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의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연간 1.5% 내외다. 저축은행에서도 2~2.5% 정도. 1억원을 예금해두면 연간 150만~250만원(월 12만~21만원)가량의 이자를 받는다. 1990년대만 해도 정기예금 금리는 10% 정도였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에는 20%까지 치솟았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르는 사이 ‘돈의 값’이 그만큼 떨어진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특히 2008년 가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정부들이 경기부양 차원에서 기준금리(중앙은행과 시중은행이 돈을 거래하는 금리)를 대폭 내리면서, 저금리 현상이 본격화되었다. 심지어 일본과 유럽연합(EU)의 기준금리는 최근 1~2년 사이 마이너스 수준으로 돌아섰다.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예치하는 경우, 이자를 받기는커녕 ‘보관료’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원금 손실의 위험을 무릅쓰고 주식에 투자해도 만족할 만한 금융수익을 얻기 힘들다. 돈을 예금이나 투자로 맡겨서 괜찮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글로벌 차원에서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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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지난 8월26일 일본 도쿄의 한 증권사 전광판에 나타난 세계 주요 증시 주가지수. 주가지수가 소폭 상승하는 동안 선진국의 국채 가격은 급등했다.
이런 와중에 올 들어 ‘대박’을 친 투자 상품이 있다. 바로 선진국 정부가 발행해 판매하는 국채다. 지난 6월30일자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파운드화로 올해 초 일본의 40년 만기 국채를 샀다면, 투자한 돈을 6개월 동안 95.8%나 불릴 수 있었다. 미국 달러 기준으로 봐도, 40년 만기 일본 국채 가격이 같은 기간 77%나 올랐다. 일본 이외에 미국·독일·영국 등에서도 국채 가격만은 크게 상승했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미국의 대표적 주가지수인 S&P500은 1.3% 올랐을 뿐이다. 범유럽 지수인 스톡스(Stoxx)600은 오히려 10.75%나 떨어졌다.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2.6% 상승했다. 선진국 국채는 올해 금융상품 세계에서 유일한 승자였다.

세계를 강타한 ‘국채’의 부상

국채는 원래 대박을 노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국가가 채무자인 만큼 원금과 이자(금융상품 가운데 가장 낮은 편)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정도가 국채의 장점이었다. 설마 국가가 돈을 떼먹겠는가! 이런 국채가 대박 상품으로 떠오른 이유는 그 가격이 ‘지나칠 정도’로 올랐기 때문이다. 반면 수익률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국채를 만기까지 보유하는 경우, ‘마이너스 수익’, 즉 손실을 내게 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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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이한 현상을 이해하려면 간단하게나마 국채가 어떤 금융상품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채는, 국가가 돈을 빌렸다는 증서다. ‘언제 얼마를 돌려주겠다’고 기입되어 있다. 만기(2~3개월이나 6개월의 단기에서부터 10년, 30년, 40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에 국채를 제시하고 정해진 금액을 받는다. 이 만기 상환금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만기 이전에 국채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일반 상품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의 변동에 따라 국채 가격 역시 위아래로 요동친다. 일반적으로는 만기에 받을 금액보다 얼마나 싸게 샀느냐에 따라 투자자의 수익률이 결정된다.

정부가 1년 뒤에 1만2000원을 주는 조건으로 1만원(가격)에 국채를 발행했다고 치자(왼쪽 그림 참조). 국채를 매입한, 그러니까 국가에 돈을 빌려준 투자자는 1만원을 투입해서 2000원의 수익을 얻는 것이니 수익률은 20%다. 국채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가격이 9000원으로 내려갔다. 이 시점에 국채를 매입하면, 9000원을 투자해서 만기에 3000원(만기 상환금 1만2000원-국채 가격 9000원)의 수익을 얻게 된다. 수익률은 33.3%(3000원÷9000원×100)다. 반대로 국채의 인기가 높아져 가격이 1만1000원으로 상승하면 어떻게 될까? 1만1000원을 투자해서 1000원의 수익(상환금 1만2000원-국채 가격 1만1000원)을 버는 것이니 수익률은 9%(1000원÷1만1000원×100)다.

