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도 책은 책이지만 사전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야. 특히 어휘 사전을 읽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 거야. 어휘 사전은 읽는 책이 아니라 찾아보는 책이지. 사실 요즘은 어휘 사전이 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어서 종이책 사전을 찾아보는 일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나는 10대 후반 한 시절 국어사전을 읽은 적이 있어. 그냥 읽은 게 아니라 고유어를 중심으로 밑줄 쳐가며 그 낱말을 익히려고 애썼어. 말하자면 그냥 헐렁한 독서를 한 게 아니라 열심히 공부를 한 셈이지. 그 시절 나는 외솔 최현배 선생의 영향을 짙게 받은 언어민족주의자였고, 되도록 많은 우리 고유어를 알고 싶었어. 그 시간이 길었다면 내 어휘는 굉장히 불었을 텐데 몇 달 못 가서 흥미를 잃고 흐지부지돼버렸어. 그래도 그 몇 달이 내 한국어 어휘를, 특히 고유어 어휘를 늘리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됐을 거야.

뒷날 나는 나 말고도 국어사전을 ‘읽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 한 사람은 시인 고은 선생이야. 고은 선생은 1980년대 초에 이른바 (조작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감옥 생활을 할 때, 국어사전을 통째로 읽으셨대. 10대 후반의 나처럼 고유어 중심으로 읽은 게 아니라. 고유어든 한자어든 한국어 어휘 전체를 당신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야. 출옥 뒤에 고은 선생이 젊은 시절보다 더 열정적으로 발표한 시들 가운데는 감옥에서 익힌 말이 꽤 들어 있으리라고 생각해. 또 한 사람은 작고한 소설가 김소진씨야. 김소진씨의 사전 읽기 스타일은 고은 선생보다는 나와 비슷했어. 고유어를 중심으로 공부하듯이 국어사전을 읽어 나갔다고 들었으니까. 요절한 탓에 김소진씨는 많은 소설을 쓰지 못했지만 그의 소설 속에는 아름답고 섬세한 고유어들이 점점이 박혀 있어. 그런데 사실 그 고유어들 때문에 그 소설이 쉽게 읽히지 않기도 해. 모르는 단어들이 숱하게 박혀 있는 소설이 쉽게 읽힐 수 있겠어? 아무튼 김소진씨는 국어사전 한 귀퉁이에 처박혀 사멸할 운명이었던 고유어들을 되살려내 자기 소설을 풍부하게 만들고, 독자들을 계몽한 셈이 됐지.

ⓒ이지영 그림

우리 시대의 소설가 가운데 이렇게 고유어들로 독특한 문체를 만들어낸 이가 김소진씨 말고 또 있어. 돌아가신 이문구 선생이 그렇고, 김성동 선생이 그래. 두 분은 다 호서지방이 고향인데, 그분들 소설에서는 호서지방에서 쓰는 고유어들이 많이 발견돼. 그렇지만 김소진씨의 고유어들과 이문구·김성동 선생의 고유어들은 성격이 달라. 이문구·김성동 선생이 소설에 쓴 고유어는 당신들이 아주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익힌, 그야말로 살에 배어 있는 고유어지만, 김소진 소설의 고유어들은 작가가 장성한 뒤 의식적으로 국어사전에서 익힌 것들이지. 물론 독자들에게는 양쪽 다 낯설기가 비슷할 테지만.

나는 최현배 선생에게 배운 언어민족주의를 이내 버렸기 때문에, 한국어 어휘 가운데 고유어가 한자어보다 더 귀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 물론 똑같은 뜻의 한자어 단어와 고유어 단어가 있을 경우엔 고유어를 쓰는 게 더 좋겠지. 그렇지만 어떤 언어에서도, 똑같은 뜻을 지닌 말들은 없어. 예컨대 ‘피’와 ‘혈액’이라는 말을 보자고. ‘피검사’라는 말을 ‘혈액검사’라고 바꿀 수 있으니 이 말들은 언뜻 보기엔 동의어 같아. 그렇지만 서로 맞바꿀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라는 말을 “머리에 혈액도 안 마른 놈이!”라고 고쳐 말할 수는 없어. 개그 프로그램에서라면 몰라도. 마찬가지로 “피 끓는 청춘”을 “혈액 끓는 청춘”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목숨’과 ‘생명’도 그래. “이 생명 다 바쳐 조국을 지키겠습니다”를 “이 목숨 다 바쳐 조국을 지키겠습니다”라고는 바꿀 수 있어. 그렇지만 “이 작품은 생명이 오래갈 거야”라는 말을 “이 작품은 목숨이 오래갈 거야”라고 바꿔 말할 수는 없어. 또 “꽃도 생명을 지니고 있어”라는 말을 “꽃도 목숨을 지니고 있어”라고 말하지는 않아.

