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아메리칸 드림’이 위험하다

공화당의 위기가 곧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미 대선을 뒤흔드는 러시아 해킹 배후설

 

 

240년 전 여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낭독된 한 문서가 세계사를 바꿔버렸다. 그 유명한 독립선언문이다. 영국 군주제의 폭정을 성토한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자유주의자이자 공화주의자이며 민주주의자였던 토머스 제퍼슨이 작성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미국은 혁명전쟁에서 승리했다. 미국이 탄생한 필라델피아에서 지난 7월28일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올해 대선의 정·부통령 후보로 힐러리 클린턴과 팀 케인을 지명했다.

전당대회의 시작은 매끄럽지 않았다. 민주당 수뇌부의 편파적인 경선 관리 정황에 대한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반(反)클린턴 항의 시위와 야유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마지막 날, ‘투게더(함께)’를 강조하며 부드럽고 하얀 투피스를 입은 클린턴은 이미지 세탁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는 내용·구성·연출 모두 훌륭했다. 현직 대통령 내외, 할리우드 스타들, 소수자와 일반인 이민자들까지 출연해 대선 프레임을 ‘클린턴 대 트럼프’가 아닌 ‘정상 대 비정상’으로 짰다. 민주당의 ‘빅텐트(Big Tent)’에는 세계적인 갑부 마이클 블룸버그부터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까지 들어왔다. 새로 쓰인 정강 정책에는 최저임금 인상, 금융계 규제, 탄소세 제도 등 샌더스가 주창해온 다수의 정책이 추가됐다. 물론 이런 공약들은 월스트리트를 대변하는 클린턴이 선심으로 넣어준 것이 아니다. 지난 1년간 샌더스의 ‘정치적 혁명’에 동참한 이들이 치열하게 싸워 얻어낸 결실이다. 개방형 체제에 안착한 민주당이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실현하는 모습은 나름 감동적이었다.

ⓒ나무위키19세기 중반 ‘노예제 반대’라는 도덕적인 노선으로 급성장한 미국 공화당은 1860년 대선에서 링컨(왼쪽에서 세 번째)의 선전으로 처음 정권을 잡았다.

한 주 먼저 치러진 공화당 전당대회는 완전히 다른 ‘대안 우주’였다. ‘미국의 위기’를 거듭 강조한 공화당 전당대회는 분노와 증오로 충만했지만 유희는 찾기 힘들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불안한 미래를 우려했지만 정작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공화당 전당대회를 지켜본 많은 이들은 아마 이런 질문을 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다 노예제를 폐지하고 미국을 분단으로부터 구해낸 링컨의 정당인 공화당이 인종차별주의자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배출했을까?’

오늘날의 공화당은 문화적으로 보수적이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며 친기업 정책을 선호한다. 당원 및 지지자의 다수는 백인이고 남부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세기 중반 미국은 서부로 확장하며 개척지에 노예제를 허용할 것인지를 두고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당시 노예제가 합법이던 남부에 지지 기반을 둔 민주당은 찬성했다. 그러나 북부를 본거지로 삼은 휘그당(Whig Party)은 찬반으로 나뉘었다. 1854년에 휘그당에서 분당해 창당한 공화당은 백인들의 노동시장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노예제가 서부에서도 허용되면 남부의 영향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을 우려했다. 그렇게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노선으로 급성장한 공화당은 1860년 대선에서 링컨의 선전으로 처음으로 정권을 잡는다. 그러자 노예제 폐지에 반발한 남부의 11개 주는 미합중국을 탈퇴하며 남부연합국가(Confederate States of America)를 만들었고, 이는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북부의 승리로 노예제는 폐지됐고, 공화당은 해방된 흑인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남북전쟁과 재건 시대에 이뤄진 막대한 정부 지출로 엄청난 부를 챙긴 북부의 신흥 부자 계급은 공화당의 후원과 지도부 역할을 도맡기 시작했다. 이런 공화당의 변화는 백인들이 다수인 국가에서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여론을 조성한다. 같은 시기에 민주당의 남부에서는 체계적이고 폭력적으로 인종차별이 이뤄졌다. 공화당은 미국이 연방제라는 이유를 들먹이며 이런 작태를 방관한다.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식 장면. 이때부터 민주당이 20년간 집권했다.

우리가 아는 공화당은 1980년 레이건이 완성

20세기가 되자 공화당은 아예 대기업들의 당이 되었다. 하지만 20세기 초의 호황은 대공황으로 막을 내렸고, 1932년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으로 대대적인 사회개혁을 이뤄낸다. 그러면서 연방정부의 역할과 크기는 거대해졌다. 민주당의 20년 장기 집권은 공화당을 ‘큰 정부에 반대하는 당’으로 변신시킨다.