지금까지 봤듯이 국채의 가격과 수익률은 반비례한다. 즉, 국채 가격이 오르면 수익률은 떨어진다. 국채 가격이 내리면 수익률은 올라간다. 어떤 나라의 국채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수요가 높아 그 가격이 오른다(수익률이 떨어진다)는 것은, 해당국의 신용도가 더욱 강화되었다는 의미다. ‘A국 국채의 수익률이 떨어졌다’는 말은 ‘A국의 신용도가 높아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선진국 국채를 사두었던 투자자들이 대박을 터뜨린 이유는, 해당 국채에 대한 수요(와 가격)가 엄청나게 올라버렸기 때문이다. 만기에 1만2000원을 상환받는 국채의 가격이 1만4000원까지 상승하는 경우다. 1만4000원을 투자해서 1만2000원을 돌려받게 되니, 2000원 손해다. 수익률은 -14.3%(-2000원÷1만4000원×100). 즉, 수십억~수백억 달러를 운용하는 글로벌 투자기관들이 손실을 각오하면서 선진국 국채를 매입해 가격을 띄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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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이미 일반화된 현상이다. 8월31일 현재, 10년 만기 일본 국채의 수익률은 -0.075%다. ‘5년 만기’는 -0.19%. 2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은 가까스로 0.303%를 유지하고 있으나 지난 7월 초에는 사상 최초로 0% 이하를 기록한 바 있다.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 역시 8월30일 현재 -0.093%(5년 만기는 -0.52%)다. 3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 역시 0.45%로 매우 낮은 편이다. 글로벌 경제 전문 매체인 〈블룸버그〉 8월3일자에 따르면 독일 국채 가운데 80% 이상이 마이너스 수익률 상태다. 이 밖에 프랑스·스위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의 국채 가운데 상당수의 수익률이 마이너스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국채 수익률도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무른다.

선진국들의 국채 수익률은 올 들어(특히 지난 6월23일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더욱 급격히 떨어졌다. 그만큼 국채 가격은 올랐다. 30년 만기 영국 국채 가격의 경우, 지난해 6월 말에서 1년이 흐르는 사이 31%나 상승했다.

채권 관련 정보 업체인 트레이드웹이 〈파이낸셜 타임스〉(8월12일)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8월 둘째 주 현재 마이너스 수익률로 거래되는 채권의 가치가 글로벌 차원에서 13조40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한국 국내총생산(GDP·1조4400억 달러)의 약 9배이며, 중국 GDP(10조3000억 달러)보다는 많고 미국 GDP(17조4000억 달러)에는 못 미치는 액수다.

‘손실 보장’ 국채의 어디에 끌려서?

투자기관들이 ‘손실을 보장하는’ 선진국 국채를 앞다퉈 매입해온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이 추진해온 경기부양 정책의 직접적 결과다.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국은 2009년부터 잇따라 이른바 ‘양적 완화’를 추진해왔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을 비롯한 민간이 보유한 국채 등 금융자산을 대량 매입하는 방식이다. 시중은행은 갖고 있던 국채를 중앙은행에 넘긴 대가로 현금을 받는다. 이 현금을 실물경제에 많이 대출해서 경제를 살리라는 것이 양적 완화의 본래 취지였다. 다른 한편, 중앙은행이 국채를 대량 매입하는 것은, 국채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늘어나고 가격 또한 오른다는 의미다. 국채 가격이 오르면 국채 수익률은 떨어지는데, 이에 따라 사회 전반적으로 여러 금리들이 내려가게 된다. 국채 수익률은, 국가에 돈을 빌려준 대가다. 국가는 빌려간 돈을 갚지 않을 위험성이 거의 없는 최우량 채무자다. 그러므로 국채 수익률은 마땅히, 다른 모든 금리들(국가보다는 미상환 가능성이 높은 은행·기업·개인 등에 돈을 빌려준 대가)보다 낮아야 한다. 실제로 금융시장에서는 국채 수익률을 가장 밑바닥으로 삼아 다른 금리들을 책정한다. 국채 수익률이 내리면(오르면), 다른 금리도 인하된다(인상된다). 양적 완화는 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일본과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까지 시행했다. 시중은행들이 양적 완화로 받은 막대한 현금을 실물경제에 대출하지 않고 중앙은행에 맡겨놓는 관행을 막기 위해서다. 원래 중앙은행은 시중은행이 맡긴 돈에 대해 이자를 제공했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 제도하에서는 이자를 주는 것이 아니라 보관료를 받는다.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100억원을 맡겨놓으면 한 달 동안 예컨대 1억원을 떼어가서 99억원만 남겨놓는 방식이다. 시중은행에게 ‘돈을 중앙은행에 맡겨놓지 말고 실물경제에 대출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금리가 떨어지면서, 투자기관으로서는 안정적으로 돈을 맡길 대상이 희귀해졌다. 이에 따라 주식시장으로 돈이 흘러들어가 주가를 대폭 올리기도 했다. 미국 다우존스 지수는 8월29일 현재 1만8502.99로 최근 5년을 통틀어 최고 수준이다. 나스닥과 S&P500 지수도 마찬가지다. 이와 함께 좋은 투자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선진국 국채다. 선진국 정부들이 국채를 대량 매입한 덕분에 시장에 남은 국채 공급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양적 완화나 마이너스 금리 등 국채 가격을 대폭 올린 정책들도 계속 시행되리라 예측되었다. 그렇다면, 설사 선진국 국채를 마이너스 수익률로 매입하더라도(만기 상환금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사더라도), 국채 가격이 계속 오를 가능성이 크다. 만기 이전에 더 비싸게 팔면 된다. 더욱이 국채의 만기는 20년, 30년, 40년 등으로 굉장히 길기 때문에 시간 여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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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실시된 지난 6월23일 이후, 영국 국채 가격이 대폭 상승했다.
한편으로 선진국 국채의 마이너스 수익률은, 글로벌 투자기관들이 세계경제의 미래를 극히 비관적으로 예측하고 있다는 증거다. 실물경제 부문의 민간 기업에 빌려주거나 투자(주식 매입)하는 경우, 원금도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비해 일본·독일 같은 국가가 빌린 돈을 갚지 않을 위험은 거의 없다. 조금 손실을 입더라도 투자금을 틀림없이 돌려받는 국채를 매입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투자금을 안전하게 상환받는 것 자체가 수익률보다 훨씬 중요하게 고려될 정도로 경제 전망이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역사상 최대의 채권 버블 시대

