튄다. 두부에서 물이 나와 생기는 현상이다.

더욱이 포장 두부가 유통되면서 콩의 구수한 향까지 희미해졌다. 유통을 위한 살균 과정에서 두부의 콩 향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두부 역시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는 재래시장에서 파는 즉석 두부가 훨씬 낫다. 유통기한이 짧은 대신 두부 특유의 고소함과 구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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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는 집에서 10일~30일 숙성해서 먹으면 사후 경직이 풀려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소고기는 꼭 숙성시켜서

우리는 소고기를 가장 맛이 없을 때 먹는다. 무슨 소리인가 할 것이다. 소는 도축 후 검사를 위해 계류장에서 하루 정도 냉장한 다음 작게 나누어 판매장으로 유통시킨다. 도축 후 일주일 정도면 거의 소비된다. 동물은 죽을 때 근육에 있던 산소와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근육이 경직된다. 문제는 소 근육이 사후 경직으로 가장 단단할 때가 도축 후 일주일 즈음이라는 점이다. 사후 경직은 냉장 온도인 10℃ 이하에서 적어도 일주일 이상 지나야 풀리기 시작한다. 경직이 풀리기 전에 소비되다 보니 맛이 가장 없을 때 먹는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지방이 많은 높은 등급의 경우 지방이 윤활유 구실을 해 퍽퍽함이 느껴지지 않지만, 낮은 등급의 경우 질기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낮은 등급의 소고기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 ‘숙성’이 그 해답이다. 웨트에이징(wet aging:습식 숙성)은 진공포장한 고기를 0~4℃에서 숙성시키는 방법이다. 숙성은 어렵지 않다. 가정용 김치냉장고에서 하면 된다. 김치냉장고가 없을 경우 얼음을 채운 밀폐 용기에 해도 괜찮다. 고기를 살 때 정육점에서 진공포장을 부탁하면 된다. 숙성한 지 열흘이 지나면서 경직된 근육이 풀어지고 효소 작용으로 근섬유가 절단된다.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면서 감칠맛을 내는 글루타민산도 증가해 맛이 좋아진다. 숙성 기간이 길수록 좋겠지만, 집에서 하는 경우 10~30일이면 충분하다. 2~3등급 소고기를 1등급 부럽지 않게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요즘 추석은 농산물 수확이 끝나는 날이 아니다. 가을이 제철인 농산물의 맛이 들기 시작할 때다. 추석이 지나고 밤이 선선해질수록 과일은 커지고 단맛이 깊어진다. 고개 숙이던 벼는 알갱이가 좀 더 야물어진다. 가을은 홀로 오지 않고 다양한 맛과 같이 온다. 추석이 지나면 비로소 ‘맛있는 가을’이 시작된다.

기자명 김진영 (식품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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