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파수꾼들?
  • 천관율 기자
  • 호수 467
  • 승인 2016.08.2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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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 티셔츠 사태 이후 온라인 공간에 ‘분노한 남자들’이 대규모로 쏟아졌다. 지난 1년 동안 나무위키 사이트의 ‘메갈리아’ 항목에 300만 자 정도의 글이 수정되고 추가되었다. 이 글을 통해 남자들의 집단심성을 들여다보았다.

마거릿 퀄리는 미국 배우다. 이 배우가 한국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좀 독특했다. 퀄리는 지난 7월3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를 올리면서 게임회사 넥슨의 성우 계약해지 사태를 비판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은 곧 난장판이 되었다. 저 문구가 박힌 티셔츠를 기획한 ‘메갈리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남성혐오 사이트인지 고발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중에 한 댓글은 어느 사이트의 링크를 걸며 “구글 번역기라도 돌려서 그 (티셔츠를 판매한) 돈이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보라”고 썼다. 링크된 사이트는 나무위키. 나무위키는 2016년 8월 현재 한국어 위키 사이트 중 최대 규모와 활동량을 자랑한다.

티셔츠 사태 이후 온라인 공간의 메갈리아 논란이 폭발하면서 ‘분노한 남자들’이 대규모로 쏟아졌다. 메갈리아는 남성혐오 사이트이고,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와 마찬가지로 혐오 범죄를 조장할 위험이 있으므로 응징이 필요하다는 데 폭넓은 공감대가 생겼다. 나무위키는 이 남자들의 관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집약본으로 일종의 ‘원전’ 대접을 받는다.

문서의 수정과 배포가 자유롭고 누구나 접근 가능하면서도, 인터넷 서브컬처에 익숙한 이들이 주로 사용한다. 백과사전과 커뮤니티의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어서 댓글이 달리듯 이슈가 실시간으로 반영되면서도, 이용자들의 의견이 모인 정본이 끊임없이 존재하게 된다. 담론의 기본 구조와 변화 궤적을 동시에 추적할 수 있다. 시간순으로 잘 정리되고, 수정되어 지워진 텍스트까지 모두 수집할 수 있는 나무위키는, 온라인을 뒤덮은 분노한 남자들의 집단심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훌륭한 쇼윈도다.

논쟁의 사관, 나무위키

김학준 (아르스 프락시아 미디어분석팀장)


“나무위키는 2015년 4월17일에 만들어진, 서브컬처에 특화된 위키 사이트다.” 나무위키의 <나무위키> 항목에 나오는 자기소개다. 나무위키는 리그베다위키, 더 이전으로 소급하면 엔젤하이로위키(‘엔하위키’로 더 잘 알려져 있다)로 거슬러 올라가는 서브컬처계의 백과사전인 동시에, 문서 79만 건(8월15일 오후 6시 기준)이 등록된 대한민국 최대의 위키 사이트이다.

누구나 항목을 개설하고 내용을 수정할 수 있는 위키의 특성상 나무위키 역시 모종의 ‘집단지성’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 집단지성은 특정 문화 또는 항목에 관심이 많은 일군의 이용자가 집중적으로 작성, 수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내용상 오류가 나타나거나, ‘반달리즘’이라 불리는 문서 훼손이 벌어지기도 한다. 해외에서는 위키피디아의 반달리즘을 다룬 연구가 다수 보고될 정도로, 위키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합의의 과정은 중요한 지식사회학적 함의를 갖는다.

최근 벌어지는 메갈리아 논란에서 나무위키의 위상은 독특하다. ‘메르스 갤러리’가 생성되기 직전 벌어진 ‘여성시대 해명글 조작사태(해당 용어는 나무위키 문서로 분리되어 있다)’ 당시 나무위키는,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성시대’ 회원들이 벌인 지속적인 반달 공격을 버텨내며 사건을 기록한 ‘사관’으로서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또한 디시인사이드 이후 하나의 전범으로 인정된 커뮤니티 모델(‘친목질’ 및 젠더 정체성 공개에 대한 반감)은 ‘여성’ 정체성을 강조하는 커뮤니티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내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나타난 ‘괴물 같은 존재’가 메갈리아다. 즉, 나무위키는 태생적으로 여초 커뮤니티에 대한 반감을 가질 문화적·역사적 맥락이 있다.