1960년대에 미국은 다시 인종 갈등으로 흔들렸다. 1964년 존슨 대통령(민주당)은 민권법(Civil Right Act)을 통과시켰다. 사실 이 법은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중심으로 수많은 흑인 인권운동가들의 피와 희생으로 이뤄낸 역사적인 승리였다. 이 법 통과로 민주당은 흑인들을 얻었지만, 남부를 공화당에 빼앗겼다. 이어서 1980년 대선에서 레이건이 친기업, 감세, 보수적 가족관 등에 기반한 정책들을 내세워 당선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공화당의 정체성이 확립됐다.

21세기로 접어들며 미국의 인구 구성은 급변한다. 원래 미국은 태생적으로 이민자의 나라다. 1980년 2억2650만 인구 중 1460만명이던 히스패닉계가, 2010년에는 3억900만 인구 중 5000만명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오바마는 친이민 정책으로 1000만명에 달하는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에 안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이와 반대로 공화당은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강경 노선을 고수한다. 두 당의 이런 차이는 2012년 대선 득표로 나타났다. 히스패닉계의 70% 이상이 오바마를 찍었다. 같은 선거에서 여성·흑인·소수자들과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공화당은 민주당에 패했다. 백인이 줄어드는 미국에서 공화당은 점점 더 백인에게만 의존하는 당이 되어버렸다.  

위기의식을 느낀 공화당 상원의원 존 매케인과 마르코 루비오는 2013년 민주당과 협력해 이민법 개혁안을 추진한다. 그러자 공화당의 중년 백인 남성들은 지도부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불법 이민자들에게 넘겨준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런 공화당 내의 분열과 불신, 분노와 불안은 트럼프라는 고립주의 선동가가 출몰할 수 있는 토양을 조성했다.

반면 민주당은 이미 오래전 인종차별주의 정당에서 벗어나 오바마의 당으로 진화해오며 역사의 방향과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1992년 빌 클린턴의 후보 수락 연설과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의 연설을 비교해보면 민주당의 변천사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중도 보수에 가까운 빌에 비해 힐러리는 상당히 좌클릭되어 있다. 남편 빌이 재임 시절 폐기한 글래스-스티걸법(대규모 금융복합체 설립을 막기 위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합병을 금지한 법률)을 부활시키겠다는 힐러리의 공약이 이를 증명한다.

공화당의 위기는 오는 11월 선거 이후, 더욱 심화될 것이다. 트럼프와 그의 패거리들은 퇴장할 것이고, 그 뒷수습은 고스란히 당원들 몫이 된다. 당 지도부와 당 원로 대부분이 불참한 올해 공화당 전당대회는 근대사에서 보기 드문 사건이다. 당의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단기간에 당을 재건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공화당의 가장 큰 문제는 시대에 걸맞은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21세기 보수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 어쩌면 이는 이미 가진 것 또는 옛것을 지키려는 보수의 생리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AFP지난 5월1일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트럼프에 반대하는 히스패닉 이민자들의 시위가 열렸다.

이변 없는 한 클린턴이 당선되겠지만…

공화당의 몰락은 미국 민주주의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양당 체제가 제도화된 미국은 건실한 두 정당에 의존한다. 미국은 양 날개 중 하나가 망가지면 안전 비행을 못할 수 있다. 특정 세력만을 위해 제도적인 견제 없이 권력을 누리는 이는 누구나 폭군이 될 수 있다.

석 달 남은 미국 대선의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이변이 없는 한 클린턴이 당선될 것이다. 플로리다·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 세 주 모두에서 그녀가 승리하리라 예상된다. 어차피 미국의 간선제 대선은 몇몇 경합 주에서 결판이 난다. 오히려 이번 선거에서 주목할 부분은 하원 435명, 상원 34명과 주지사 12명을 선출하는 총선이다. 민주당이 2016년 총선에서 선전하더라도 차기 클린턴 정권에게는 무거운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많을수록 숙의민주주의를 실현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대중을 이끌어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그들을 이끌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은 결코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남의 일이 아니다. ‘고난을 벗 삼아’ 국정을 운영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나, 집권 의욕으로 ‘반대’를 외치는 야당 정치인들은 다들 사드 배치를 돌이킬 수 있는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다. 전시작전권만이 아니다. 대미 통상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조만간 한국의 정당들도 전당대회를 연다. 대다수 국민은 관심이 없다. ‘빅텐트’는커녕 지난 대선의 후보들 이름을 딴 계보로 몰려다니는 행태를 보면 ‘폐쇄적 떨거지들’이라는 욕이 절로 나온다. 미국 정당들이 역사의 흐름에 맞춰 변해왔다면,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 정당들은 몇 년마다 갈아치우는 당명 말고 해방 이후 본질적으로 얼마나 진화했는지 의문이 든다.

정당들이 건강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 폭정을 일삼는 이들만이 폭군이 아니다. 제도적 이익을 착복하며 정부(government)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않는 ‘세금충’이야말로 더 음흉하고 위험한 폭군일지도 모른다.  

제퍼슨은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필요악’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고 믿었다. 그러나 정부가 정녕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그는 이런 대안을 제시했다. “자유의 나무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때때로 애국자들과 폭군들의 피가 필요하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기자명 정승구 (영화감독·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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