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과 게이머, 그 전환시대의 만남
  • 문정우 기자
  • 호수 468
  • 승인 2016.09.0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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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자발적 유예.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이며 평론가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생각해낸 개념이다. 판타지 소설이나 SF 소설을 읽을 때 작가가 설정한 도무지 있음직하지 않은 상황을 독자가 흔쾌히 받아들여 함께 즐기는 것을 말한다.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를 진짜 현실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이런 인간의 기이한 습성이 없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따분하지 않았을까.
어떤 이들은 이 시인을 불세출의 천재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격하게 동의하는 편이다. 불신의 자발적 유예라는 개념은 예술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의 수많은 복잡한 일을 해명하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불신을 미루지 않았다면 성립할 수 없었다. 국가는 과연 개인에게 이로운가.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권력은 죄악이라며 목숨 걸고 저항한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다수가 불신을 누른 덕분에 근대국가는 존립할 수 있었다. 소련 몰락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메인스트림이 됐지만 드러난 결함 역시 무시할 수 없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대안이 없다며 불신을 노골화하기를 자제한 까닭에 두 체제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형편이다. 신은 과연 있는가, 있다면 한 분인가 여러 분인가, 아무리 여러 분이라도 그렇지 신이 이 광대하고 신비로운 우주를 만들었다는 게 사실일까. 역시 믿기 힘든 점이 많지만 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가 인간이 사는 집보다 훨씬 크고 요란한 교회와 절이고 모스크이며 그곳을 지배하는 성직자들이다. 들여다보면 인간의 역사란 의심 많은 이들의 입을 틀어막고 일단 결정한 다음에는 숱한 생명을 바쳐서라도 그것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지성과는 거리가 있는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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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원 그림
인류는 오랫동안 불신을 쌓아올려 왔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쳐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과 기술에 기대어 우리가 발전시켜온 제도와 문화의 화려한 외양에 취해 꿈에도 그것이 불신이라는 부실한 부품을 얼기설기 꿰어 맞춘 데 불과하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전 세계에 아무리 절과 교회와 모스크가 많고 화려한 유적이 눈길을 끌더라도 그것이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걸 깜빡 잊었던 것이다. 특히 인류의 진보를 의심치 않는 이들은 우리가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벌였고 아직도 같은 종족을 대량 살육하는 부조리한 존재지만 보편 가치에 대한 합의에 얼추 접근했다고 생각했다. 숨어서 반칙을 저지르는 일이야 비일비재하겠지만 연령·성별·국적·피부색·종교에 상관없이 인류는 모두 평등하다는 사실을 놓고 더 이상 논쟁을 벌일 일은 없으리라고 여겼다. 인간의 기본 권리를 지키기 위한 그 최소한의 원칙마저 거스르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신뢰를 접어야만 성립되는 또 다른 분야가 게임이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묻거나 따지지 않고 무조건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재미있게 놀 수 있다. 예전에는 게임이 아무리 흥미진진해도 현실과 혼동하는 일은 없었다. 바둑이 삶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바둑이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쳐 인터넷 게임이 대중화하면서 게임의 법칙을 또 다른 현실로 동등하게 받아들이는 젊은 층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실 속에서보다 게임 속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이도 적지 않았다. 대기업이 끼어들어 엘리트 선수를 양성하고 시장을 키우기 전까지 게임의 세계는 보통의 대중문화와도 말이 통하지 않는 매우 낯선 세계였다. 쇼미더머니, 래퍼의 세계와 닮은 하위문화의 세상이었다. 어느 세대나 하위문화에 열광하는 이들은 소수이지만 특이하게도 게임은 다수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지난 30년 동안 청춘을 통과한 이들은 크게든 작게든 인터넷 게임의 융단폭격을 받았다.

흔히 게임에 중독되면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기 힘들게 된다고 하는데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고수들 얘기를 들어보면 게임의 규칙에 몰입하다 보면 바깥세상에서는 대단하게 여기는 일들도 결국 또 하나의 게임에 불과하다는 ‘통찰’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세상 모든 일이 불변의 진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결국 ‘국가가 이롭다고 치자’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자’ ‘남녀는 평등하다고 받아들이자’라는 가정, 즉 게임의 규칙에 따를 뿐이라는 사실을 수용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게이머들은 초연한 듯, 쿨한 듯, 무례한 듯 보인다. 그들이 열어놓은 채팅창 안에서는 바깥세상의 가치관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들이 예사로 오간다. 사회에서라면 매장당하고도 남을 만한 인종차별·성폭력 발언이 난무한다. 상대 게이머의 부모도 예사로 ‘디스’한다. 딱히 성이나 인종을 차별하는 성향을 가져서가 아니라 그냥 재미로 그러거나 상대 게이머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려고 이런 짓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 바깥세상의 윤리와 금기는 이곳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 이들은 이기려면 갖은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게이머의 논리에 충실할 뿐이다.

