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몇 점일까. 많은 대학들이 대학 생활 만족도 조사나 재학생 인식 조사 같은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내부용이나 기관 평가 자료로만 활용되고 사장된다. 장학금을 늘리고 오래된 컴퓨터를 교체하고 도서관을 리모델링해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나 편의점이라도 하나 입점시켰다면 지난 조사 때보다 점수가 조금 상승할지도 모른다. 물론 없는 것보다 낫다. 하지만 정작 중요하고 어려운 일은 대부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일하면서 안면을 트게 된 학생들에게 종종 물어본다. 대학 생활이 만족스러운지, 그렇다면 왜 그런지. 많지는 않지만 대학 생활에 만족한다는 학생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열이면 열 교수와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었다. 그걸 자랑하듯 이야기한다. 한 3학년 학생은 남들이 못 들어가서 안달인 사립대학 합격증을 내던지고 우리 대학을 선택했다.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공부든 생활이든 학생들한테 관심을 갖고 신경 써주시는 교수님들을 만날 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하단다.

어떤 여학생은 늦은 밤에도 교수 연구실에 불이 켜져 있으면 찾아가곤 한다. 여러 명이 몰려가 교수와 수다를 떨 때도 있다. 특별한 용건이 없어도 “교수님이 언제든 찾아오라고 하셔서” 그냥 간단다. 조언이든 꾸지람이든 잡담이든 상관없다. 지도교수가 아니어도, 교양수업 때 만난 다른 학과 교수나 큰 기대 없이 들은 수업에서 새로운 분야에 눈을 뜨게 해준 교수여도 좋다.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고 두 눈 맞추며 진지하게 대화에 임하는 교수와 마주하는 그 순간을, 학생들은 대학 시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으로 간직한다.

ⓒ박해성 그림

카카오톡 같은 실시간 연락 수단이 발달한 요즘도 교수 연구실 문턱은 한국 대학교수들의 다소 과장된 사회적 지위만큼이나 여전히 높고 견고하다. 무엇보다 교수와 학생 사이 마음의 장벽이 높고 심리적 거리가 멀다. 이 거리를, 격식 파괴에 능한 요즘 대학생들도 무심히 뛰어넘기는 힘들어 보인다. 최근 대학들의 교수 평가가 연구 실적 중심의 정량 평가에서 교육이나 사회봉사 같은 교수 개인의 강점을 인정하는 정성 평가로 변화하는 추세이지만, 아직은 학생 지도는 뒷전으로 미루고 승진을 위한 실적 쌓기나 외부 활동에 골몰하는 교수가 더 많다.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더 행복하길 바라는 직원의 눈으로, 그리고 미래의 대학생 학부모 처지에서 보자면 교수들이 먼저 연구실 문을 열어젖혀야 한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자문(自問)해보았으면 좋겠다. 변하지 않는 여건만 탓하기에는 그 여건을 바꿀 힘이 교수들에게 더 많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카톡’을 나누고 ‘페북’에서 먼저 친구 신청도 해보면 어떨까.

연구 실적 쌓느라 바쁜 것은 알지만…

물론 교수들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교수들을 만나보면 학생들과 접촉을 바라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정년 보장을 위해 연구 실적 챙기랴 연구과제 기획서 쓰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마음만큼 몸이 안 따라준다. 만난다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도 중요하다. 정작 바쁜 시간을 쪼개 학생들을 직접 만나는 교수들 가운데는 약간의 불만이 있다. 한 교수는 “학생들이 교사 같은 교수를 원하는 게 아니냐”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교실에 앉아 있으면 닭 모이 주듯 때맞춰 찾아와주는 교사와 대학교수는 엄연히 다를진대, 교사와의 생활에 익숙한 습성을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내가 대학생 때 저랬나’ 싶을 정도로 자기 앞가림에 서투르거나 의존적인 ‘어른 아이’ 같은 대학생들이 직원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일도 더러 있다.

그럼에도 교수와 학생은 만나야 한다. 개점휴업 상태처럼 조용한 교수 연구실 복도를 학생들의 발걸음 소리로 가득 채울 수 있는 묘책은 없는지 직원 처지에서 늘 궁리한다. 학생이나 교수 개개인의 성격과 스타일에 대책 없이 맡겨놓기엔 이 숙제를 끌어안은 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기자명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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