이러한 맥락을 전제로, 나무위키 ‘메갈리아’ 항목에 대한 분석은 “누적적이며 진행형인 지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과 같은 합의를 이끌어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그중에서도 ‘수정된 항목’의 동적인 변화를 본다면 특히나 논쟁적이었던 사안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나무위키의 ‘진짜 재미’인 취소선이 포함된 문장(총 2043건)은 따로 수집했다. 이때 취소선은 말 그대로 ‘취소’를 의미한다기보다, 위키러의 ‘속마음’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취소선이 없다면 나무위키는 지금의 성장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취소선 분석은 나무위키 이용자들의 감정선 분석으로 활용되었다.



<시사IN>과 데이터 기반 전략컨설팅 기업 ‘아르스 프락시아’는 나무위키의 ‘메갈리아’ 항목을 분석했다. 항목이 개설된 2015년 8월부터 올해 8월까지 1년치 수정 내역 전체가 분석 대상이다. 이 기간에 수정된 분량은 추가와 삭제를 합쳐 글자 수로 299만7430글자다(도중에 따로 분리된 ‘메갈리아 비판’ 항목을 합치면 688만8042글자다). 200자 원고지로 1만5000장가량 된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분량 1만6500장과 별 차이가 없다.  

활동량의 궤적을 보면, 나무위키의 메갈리아 항목 변천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위 그래프 참조). 가장 치열했던 1기는 항목이 탄생한 2015년 8월부터 소강기로 접어들기 직전인 2015년 11월까지다. 2015년 12월부터 2016년 4월까지가 소강기에 해당하는 2기다. 이 시기에 메갈리아 사이트에서는 극단주의자들이 분화해 남성혐오를 내건 커뮤니티 ‘워마드’를 만들었다. 3기는 2016년 5월부터 8월 현재까지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혐오 논란이 불거진 시점부터 메갈리아 티셔츠 사태로 온라인 공간 전체가 불타다시피 한 시기가 여기 포함된다.


2기에서 워마드가 등장하고 3기에서 티셔츠 사태가 폭발했으니, 나무위키가 만들어낸 메갈리아의 이미지도 크게 요동쳤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가장 격렬한 담론투쟁은 1기에 집중되어 있고, 2기와 3기는 이미 확립된 담론에 주석을 다는 정도였다.  


제1기의 키워드는 ‘남성’ ‘성기’ ‘크기’  

<그림 1-1>은 1기 메갈리아 담론 지도다(+ 버튼을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똥꼬충 사태’도 ‘티셔츠 파동’도 있기 이전, 초창기의 메갈리아가 이 분노한 남자들의 심기를 어디서 최초로 또 결정적으로 건드렸는지를 보여준다. 점의 크기는 담론 지도에서의 중요도로, 같은 색깔은 하나의 의미 덩어리로 보면 된다. 단연 눈에 뜨이는 것은 중앙의 붉은색 대륙이다. ‘남성’ ‘성기’ ‘크기’. 무엇이 최초의 격발 스위치였는지를 지도는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증언한다. 담론의 한가운데에는 ‘성기 크기’가 있었다.  

핵심만 추릴 수 있도록 키워드 표시 기준값을 높여봤다. 그 결과가 <그림 1-2>다. ‘메갈리아’는 ‘남성혐오’ 사이트다. 왜? 남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비하? ‘남성’ ‘성기’를 작다고 ‘모욕’한다(이상 청록색).

보통의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성의 신체는 마치 정육점의 소고기처럼 ‘부위별 평가’의 대상이 된다. 얼굴은 물론 가슴·허리·엉덩이·허벅지·다리 등이 제각각 ‘채점’된다.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태도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서 거의 인식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남성들은 정작 자기가 성적 품평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처음 해본 겁니다. 엄청난 충격이 데이터로 고스란히 잡히네요.” 분석을 총괄한 아르스 프락시아 김학준 미디어분석팀장의 평가다.