물론 거의 동의어라고 할 수 있는 말도 많지. 여름옷과 하복, 폐와 허파, 양잠과 누에치기 같은 말들이 그래. 그래도 어떤 맥락에서는 ‘폐’가 더 어울리고 어떤 맥락에서는 ‘허파’가 더 어울리는 뉘앙스의 차이는 있어. 그래서 원칙적으로 한 언어 안에 완전한 동의어는 없다고 말하는 게 안전해. 유의어들이 있을 뿐이지.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 유의어들 가운데 꼭 고유어를 고집하지 않아. 한자어가 더 어울린다 싶으면 한자어를 쓰고 고유어가 더 어울린다 싶으면 고유어를 쓰지. 게다가 이미 굳어진 말들도 있어. 예컨대 나는 베르디의 〈사계〉를 〈네 철〉로 바꾸지는 않을 거야.

그렇지만 우리말에서 고유어가 점점 잊혀가면서 한자어나 외래어로 대체되는 추세가 서운하기는 해. 그것은 민족주의자든 아니든 마찬가지일 거야. 그 잊혀가는 고유어를 익히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어. 장승욱이라는 사람이 쓴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라는 책이야. 하늘연못 출판사에서 나왔어. 우선 ‘도사리’라는 말부터 귀에 설지? 나도 이 책에서 처음 접한 말이야. 저자 설명에 따르면 ‘도사리’는 “익는 도중에 바람이나 병 때문에 떨어진 열매, 또는 못자리에 난 어린 잡풀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래. 저자는 다섯 해 넘게 이른 새벽 과원(果園)에 나가 이들 도사리를 줍는 심정으로 순우리말 어휘 4793개를 모아 이 책을 썼대. 이 책은 그러니까 우리 고유어를 공부하는 책이야.

꽃맺이·꽃무덤·꽃잠·낯꽃, 아름답긴 하지만…

10여 년 전 이 책을 처음 대했을 때, 나는 내 한국어가 이리도 빈약하구나, 하고 한탄했어. 저자가 이 책에서 본뜻과 속뜻 그리고 그것들의 용례를 설명해준 우리 고유어 가운데 모르는 말이 아는 말보다 훨씬 많았거든. 한국어 어휘는 나도 꽤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터였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자만심을 완전히 버렸어. 아는 단어가 하나 나오면 모르는 단어가 대여섯은 나왔으니까.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을 다시 펼쳐봤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내 어휘가 크게 늘어난 것 같지는 않아. 40대 중반은 이런 책을 읽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던 것 같아. 그래서 이 책을 되도록 젊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해. 머리가 말랑말랑해서 뭐든지 흡수할 수 있는, 그러니까 기억력이 좋은 나이의 독자들 말이야. 물론 나처럼 마흔을 넘겨서 읽을 수도 있겠고, 심지어 70대, 80대 어르신들이 읽어도 좋겠지. 외려 70대, 80대 어르신들은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가 소개하는 낱말을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수도 있어. 이 말들은 어쨌든 한때는 쓰였던 말일 테니까.

그런데 이 책 흉도 좀 보고 싶네. 저자는 아마 이 책에 수록한 말들을 자연스럽게 익힌 게 아니라 국어사전에서 끄집어내왔을 거야. 그것은 ‘우리말 사랑’이라는 좋은 뜻에서 한 일이겠지만, 그것이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일까? 언어는 변하기 마련이야. 그 과정에서 어떤 말들은 사라지고 어떤 말들은 새로 태어나지. 그 자연스러운 변화를 막기 위해 사라져가는 고유어들을 붙들고 우리가 반드시 익혀야 할까 싶기는 해. 물론 이 책에 모인 우리 고유어들은 자주 그 아름다움과 섬세함으로 독자들을 감탄케 해. 꽃맺이·꽃무덤·꽃잠·낯꽃이라는 말의 뜻을 알았을 때 나는 감탄했어. 그런데 독자들 대부분이 모를 저런 말을 내가 글에다 쓸 것 같지는 않아.

아, 또 하나. 저자는 책 내용을 기름지고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르게, 낱말들의 어원에 대해 얘길 하곤 해. 그런데 그것은 대개가 민간 어원이어서 믿을 바가 못 돼. 민간 어원이 뭐냐고? 학술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사람들이 상상해서 짐작하는 어원을 뜻해.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으면,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줄을 쳐가며 외운다면, 한국어 어휘가 부쩍 늘어나긴 할 거야. 그 말들을 써먹을 기회가 자주 있을지는 모르지만. ●

기자명 고종석 (작가·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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