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5일은 기초연금이 시행된 지 2년째 되는 날이다. 대다수 노인의 통장 계좌에 약 20만원이 입금될 것이다. 동시에 약 40만명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의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이 삭감되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도 계속될 것이다. 이 문제가 알려지면서 지난 총선에서 야 3당이 모두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7월25일에는 노인들이 청와대 앞에서 ‘3차 도끼상소’도 벌인다. 물론 넘어야 할 장벽이 여전히 높다. 보건복지부가 ‘보충성 원리’를 내세우며 꼼짝하지 않고, 새누리당도 버티고 있어서 국회 논의조차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미 소중한 성과가 생기고 있다고 판단한다. 바로 ‘주체 형성’이다. 지난 2년간 노인들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섰다. 비록 소수이지만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고 구체적 해법까지 제시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이 삭감의 비밀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일반 노인들은 ‘나보다 더 어려운 노인이 못 받다니 미안하다’며 연대에 나섰다. 한국 최초의 노인 노동조합인 ‘노년유니온’도 산파역을 하며 존재감을 확인한다. 공동대책 기구에 참여하는 복지단체도 20여 개에 이르고 시민들도 이 문제의 부당성을 알아간다. 국회·언론이 방치했던 문제를 당사자들이 기획하고 공론화하며 스스로 복지 주체로 커가는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지난 2월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연대’가 발족했다. 수십 년간 시민 모금과 방송에 의존해 사업을 벌여오던 사람들이 직접 나섰다. 더 이상 ‘민간 모금’ 방식으로는 어린이 병원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오래된 좌절’이 새로운 활동에 나서게 했다. 이젠 제발 국가가 어린이 병원비를 해결하자고 말이다. 지난 6개월간의 활동을 통해 시민들의 공감이 확산되었고 9월부터 전국적으로 국민 서명운동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 운동의 중심에는 어린이 지원단체, 지역아동센터 등이 있고 어느새 참여 단체도 60여 개로 늘었다. 이들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모든 후보에게 약속을 이끌어내 2018년부터는 어린이 가족들이 병원비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리라 기대한다.

역시 넘어야 할 산은 높다. ‘무상의료’가 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해 과잉 입원이 생길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병원의 비급여 진료에 대한 통제 체계를 구축하는 일도 시급하다. 그래도 눈여겨봐야 할 운동이다. 어린이 병원비 문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도와오던 사람들이 스스로 ‘민간 모금’ 방식을 넘어서자고 나섰다. ‘제도적 틀’ 안에서 복지를 제공하는 구실을 했던 복지기관 종사자들이 정부를 향해 국민건강보험 제도 개혁을 요구한다. 민간 의료보험에 의존해오던 일반 시민들까지 합세한다면, 병원비를 의제로 풀뿌리 복지 주체가 커가는 새로운 ‘의료운동’이 될 수 있다.

‘복지국가’ 앞에 어떤 형용사를 붙일까

나는 복지국가를 두 개의 기둥을 가진 건물에 비유한다. 오른쪽은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양적 기둥이고, 왼쪽은 협동과 연대로 엮인 사회적 관계, 즉 복지 주체 기둥이다. 복지국가라는 집은 두 기둥이 함께 차곡차곡 올라가야 한다.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에 복지국가 바람이 불고 복지도 확대되어왔다. 복지국가 집이 5층이라면 오른쪽 기둥이 2층 정도 올라간 셈이다. 왼쪽 기둥은 어떨까?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이 전면화되고, 기초연금이 두 배로 오르는 과정에서 엄마들은, 노인들은 협동의 주체로 거듭나고 있을까? 시민들은 복지국가에 어울리는 연대의 경험을 얼마나 쌓아가고 있을까?

내가 속한 단체의 이름은 ‘내가 만드는’으로 시작한다. 2012년 당시 여야 정치권이 ‘행복한’ ‘정의로운’ ‘역동적’ 등 가치를 담은 형용사를 복지국가 앞에 붙인 것과 비교해 주체를 강조한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이름값을 했는지 부끄럽다.

그래서 ‘줬다 뺏는 기초연금’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과 같은 의제를 더욱 주목한다. 기존 정치권, 시민단체가 아니라 당사자들이 앞장서고 일반 시민들이 함께하는 주체 형성의 싹이 담긴 운동이다. 사실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일자리·세금·사회보험·주거·교육 등 오늘 대한민국에서 서민들이 만날 민생 의제는 많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 ‘어린이 병원비’처럼 당사자와 시민들이 분명히 발언할 수 있도록 의제를 구체화하자. 그래야 시민들이 직접 이야기하며 손을 맞잡을 수 있고, 이 힘이 기울어진 건물을 올바로 잡으며 층을 높여갈 수 있다. 아래로부터 ‘주체를 형성하는’ 복지국가 운동이 절실하다.

기자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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