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우리는 모두 생애 최고로 뜨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이 지구상에 사는 한 누구도 예외는 없다. 간혹 서늘한 여름이 찾아오는 해도 있을 법하건만 벌써 오랫동안 기온은 상승 일변도다. 기후변화는 이제 작전상이라도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강퍅한 기세이다. 북극과 남극, 그리고 히말라야 산맥의 만년설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게 정말 우리 잘못일까. 아니라고 핏대를 올리던 사람들의 숫자는 슬그머니 줄었다. 우리에게 안락함과 편리함, 그리고 만복감까지 가져다주는 구세주처럼 보였던 화석연료가 과연 악마였을까. 우리가 이 악마를 소환한 게 맞다면 우리는 그들을 다시 어둠의 세계로 돌려보낼 수 있을까. 잘못을 바로잡을 만한 기회가 있기나 한 걸까.

더울 때는 귀신 얘기가 제격이다. 때로는 에어컨보다 ‘곡성’이 낫지 않던가. 여러분은 어떤 귀신을 봤을 때 체감온도가 가장 많이 떨어지시는가. 마음에 드실는지 모르겠는데 이번 주 주인공은 흡혈귀다. 나름 납량특집이다. 유럽의 뱀파이어, 중동의 구울, 중국의 강시, 우리나라의 처녀 귀신(입가에 피를 묻히고는 다니지만 그게 남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조차 두려움에 떨게 만들 놈이다. 앞의 흡혈귀들은 악명은 높지만 진짜 사람을 죽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이 녀석은 타고난 킬러이다.

ⓒ한성원 그림

그녀(이렇게 표현한 데는 까닭이 있다)는 적어도 교황 네 분을 죽였다. 신곡을 쓴 위대한 시인 단테를 죽여 입을 막아버린 범인도 그녀다. 조지 워싱턴과 링컨을 사경으로 몰아 미국 역사를 거의 바꿀 뻔했다.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을 젊은 나이에 저세상에 보내 세계사에 요란하게 개입했다. 미국이 치른 남북전쟁, 태평양전쟁 중 희생자 다수가 총기가 아니라 그녀의 마수에 당했다. 어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지구에서 태어난 인구 두 사람 중 한 명이 그녀로 말미암아 죽거나 병들었으리라고 추정한다. 근대에 들어와 국가 단위로 방역이 실시되면서 사망자 수는 줄어드는 듯했으나 기후변화의 부채질에 다시 늘기 시작해 지금도 전 세계에서 매년 40만명이 그녀가 옮기는 기생충에 목숨을 잃는다.

짐작하셨겠지만 말라리아, 아니 모기 말이다. 이 초경량급 생물체가 저지르는 악행은 무제한급이다. 그 나라의 부패하고 질 낮은 정치인 못지않게 브라질의 리우 올림픽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지카 바이러스라는 신참 유명 인사도 이 녀석들이 퍼뜨리고 다닌다. 말라리아와 함께 3대 모기 매개 질병으로 분류되는 황열과 뎅기열도 여전히 매년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이 작은 괴물은 브라질 북서쪽에서 지카와 마찬가지로 본래는 원숭이 몸에서만 살던 치쿤구니아 바이러스와 마이로 바이러스를 인간의 몸에 주입해 말썽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이 바이러스가 모기의 침샘에 몸을 의탁해 세계화와 기후변화라는 무역풍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면 또 어떤 악귀 같은 재능을 발휘할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다른 생명체의 피를 빨고 병균을 퍼뜨리는 그 모든 책임은 암컷에게만 있다. 그녀에 비하면 수컷은 맥 빠질 정도로 무능하다.

모기가 치명적인 병균을 옮긴다는 걸 인류가 깨달은 지는 100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스프레이 트럭과 비행기까지 동원해 독극물을 퍼부었다. 서식지인 습지를 말리고 방사선을 쪼이기까지 했다. 손바닥으로 때려잡거나 향을 피우는 것과 같은 고전적인 방식이 여전히 성행하는 가운데 온갖 기발한 덫들이 보태졌다. 애벌레를 죽이는 음파발신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곤충 전문가들이 탄식하듯이 “은 총알은 없었다”. 모기는 이 모든 싸움에서 최소한 비기고는 있는 상태다. 지구상의 수많은 종을 멸종시켰거나 멸종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인간의 탁월한 재주에 견주어보면 이는 놀라운 일이다.

이 녀석들과 직접 싸워온 전문가에 따르면 “이들은 이 행성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이며, 인간보다 훨씬 똑똑하다”. 아닌 게 아니라 집 안에 있자면 이놈들은 벌어진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샘솟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문단속을 하고 세심하게 방충망을 관리해도 녀석들의 침입을 완전히 봉쇄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적응력은 경탄스럽다.

지카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황열, 뎅기열 등 여러 병원균을 옮기는 데 능란한 이집트 숲모기를 예로 들어보자. 이 녀석들은 마치 인간이 어찌 나올지 훤히 꿰뚫고 있는 듯하다. 이집트 숲모기 암컷은 수컷과 딱 한 번 거사를 치러 뱃속에 정자를 간직한다. 애완견의 물 대접, 어쩌다 뒤집어진 항아리 뚜껑, 버려진 타이어, 뚜껑이 낡아 갈라진 물통 등등. 인간이 부주의하게 늘어놓은 삶의 흔적에 그때그때 조금씩 수정된 알을 흩뜨려놓는다. 수정란이 몰살하는 일을 방지하려는 분산투자다. 이 녀석들은 지금은 바짝 말랐지만 비가 내리면 곧 습지가 될 만한 곳도 귀신같이 알아내는 재주를 지녔다. 나무의 공동, 바위틈에 알을 숨겨 화학약품으로부터 자손을 보호한다. 말라리아모기는 밤에만 활동하지만 이놈들은 온종일 피를 빤다. 말라리아 환자 수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한 모기장이 지카 바이러스에는 큰 효과가 없는 까닭이다. 이 녀석들이 퍼뜨리는 질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물리지 않는 수밖에 없으나 그게 거의 불가능하다.

