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중순 MBC가 연속 보도를 했다. 차량용 에어컨과 공기청정기에 쓰이는 항균 필터에 ‘OIT’라는 유독물질이 들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 이후 환경부는 위해성 평가에 착수했고, 그 결과 제품 사용 과정에서 OIT가 방출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7월20일 발표했다. 환경부는 OIT 함유 필터가 쓰인 △공기청정기 △차량용 에어컨 △가정용 에어컨의 기기명과 필터 모델명을 공개하며 해당 기업에 회수를 권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환경부는 7월26일 “정상적인 사용 환경에서는 위해도가 높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며, 기기를 장기간 사용하지 않고 자주 환기할 경우 위해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라는 추가 설명을 했다. 실험 과정에서 공기 중 OIT를 포집해 분석한 결과 OIT가 미량 검출되었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섣부른 발표로 혼란을 키웠다’는 비난을 받았다. 필터·기기 목록 중 일부를 정정한 것도 그런 비난에 일조했다. 기업들은 방송 보도 이후 무상 교체를 실시하면서도 ‘환경부에서도 위해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부 발표의 핵심은, 필터 내 OIT가 공기청정기의 경우 5일 가동 시 25~46%, 차량용 에어컨의 경우 8시간 가동 시 26~76% 방출되었다는 것이다. 실험 과정에서 측정한 공기 중 농도가 낮아 “실제 인체에 얼마나 흡입되는지 여부는 학계, 전문가 등과 논의를 지속할 예정”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이를 상당량 흡입했다고 가정해 위해성을 평가한 결과 실험 제품 중 일부에서 위해가 우려되었다.

ⓒMBC 화면 갈무리유독물질인 OIT가 포함된 것으로 밝혀진 다국적기업 3M의 자동차 에어컨 필터.

문제는 애초에 OIT 자체가 유독물, 그것도 흡입독성이 있는 유독물이라는 점이다. ‘옥틸이소티아졸론’의 약자인 OIT는 애경 가습기메이트에 쓰인 CMIT·MIT와 같은 계열로, 살생물제다. 미국 농무부는 2012년 OIT를 농약 성분으로 지정했다. 환경부도 △급성 경구독성 △급성 경피독성 △피부 부식성·자극성 △심한 눈 손상 △유전적 결함 의심 △수생환경유해성 급성·만성 등을 인정해 2014년 5월 OIT를 유독물로 고시했다. 임종한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사회의학)는 “유사 계열에 있는 살균제(CMIT·MIT)가 흡입독성을 보이는 상태이므로 OIT도 화학적 구조로 봐서는 흡입독성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뒤늦게 미국 EPA(환경보호청)를 인용해 OIT의 만성 흡입독성을 알렸다. 급성 흡입독성을 시사하는 정보도 있다. 어떻게 이런 유독물질이 방출되는 필터가 출시되어 유통되고, 제품에 장착된 채 팔려나가는 일이 가능했을까?

OIT 함유 필터 제조는 대부분 한국3M(이하 3M)이 했다. 3M은 이 필터는 한국에서만 개발해 판매한 제품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최근 2년6개월 동안만 항균 필터 118만 개를 판매했는데, 이 중 OIT 처리된 필터가 72만5000개다.

적어도 OIT가 유독물로 고시된 2014년 5월 이후에는 이 물질이 함유되었고 사람이 흡입할 가능성이 있는 필터가 시장에서 퇴출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이에 대한 환경부 담당자의 답이다. “유독물질을 고시하는 건 사업장 안전 관리를 위해서다. 작업자들이 물질을 취급할 때 주의하게 하려는 목적이지, 제품 안전 기준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 물질이 제품 사용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노출되는지 평가해서 제품 안전 기준을 정해야 한다.” 그래도 공기청정기나 에어컨은 흡입이 예상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렇다. 그런데 그런 제품을 관리하는 부처가 환경부는 아니잖나”라는 답이 돌아왔다.