‘성기’를 품평받은 분노한 남자들의 대응도 흥미롭다. <그림 1-2>의 왼쪽 블록이다. 메갈리아는 ‘여성혐오’를 ‘주장’하지만 그건 ‘반박’하고 ‘비판’할 수 있다. 세상에 ‘여성혐오’는 ‘없다’(이상 붉은색). 그러니 이건 여성혐오에 대한 여자들의 역공이 아니다. 그저 어떤 여자들이 ‘남성혐오’를 해서 생긴 일일 뿐이다(청록색).

나무위키 이용자들은 성적 품평에 맞서 자신의 성기가 크다고 반박하지 않는다. 대신 여성혐오가 없다고 반박한다. 썩 논리적인 대응은 아닌 듯한데, 이 연결고리를 이해할 흥미로운 단서가 있다. 


<그림 4>를 보자. 세상 모든 남자들이 성폭행과 성추행과 성적 폭언을 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런 남자들(남자 A)은 모든 여자들에게 위협이 된다(<그림 4-1>). 언어적인 ‘성적 대상화’로 기준을 낮추면 훨씬 많은 남자들이 A에 포함되도록 <그림 4-1>을 다시 그려야 한다.

그러던 중에 여자가 일상적으로 겪는 성적 위협과 대상화를 반사해 돌려주자는 여자들(여자 B)이 등장했다(<그림 4-2>). 이것이 메갈리아가 핵심 전략으로 내걸었던 미러링의 취지다. 마찬가지로 모든 여자들이 미러링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모든 남자들은 미러링에 무차별로 노출된다. 이 비대칭 구조마저 <그림 4-1>과 판박이다.

하지만 이 비대칭은, 나는 여자를 혐오하거나 폭력적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남자들’(남자 C)을 분노하게 만들었다(<그림 4-3>). 이들은 착하고, 신사적이며, 남자 A처럼 성적 공격성을 드러내며 날뛰지도 않은 자신들이 조롱받는 현실을 납득하지 못한다.

성적 위협과 대상화에 시달릴 이유가 없는 것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남자 C도 자신들이 노출된 ‘이유 없음’이 여성들이 노출된 ‘이유 없음’과 구조적으로 같다는 인식, 그러니까 <그림 4-1>에 대한 반성적 인식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이유 없음’에 몰두한다. 왜 그럴까?

이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상식적이고, 진보적이고, 정의롭고, 사실에 충실하다는 자의식이 있다. 일베와 같은 혐오 사이트와 자신들의 차이를 적극 주장하며, ‘삼일한(김치녀는 삼일에 한 번 때려야 한다는 의미)’ ‘보적보(여성의 성기에 빗대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관용구를 줄인 표현)’와 같은 극단적 여성혐오 용어 앞에 눈살을 찌푸리는 교양도 자랑한다(‘김치녀’는 그보다는 저항 없이 쓴다). 그런 이들이 거의 경험하지 못했던 적나라하고 공격적인 성적 대상화에 직면했을 때, 불평등 구조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로 인식하는 과정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나(남자 C)의 정의로움’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니 둘 중 하나는 기각해야 한다. 이 조롱당한 남자들은 여성의 현실을 기각했다. 이제 ‘여성혐오’는 ‘없다’(<그림 1-2>의 붉은색). 적어도 메갈리아가 주장하는 방식으로는 없다.


이러면 돌파구가 생긴다. 여성혐오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내 성기를 품평하는 저 이상한 여자들은 ‘남성혐오’자들, 곧 여성판 일베다. 그런 부도덕한 이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메갈리아가 남성혐오 사이트라는 합의는 여러 사건을 겪으며 오래 축적된 결과물이 아니었다. 메갈리아가 등장하자마자, 구체적으로는 성기 크기로 남성을 대상화하는 순간 폭발하듯 태어났다.

‘워마드’로 촉발, ‘메갈리아 티셔츠’로 폭발

한국 온라인 공간의 평균적인 젠더 감수성을 고려하면, 성기 크기 발언을 혐오 발언이라고 낙인찍기에는 더한 사례가 많다. 그러니 이 전략은 꽤 위태롭고 지반이 허약한 것이었다. 그러나 분노한 남자들은 적진 격인 메갈리아에서 뜻밖의 조력자를 만났다.