모기가 얼마나 정교하게 디자인된 피 빠는 기계인지 안다면 누구나 그렇게 쉽게 손을 들어 때려잡기는 힘들 것이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퍼부어지는 온갖 독극물과 도처에 널린 함정을 다 피해 천수를 누린다고 해도 겨우 한 달 남짓 살 뿐인 이 생명체는 과분할 정도로 세련된 식사도구를 제대로 갖추고 태어났다. 이들 대다수가 그 화려한 나이프와 포크를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걸 생각하면 허망하다. 우주는 낭비가 심하다.

모기의 주둥이는 가느다란 한 개의 빨대처럼 보이지만 6개 탐침으로 구성된 한 다발이다. 두 개는 지지하고, 두 개는 톱으로 썰며, 한 개는 마취기능과 혈액응고 방지 기능이 있는 침방울을 주입하고, 작은 펌프 두 개가 달린 나머지 한 개가 피를 빤다. 병원균이 숨는 곳은 바로 이 침방울이다. 피부를 뚫는 동작이 너무나 부드러워 우리는 대부분 피를 다 빨릴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모기는 체중이 두 배로 불어날 때까지 피를 빨고 뒤뚱대며 그 자리를 물러나 씩씩대며 쉬다가 빨아들인 피에서 수분을 버리고 영양분만 간직한 채 날아간다.

DIY 하듯 인간 유전자에 손을 댄다면…

전 세계 모기는 모두 3500종을 헤아린다. 그중에서 인간에게 치명적인 병균을 옮기는 부류는 몇 종에 불과하다. 적절하게 제어한다면 큰 문제가 아니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통해 모기 서식지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전 세계 공항에는 1년에 10억명 이상이 오가며 그 숫자는 얼마 안 있어 두 배로 불어날 예정이다. 평생 사람 구경을 할 일이 없었던 모기 또한 바이러스가 마구 풀려나 전 세계를 횡행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메르스나 지카 바이러스 모두 과거에는 아무 말썽도 일으키지 않던 얌전한 놈들이다. 인간 아닌 원숭이나 포유류, 그리고 조류 등에 잠복한 모기 매개 바이러스는 이루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이들은 언제라도 묻지 마 폭행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적인 막가파이다. 과학자들이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게 유전자 조작 카드이다. 실험실에서 말라리아 기생충이나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의 유전자에서 ‘사악한’ 기능을 지우거나 잘라낸 다음 방사해 짝짓기를 통해 야생의 해로운 모기를 대체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어바인 캠퍼스의 연구자 앤서니 제임스는 실험실에서 말라리아를 옮기는 유전자 제거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우리는 작은 꾸러미의 유전자를 보탰을 뿐인데 그 변화가 모기가 기생충을 옮기는 것을 방해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화학약품으로 도배를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을 알지 못했던 인류는 순식간에 모기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유전자 조작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 덕분이다. 그동안의 유전자 조작 기술은 잠재력은 무궁하지만 한계 또한 뚜렷했다. 제거하거나 변형할 목표 유전자를 정확하게 감지하기 어려워 이론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러다 2012년 CRISPR-CAS9라는 강력한 무기가 개발됨으로써 돌파구가 열렸다. 이는 자연적인 박테리아 방어 시스템을 세포 내 유전자를 잘라내거나 재배치할 수 있는 실험실 도구로 바꾼 것이다. 이 크리스퍼 체제, 일명 유전자 가위는 수많은 병변을 일으키는 광범위한 돌연변이를 찾아내 지워버릴 수 있다. 이 방식은 과거의 것에 비해 으스스할 정도로 정확하며, 쉽고, 신속하고, 싸기까지 하다.

이 기술은 우리에게 처음으로 모기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보다도 훨씬 무거운 의미로 다가온다. 지난 세기의 그 어떤 발견보다도 경이롭다는 과학자들의 찬사가 무색하지 않게 이 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는 광대하다. 당장 이 기술을 이용해 암세포와 HIV 바이러스를 도려내려는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장기 이식 연구 분야도 돌파구를 찾았다. 그동안 크기로 보나 기능으로 보나 인간에게 이식할 수 있는 장기를 가진 동물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돼지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돼지가 가진 특유의 고약한 바이러스와 인간 면역체에 대한 거부 유전자 탓에 연구가 진행되기 힘들었다. 유전자 가위는 복잡하게 꼬인 매듭을 끊어버렸다.  

이 기술은 유망한 만큼 우리에게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기도 하다. 이론적으로 이 기술은 인간 배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충분히 숙달된다면 인류를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에게 그런 권리가 있을까. DIY를 하듯 아마추어까지 유전자에 손을 댄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상상하기도 두렵다. 어느 날 크게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된다면 우리는 돌아갈 수 있을까.

참고한 활자: 〈내셔널 지오그래픽〉 〈워싱턴 포스트〉

기자명 문정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