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9일 오후 1시, 특별감찰관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앞에 취재기자 10여 명이 진을 쳤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는 이날 연차휴가를 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다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약 없이 특별감찰관실 입구를 서성였다. 이날 오전 9시 대통령비서실 김성우 홍보수석이 브리핑을 했다. “특별감찰관이 감찰 내용을 특정 언론에 유출하는 것은 중대한 위법이고, 국기를 흔드는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되기 때문에, 어떤 감찰 내용이 특정 언론에 왜 어떻게 유출됐는지 밝혀져야 한다.” 사실상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지시하는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직접 임명한 1호 특별감찰관을 청와대가 사실상 내치는 꼴이 되었다. 보수와 진보 언론 가릴 것 없이 궁중 권력다툼으로 해석한다. 우병우-이석수 갈등은 MBC 보도로 표면화되었다. 대통령비서실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특별감찰 활동 만기일인 8월19일을 사흘 앞둔 8월16일, MBC <뉴스데스크>는 ‘[단독] 이석수 특별감찰관, 감찰 상황 누설 정황 포착’이라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우 수석에 대한 감찰을 진행 중인 이 특별감찰관이 특정 언론사에 감찰 상황을 누설한 정황을 담은 SNS가 입수됐다”라는 내용이었다. 감찰 내용의 외부 누설을 금지하는 특별감찰법을 어겼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연합뉴스 8월18일 우병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감찰하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튿날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SNS를 통해 언론과 접촉하거나 기밀을 누설한 사실이 없다”라고 반박했다. 야권에서는 ‘우병우 감싸기가 시작되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도 같은 날 비대위 회의에서 “특별감찰관을 흔드는 음모가 아닌가. SNS 대화 내용 누출 경위도 이상하다. 타인의 대화 내용을 제3자가 유포하면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이다. 도청 아니면 해킹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라고 말했다.

통비법 위반 논란이 일자, MBC는 보도 경위를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혔다. 8월17일 MBC <뉴스데스크>는 입수한 문건을 공개했다. “모 언론사 기자가 이 특별감찰관과 전화 통화한 내용이라며, 회사에 보고한 것이 SNS를 통해 외부에 유출되었다”라는 내용이었다. 해킹 논란은 한풀 사그라졌지만, 첫 리포트와는 사실관계가 다소 다른 내용이었다. 또 MBC는 “경찰에 자료를 달라고 하면 딴소리를 하니 어떻게 되어가는지 좀 찔러보라” “다음 주부터 본인과 가족에게 갈 건데, 소명하라고. 지금 이게 감찰 대상이 되느냐, 뭐 전부 이런 식인데 버틸 수도 있다”와 같은 이 특별감찰관의 발언을 자세하게 내보냈다. 그가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는 근거였다.

하지만 해당 문건의 전체를 보면 맥락이 다르다는 것을 <한겨레> <경향신문>과 같은 진보 언론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도 지적한다(<조선일보>는 문건 속 대화 당사자가 소속된 언론사로 지목받고 있다). 해당 문건은 오히려 우 수석에 대한 감찰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경찰을 언급한 부분도 앞뒤 말을 보면 “경찰에 자료 좀 달라고 하면 하늘 쳐다보고 딴소리하고 그래. 하하하. 경찰은 민정 눈치 보는 건데” “민정에서 목을 비틀어놨는지 꼼짝도 못한다”라며 감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해당 문건에는 대놓고 우 수석의 힘이 세다는 이 특별감찰관의 말도 나온다. “감찰 개시한다고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대통령께 잘 말씀드리라’고 하면서 ‘이거(우 수석 사퇴 등 문제) 어떻게 돼요?’ 했더니 한숨만 푹푹 쉬더라” “우가 아직도 힘이 있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째려보면 까라면 까니깐.”

ⓒ연합뉴스 8월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우병우 민정수석(왼쪽에서 두 번째).

특정 언론의 취재 활동이 타사로 흘러 들어간 경위 자체가 미묘하고, 이 특별감찰관 스스로 우 수석의 영향력이 검·경·청와대까지 미친다고 말한 속내가 드러나는 상황이 되자 ‘우병우 지키기’에 대한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특별감찰관 활동을 방해하는 조직적 움직임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MBC 보도 이후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수석에 대한 감찰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할 거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 특별감찰관이 반격에 나섰다. 8월18일 이 특별감찰관은 대검찰청에 우 수석에 대한 수사 의뢰를 했다. 우 수석이 의경으로 복무하는 장남을 ‘꽃보직’ 운전병이 될 수 있도록 경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과 가족회사 ㈜정강의 회삿돈을 개인적으로 썼다는 의혹이다.

이 특별감찰관의 반격 바로 다음 날, 이번에는 청와대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위법’ ‘국기문란’과 같은 센 단어를 앞세운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대한 ‘디스’였다. 이미 이 특별감찰관은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의 고발을 당한 터라, 검찰 수사 개시 형식까지 갖춰진 상태였다. 청와대는 의혹의 당사자인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검찰에 수사 의뢰까지 당한 유례없는 상황이 펼쳐졌지만, 이에 대해서는 ‘노코멘트’였다.

권력다툼의 결론은 예상 가능하다. 전례 때문이다. 2014년 11월28일 ‘VIP 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이 폭로되자, 정윤회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라는 논란이 증폭되었다. 사흘 뒤 12월1일 박 대통령은 직접 “문건을 외부에 유출하게 된 것은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 문란 행위다”라고 발언했다. 같은 날 검찰은 문건 유출 수사를 착수했다. ‘국정 농단 의혹’은 사라지고, 문건 유출로 국면이 바뀌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기소된 조응천 전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은 1·2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정권으로서는 스캔들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셈이었다.

2014년 ‘정윤회 파동’ 때와 비슷한 양상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금배지를 단 조응천 의원은 8월19일 같은 당 민주주의회복 태스크포스 소속 의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녹취록 공개 과정을 보면 특별감찰관의 감찰 결과를 사전에 알고 이를 ‘물타기’하려는 기획과 실행이 있었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 청와대의 입장은 우 수석을 구하기 위한 ‘찍어내기’를 시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조 의원은 “이 정부 들어와서 매년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때마다 청와대에서는 ‘국기 문란’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기시감을 느낀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방침을 박 대통령의 ‘워딩’으로 보기도 했다.

물론 정윤회 파문 때와 다른 점은 있다. 여당 내에서도 한목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8월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이 현직 민정수석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우 수석은 대통령과 정부에 주는 부담감을 고려해 자연인 상태에서 자신의 결백을 다투는 것이 옳다”라고 썼다. 8월19일 보수 언론 또한 잇따라 “靑 ‘李특감 공격’은 본말 뒤집는 ‘우병우 감싸기(<문화일보>)” “우병우 문제,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중앙일보>)” “그래도 우 수석 감싸는 靑과 친박들 지금 제정신인가(<조선일보>)”라며 우 수석의 사퇴를 촉구했다. 정권 말 거대한 내부 균열이 시작됐다.

기자명 김은지·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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