199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인터넷에 거슬리는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도부가 없었지만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여성혐오 옹호자, 안티 페미니스트, 좌익 지식인이나 부패 언론에 이용당한다고 믿는 피해 망상가 등 다양한 부류로 이루어진 혼성군이었다. 공통점은 단 한 가지, 세상에 증오를 유포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익명 혹은 별명의 뒤에 숨어 여성 혐오, 페미니스트 공격, 흑인 적대, 유태인 비방, 이민자 괴롭히기, 유명인사 헐뜯기를 낙으로 삼았다. 악행이 쌓여가자 이들이 하는 행패를 구분하는 전문용어까지 생기게 됐는데 재치 있게 비꼬는 농담에서부터 살해 위협까지를 일컫는 룰즈(lulz), 사회보장 번호와 계좌번호까지 신상을 터는 독싱(doxxing), 그리고 거짓 신고로 경찰 특수기동대(SWAT)까지 출동하게 만드는 스와팅(swatting)이 그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 자신은 신과 싸우다가 패해 동굴에서 살게 된 거인, 인터넷에서 희생자를 찾는 낚시 방법에서 유래한 트롤(troll)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트롤은 2011년 드디어 전 세계에 존재를 알렸다. 최근에 죽은 이들을 기리는 페이스북 추모 페이지에 침입해 망자를 조롱하는 글을 남긴 것이다. 한국판 트롤이라고 할 수 있는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들이 단식을 하는 세월호 유족 앞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만행을 한 것은 창의적이지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012년에는 비디오 게임에서 여성혐오 혐의를 찾아내는 일을 해온 페미니스트 애니타 사르키시안에게 폭탄 테러·강간·살해 위협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그녀가 등장하는 비디오 게임까지 만들었다.

<타임> 여기자 절반이 사직을 고민한 까닭

이들이 저지른 악행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올해 6월 <뉴욕 타임스>의 부편집장 조너선 와이즈먼은 반유태인 공격에 시달린 끝에 페이스북 계정을 닫고 말았다. 7월에는 페미니스트 작가 제시카 발렌티가 이제 다섯 살이 된 딸에 대한 강간 위협을 당한 뒤 정나미가 떨어져 소셜 미디어를 떠난다고 선언했다. 머리 색깔, 피부, 동료와의 친화력, 애국심에 이르기까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미국에 금메달을 안긴 흑인 여성 체조 스타 개비 더글러스는 리우 올림픽 내내 온갖 이유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들으며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보다 못한 미국의 여러 스타들이 그녀를 위로하고 굴하지 말라고 격려하는 댓글을 릴레이로 남겼을 정도이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4분의 3이 사이버 폭력에 노출돼 있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 여기자 중 절반이 트롤 등쌀에 기자를 그만둘까 고심한다.

트롤이 자신들의 반대자를 ‘사회정의를 위한 전사’라고 비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명분을 좇지는 않는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하는 듯하지만 떨어지더라도 그리 아쉬워할 것 같지는 않다. 2014년 <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한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유저 중 스스로 트롤이라고 인정한 5%는 특별하게 성격이 어두운 이들이었다. 그들의 특질은 나르시시즘, 사이코패시, 마키아벨리즘, 특히 사디즘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악명 높은 트롤 가운데는 방금 아내와 헤어졌거나 친한 친구가 자살을 하는 등의 사적인 이유로 흉포해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본래 성격이 비뚤어졌거나 힘든 일을 겪은 이들이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 괴물 놀이를 한다. 괴물이 노리는 먹이는 관심이다. 정치나 사회가 아닌 순수하게 인터넷이 낳은 기형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게이머들의 세계를 서식지이자 번식지로 점찍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들은 게이머 세계에 들어가 증오의 불씨를 만든 뒤 이를 아동 포르노의 유포까지 허용하는 8chan, 4chan, Voat, Reddit 같은 사이트로 퍼날라 축제를 즐겼다. 미국의 트롤은 ‘게이머게이트’라는, 그냥 놔뒀으면 게임업계에서 잠시 화제가 되다 말았을 작은 스캔들을 키워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뒤흔드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들의 본래 목적인 ‘어텐션(관심)’을 받는 데 성공했다.

트롤은 게임업계의 생리를 잘 꿰고 있었다. 아마 게임중독자에 가까운 이도 많을 것이다. 대개가 ‘총과 젖통을 좋아하는 너디(nerdy)한’ 젊은 백인 남성인 게이머들이 미끼를 덥석 물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유분방하고 쿨한 그들은 트롤이 들어와서 분탕질을 쳐도 개의치 않으리라는 점도 계산했으리라. 그들은 순수한 게이머들의 승부욕에 마구 불을 질렀다. 게이머들은 평소 실력대로 여성혐오와 인종차별 발언을 유감없이 쏟아냈다. 그들이 단독으로 일을 저질렀을 때에 비해 언론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게임의 논리에 충실한 게이머들의 발언은 불신이 유예된 바깥세상의 체계를 흔들어대는 묘한 힘이 있었다. 정치 엘리트가 입에 달고 사는 인류의 보편 가치란 광고일 뿐 규칙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게임을 하며 자라난 젊은 세대가 그들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동기는 불순했지만 트롤은 게이머를 통해 세계가 프로이트와 다윈의 출현을 앞뒀던 빅토리아 시대처럼 전환시대를 맞았다는 것을 요란하게 알렸다.

참고한 활자:<타임>(2016년 8월29일자),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2016년 8월21일자),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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