메갈리아가 표방했던 전략적 ‘미러링’과 그저 정념을 쏟아내는 ‘증오 발언’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전략적 규율이 필요한 미러링,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커뮤니티, 혐오 발화의 놀이코드화, 이 셋의 조합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2015년 연말, 외줄타기가 파산했다. ‘혐오 발화가 놀이코드로 갖는 매력’이 ‘섬세한 계산’을 훌쩍 넘어섰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며, 성소수자나 장애인 인권을 챙기다가는 실패한다는 주장이 메갈리아 내에서 제기되어 호응을 얻었다. 운영진이 이 흐름에 반대하자 아예 남성혐오를 표방한 커뮤니티 ‘워마드’가 독립했다. 남성 동성애자를 비하(성소수자 혐오는 메갈리아 내에서 금기였다)하는 ‘똥꼬충’은 이 일련의 과정을 상징해 보여주는 키워드다.

이후 워마드는 여성을 제외한 전방위 혐오 발화의 생산기지가 되었다. 인터넷 하위문화 전통(이른바 ‘드립 문화’)은 혐오 발화를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이렇게 등장한 극단적 결과물이 돌연 현실 세계와 만날 때, 현실은 그 패륜과 반사회성에 아연실색한다. 일베가 정확히 그랬다. 워마드에서 등장한 전태일 열사 비하, 안중근 의사 비하, 한국전쟁 사망자 비하 등의 게시물은 커뮤니티 밖으로 퍼져나가 남성혐오의 증거로 즐겨 인용되었다.



<그림 2-1>은 나무위키 2기 담론 지도다. ‘게이’ ‘비하’가 두드러진다(주황색). 앞서와 마찬가지로 키워드 표시 기준값을 높인 결과가 <그림 2-2>다. 1기 시절의 <그림 1-2>와 전반적으로 유사한 가운데, ‘게이’ ‘비하’가 중요한 포인트로 추가되었다. 지반이 허약했던 담론이 기존 틀을 유지한 채로 근거를 덧붙여가는 모습이 지도로 드러난다.


3기에 접어들면 소강기가 끝난다. 강남역 살인사건 후폭풍과 메갈리아 티셔츠 파동으로, 메갈리아 논쟁이 모든 온라인 공간을 뒤덮다시피 했다. 3기 담론지도인 <그림 3-1>에서, 마찬가지로 키워드 표시 기준값을 높여 <그림 3-2>를 얻었다. 핵심이 더 뚜렷해진다. 3기에 들어서서 국면 전개가 결정적으로 달라졌다. 강남역 추모 물결 이후로 여성들이 ‘오프라인’으로 진출했다. ‘트위터’ 등에서 지원세력도 붙었다(이상 푸른색). 일부 언론도 메갈리아 ‘옹호’ ‘기사’를 써낸다. 메갈리아에 동조하는 진영이 구축되어, ‘성기’(청록색)가 작다고 조롱받는 선량한 남자들을 포위하고 있다. 이 부당한 탄압의 서사는 분노한 남자들의 전투력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일련의 과정에서 메갈리아 자체에 대한 담론 지형은 1기 때와 바뀐 것이 사실상 없다. 다만 이슈를 둘러싼 전선이 요동쳤고, 그것이 지도에 반영되었다.

메갈리아 담론 지도에서 공격성을 걷어내면 속살은 ‘공포’였다.

공격적인 표현 뒤에 숨은 코드는 ‘공포’  

의미망 분석은 감정의 궤적을 잡아낼 수도 있다. <그림 5>는 2015년 9월 <시사IN>이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를 분석한 담론 지도다. ‘씹치남’ 등 공격적인 표현이 다수 등장하지만, 지도의 속살로 들어가면 오히려 두드러지는 감정 코드는 ‘공포’다. 결혼 공포(붉은색+초록색), 범죄 공포(노란색), 시선 공포 등이 포착되었다(<시사IN> 제418호 메갈리안 1세대 받은 그대로 돌려주다 기사 참조).