최근 들어 선진국 국채의 마이너스 수익률에 대해 부쩍 경고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280억 달러를 운용하는 헤지펀드 엘리엇의 폴 싱어 회장은 지난 8월 말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채권 시장은 이미 붕괴했고… 국채 가격이 갑작스럽게 폭락할 수 있다. (투자자들이) 세계 역사상 최대의 채권 버블에 직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 투자기관 야누스 캐피털의 펀드 매니저로 ‘채권왕’이라 불리는 빌 그로스는 〈파이낸셜 타임스〉(8월18일) 기고문을 통해,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저금리 정책에 따른 마이너스 국채 수익률이나 마이너스 금리 같은 현상이 실물경제에 결코 이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런 정책들이 시행된 뒤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생산성 성장이 지체되고 투자율 역시 회복될 기미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들은 저금리 정책에 따라 풍부해진 현금을 “성장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자사주를 매입(자기 기업의 주식을 매입해 소각하는 방법으로 주가를 부양)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매년 5000억 달러 이상의 기업 자금이 미래의 이윤을 늘리기보다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금 인상 등을 통해) 투자자들만의 소득을 높이는 데 지출되고 있다. 돈이 실물경제로부터 금융자산 보유자들에게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로스는 중앙은행들이 실물경제의 엔진을 망가뜨리고 있다며 대규모 정책 전환을 요구한다. 양적 완화와 마이너스 국채 수익률 같은 저금리 정책으로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에는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이 경기부양 정책으로 유효했다. 국채 가격이 올라 수익률이 낮아지면, 투자기관들은 다소 위험하더라도 높은 수익률이 기대되는 실물경제 부문의 기업으로 물꼬를 돌리곤 했다. 이에 따라, 증권 보유자들은 자본 이익을 취하고 금리 인하에 따라 투자 및 소비가 부양되는 선순환이 이뤄졌던 것이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는 이런 ‘법칙’이 작동하지 않는다.

더욱이 부풀어 오른 선진국 국채 가격 자체가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국채 시장이 물가나 금리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지금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간절히 바라는 물가 인상이 이루어지는 경우 국채 가격은 급락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금융기관들의 재무 상태가 크게 악화되면서 또 다른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국채 가격은 폭락한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 레이팅스는, 국채 수익률이 2011년 수준(양적 완화의 여파로 이미 낮았던)으로만 돌아가도 금융시장의 손실 규모가 3조8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선진국 정부들의 경기부양 정책 기조가 통화정책(금리 조절)에서 재정정책(정부 예산을 민간경제에 투입)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통화정책은 기본금리와 국채 수익률을 마이너스로 내리는 극약 처방으로도 세계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했다. 재정정책은 통화정책보다 훨씬 뚜렷한 경기부양 효과를 발휘하지만, 정부가 빌려서 예산을 마련하는 경우 이자 부담이 너무 컸다. 그런데 최근처럼 국채 수익률(정부가 빌린 돈에 대해 지급하는 이자율)이 0%에 가깝거나 마이너스인 상태라면, 정부로서는 이자 부담이 극히 낮아서 돈 빌리기가 매우 용이하다. 이에 따라 미국·유럽·일본 등에서 올 연말 이후 정부 지출을 크게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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