공기청정기, 차량용 에어컨, 가정용 에어컨에 쓰이는 필터는 어느 부처 관할도 아니었다. 관리 체계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그래도 필터가 쓰인 제품의 흡입 안전성이 체크됐다면, 사전에 유독물 방출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OIT 함유 필터 사용이 드러난 제품군 중 공기청정기와 가정용 에어컨은 산업통상자원부 관할의 전기용품안전관리법이 관리한다. 공기청정기는 안전 확인 대상, 냉방기(가정용 에어컨)는 안전 인증 대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만든 전기용품 안전 기준을 통과해 안전 확인 또는 인증을 받아야 시중에 출시되고 유통될 수 있다. 이미 팔렸거나 얼마 전까지 팔리고 있었던 OIT 함유 필터 사용 공기청정기와 가정용 에어컨은 모두 이를 통과했다는 의미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들 제품이 통과한 안전 기준인 ‘공기청정기의 개별 요구사항’과 ‘히트펌프, 에어컨디셔너 및 제습기의 개별 요구사항’을 확인해봤다. 어디에도 제품 함유 물질의 흡입독성과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전기용품안전관리법에 따른 기준인 만큼, 이들 제품군이 통과한 안전 기준은 온통 ‘감전 위험성’에 대한 내용뿐이다. 또 이 안전 기준의 심의를 맡는 전기기기 분야 전문위원회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직원이 포함돼 있다.

ⓒ연합뉴스7월26일 홍정섭 환경부 화학물질정책과장이 유독물질인 옥틸이소티아졸론(OIT) 검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번에 차량용 에어컨의 존재 때문에 국토교통부가 사건 대책을 논하는 ‘관계 부처’에 포함되긴 했지만, 국토부 관할인 자동차관리법이 규정하는 부품에 차량용 에어컨은 없다. 공기청정기와 가정용 에어컨은 감전 위험만 산자부가 점검했고, 차량용 에어컨은 안전성을 따로 인증하거나 점검하는 주체가 없었다. 산자부는 “국토부 산하로 안다”라고 하고, 국토부는 “산자부에서 관리하는 줄 알았는데”라고 답했다.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책임질 수 있는 제도 미비

정부의 관리 체계에서 벗어나 있던 제품이라도, 유해물질이 방출되는 제품을 생산하고 판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지 않을까? 3M 홍보팀 관계자는 제품 출시 전 흡입독성 실험을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부에서 그 기준은 없었던 건 아시죠?”라고 되물었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 2015년 시행됐지만 시행 전은 물론 시행 후에도, 기업이 흡입 가능한 제품을 생산할 때 흡입독성 실험을 해야 할 의무는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나중에 만약 사람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제조물책임법에 따라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피해를 입증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유독물로 고시해도 시장 규제로 이어지지 못하니, 책임 소재가 있는 기업들 스스로가 내부적으로 이를 검증하고 덮어버리는 식으로 일이 진행된다. 2014년 5월 환경부가 OIT를 유독물로 고시한 뒤, 한국 3M은 자체적으로 차량용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필터에서 OIT 방출량을 시험했다. 시험 결과 차량용 에어컨에서는 OIT가 방출되지 않았고, 공기청정기 필터에서는 극소량이 나왔다. 3M은 이를 정부나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차량용 에어컨에 쓰이는 OIT 함유 필터를 판매한 현대모비스도 환경부 고시 이후 자체적으로 시험을 했고, 그 결과 OIT가 방출되지 않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구조다.” 임종한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사회의학)의 지적이다. 임 교수는 “유럽에서는 1998년부터 별도의 법을 통해 살생물제를 관리한다. 유통량 연 1t 이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에선 이런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의견을 올려도 기업에 부담이 된다고, 규제 철폐라는 이유로 심의 과정에서 삭제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3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제정 과정에서 재계 이해를 대변하는 전경련이 반대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기업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규제 정도가 대폭 축소된 화평법이 통과됐다. 결국 어느 누구도 시장 출시 이전에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책임질 수 없는 제도가 시행되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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