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를 인정해야 혁신이 보인다
  • 신기주 (<에스콰이어> 기자)
  • 호수 464
  • 승인 2016.08.17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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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혁신은 모든 언론 매체의 고민이다. 아무도 그 해법을 모른다. 하지만 답은 종이냐 디지털이냐가 아니라 언론 조직 문화의 근본적인 혁신에서 도출될지도 모른다.

“디지털 에디터를 따로 뽑았더니 편집부 안에서 오히려 더 많은 문제가 일어났어요.” 귀가 쫑긋했다. 〈에스콰이어〉도 디지털 에디터를 뽑을 계획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동안 〈에스콰이어〉는 상대적으로 디지털의 조류에서 비켜나 있었다. 살 만했다. 게을렀다.

강둑이 터진 듯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에스콰이어〉 편집부로 디지털 물결이 범람해 들어왔다. 그동안 미뤄뒀던 숙제들을 한꺼번에 해치워야 하는 고3 수험생이 된 기분이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글과 사진을 포스팅하는 게 월간지에 기사를 쓰고 화보를 찍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돼버렸다.

맨 먼저 떠오른 개념이 디지털 문법이었다. 기사와 화보를 생산하는 에디터들의 페이퍼 문법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쓰이는 디지털 문법과 다른 게 문제였다. 페이퍼 문법보다 디지털 문법에 익숙한 수용자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늘어간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광고주들이 수용자들을 따라 하나둘 디지털로 이민 가고 있다는 게 더 치명적인 문제였다.

그때 디지털 에디터를 뽑자는 의견이 나왔다. 기존 에디터들이 페이퍼 문법에 익숙해서 문제라면, 디지털 문법에 익숙한 전문 에디터를 선발해서 맡겨버리면 해결되지 않겠느냐 싶었다. 묘책 같았다. 궁중 문어체를 쓰는 에디터들이 저잣거리 구어체를 구사한답시고 어설픈 해시태그 달기를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박영희 그림〈/font〉〈/div〉

우연히 다른 매체 에디터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에스콰이어〉보다는 먼저 디지털의 파도를 헤쳐나가고 있는 매체들이었다.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디지털 에디터가 정답은 아니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기사와 화보를 생산하는 에디터와 그걸 디지털로 옮기는 에디터가 분리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수만 가지 부작용이 있었다.

깨달았다. 먼저 물어봤어야 했다. 의외로 경쟁 매체들끼리도 쉽게 묻고 답해줬다. 디지털에서는 모두가 답을 찾아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묻고 답하다가도 어느새 고민 상담을 주고받고 있다. 아무도 길을 모르니 누구도 길을 가르쳐주진 못한다. 다만 어느 길이 막다른 길인지는 공유할 수 있다.

“인터넷은 정돈되지 않은 혼돈의 공간이고 모바일 세상은 산만하다.” ‘〈뉴욕 타임스〉 혁신 보고서’에 나오는 문구다. 이제야 구해서 읽었다. 〈뉴욕 타임스〉 혁신 보고서는 〈뉴욕 타임스〉의 디지털 노하우를 담은 비서 같은 게 아니었다. 이 보고서에는 수차례 실패를 경험한 미국 언론 산업 전체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뉴욕 타임스〉는 스스로 “우리는 뒤처져 있다” “우리는 모른다”라고 인정한다. 덕분에 기꺼이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산업 전체의 집단지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언론 조직을 수평적·개방적으로 변화시키라는 시대적 요구

어쩌면 디지털 시대가 미디어한테 요구하는 지혜도 이것일지 모른다. 기업 외부의 경험과 통찰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개방성과 기업 내부의 의견·감각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수평성이다. 디지털은 언론 조직을 수평적이고 개방적으로 변화시키라는 시대적 요구다. 미디어 기업이 스스로 길을 찾고 길을 내도록 혁신해야 한다는 뜻이다.

말이야 쉽다. 겉으로는 분방해 보이지만 실상 언론사만큼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도 없다. 조직 문화는 상명하복인데 개개인은 말이 많고 듣지는 않는다. 위에서는 이 길이라고 외치고 아래에선 이 길이 아니라고 외치다간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정작 아무도 길을 모르는데 말이다. 디지털이 기존 미디어들한테 넘기 힘든 도전인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이냐 디지털이냐가 골칫거리가 아니다. 언론 조직 문화의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디지털 에디터가 해법인지 아닌지 우린 모른다. 다만 우리가 모른다는 걸 알 뿐이다. 물어야 할 뿐이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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