혐오는 약자·소수파를 낙인찍는 대표적인 강자의 무기다. 혐오의 대상이 될 때 두드러지는 감정적 반응이 ‘공포’라는 것은 자연스럽다. 메갈리아 현상이 ‘남성혐오’라는 정의가 성립하려면, 혐오를 당한 피해자의 정본 격인 나무위키 분석에서 낙인찍힘을 당하는 이들의 공포가 포착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시사IN>과 아르스 프락시아는 ‘취소선 자료’를 분석했다. 취소선이란 나무위키의 독특한 문화로, 문서에서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가로줄을 그어 삭제 효과를 내면서 실제로는 살려두는 기법이다. 인터넷 하위문화 특유의 ‘드립’이 여기서 펼쳐지고, 감정의 방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취소선이 포함된 문장 2043건을 의미망 분석한 결과가 위의 <그림 6>이다.

나무위키 담론 지도는 ‘낙인찍힌 약자’의 공포가 발견되지 않았다.

“감정선의 큰 축은 셋입니다. 우선 당혹, 그리고 멸시, 마지막으로는 격분, 이렇네요.” 김학준 미디어분석팀장은 지도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말했다. 당혹감은 상단 보라색 대륙에서 잘 드러난다. ‘일부’ ‘언론’이 ‘메갈리안’을 ‘옹호’하고 ‘여론’을 ‘조작’한다(이상 보라색). 멸시는 초록색과 붉은색 대륙이 보여준다. 메갈리아는 ‘과대망상증’ ‘사이트’이며(초록색), ‘혐오 발언’이 ‘미러링’을 통한 ‘충격요법’이라는 ‘어거지’를 부린다(붉은색). 분노는 그 귀결이다. 이 여성들은 ‘남성’을 ‘맹목’적으로 ‘저주’하는(푸른색) ‘남성혐오’자다(주황색). 그런데 공포는? “이 그림으로는 안 보입니다. 적어도 몸으로 다가오는 공포를 느낀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혐오로 낙인찍혔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감정선에서 공포가 발견되지 않았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메갈리아와 IS를 등치시키는 비유는 이 대목에서 파산한다. 남성혐오로 규정하려면 공포가 필요하다. 분노한 남자들은 그래서 공포를 연출한다. 하지만 실존하는 공포는 아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당혹-멸시-격분으로 이어지는 감정선이었다. 김학준 팀장은 “한데 꿰어서 말하면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에 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림 4>로 돌아가보자. 뿌리 깊은 성차별 구조에서, 한국의 현실은 남성 우위인 <그림 4-4>에 더 가깝다. 성별 격차는 통계적으로 확인되는 현실이다. 나무위키 분석을 통해 드러난 분노한 남자들의 감정선, ‘당혹-멸시-격분’은 사회적 서열이 아래에 있다고 여겼던 이들에게 들이받혔을 때 등장하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이 감정 궤적은, 더 중요하게는 공포의 증발은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라는 강자의 자의식을 얼떨결에 자백한다.

통계로 확인되는 객관적 실재와 분노한 남자들의 감정적 자의식은 공히 <그림 4-4>를 현실로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그림 4-4>는 남성 C의 ‘선함’과 ‘정의로움’이라는 자기 이해와 결정적으로 충돌한다. 그러므로 이 현실은 기각되어야 한다. 대신에 구원처럼 등장한 워마드의 혐오 발화에 집요하게 매달려야 한다.

한국의 온라인 공간은 이 지점에서 교착 상태다. 워마드의 혐오 발화를 문제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는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워마드식 혐오 발화만 제거되면 이 분노한 남자들이 <그림 4-4>의 현실을 개선하는 데 나설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착하고 정의로운’ 자의식에 모순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차별 구조는 존재하지 않아야 하며, 성기가 작다는 조롱은 남성혐오여야 한다. 이 결론은 워마드식 혐오 발화와는 상관이 없다. 여성 D는 비록 여성 B의 전략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현실 인식부터 갈라지는 남성 C의 옆에 서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들은 여성 B의 티셔츠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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