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에서 재현될 ‘밀양 전쟁’
  • 장정일 (소설가)
  • 호수 462
  • 승인 2016.07.27 17: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쟁은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지 내부의 갈등을 조정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국가가 자신의 내부에 식민지를 거느리려 할 때, 국가는 내전의 원리로 조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국가는 정치를 포기한 것과 같다.

장훈교의 〈밀양 전쟁〉(나름북스, 2016)은 파격적인 제목을 가졌다. 어떤 책들은 제목만 그럴 뿐 내용은 진부해서 ‘낚였다’라는 원망을 듣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2000년부터 짜기 시작한 제5차 장기 전력수급계획을 여러 차례 변경한 끝에 신고리 1~8호기에서 나오는 원자력발전소 전력을 부산·울산·경남과 대구·경북 지역에 공급하기로 했다. 그 결정에 따라 신고리원자력발전소 3호기와 북경남변전소를 연결하는 송전선 경과지의 하나로 밀양이 선택됐다. 765㎸의 전압이 흐르게 될 90.5㎞의 송전선로에는 162기의 송전탑이 필요한데, 가장 많은 69기가 밀양에 세워진다. 2005년 12월, 밀양 상동면 옥산리 주민은 한국전력 밀양지사 앞에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첫 집회를 열었다.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권위주의 정치 체제는 발전과 개발을 북한 체제와의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한국 산업화 과정의 구조적인 속성의 하나는 산업화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구조화된 ‘정전(停戰)’이라는 또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의 연속이라는 조건하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조건은 한국 자본주의 산업화가 남북한 간의 분단 상황으로 인해 위협적인 외부의 적이 항구적으로 존재하는 전쟁 배치 안에서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 지은이는 정전이라는 조건 속에서 벌어진 박정희 군부의 산업화 국가전략이 “방법으로서의 군사주의”에 기반해 있다고 말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이지영 그림〈/font〉〈/div〉

선진 산업국가는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국가전력망을 구축함으로써 산업화에 도달했다. 전력망의 중앙집중화는 한 나라 전체 산업의 하부 구조이면서 전체 산업발전의 추동력이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당면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전력 개발 촉진을 내걸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의결을 통해 ‘한국전력주식회사법’을 공표했다. 이로써 당시에 영업 중이던 전기회사 3사(조선전업·경성전기·남선전기)는 쿠데타가 일어났던 해 7월, 한국전력주식회사로 통폐합된다. 이 사실은 한국의 전력사업이 권위주의 군사정부의 경제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출발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한편, 같은 회사가 한국전력공사로 전환되고 난 1982년 이후에도 여전히 군사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한국 전력사업의 악습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을 암시해준다.

군사정부는 1962년, 국가전력망 구축에 요구되는 전기설비 설치에 대한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대를 봉쇄하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1932년에 제정한 조선전기사업령을 모방한 전기사업법을 만들었다. 이 법에 따르면 전기설비를 세울 경우 토지 소유자와 협의해야 하지만,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공부 장관의 허가를 얻어 토지 소유자에게 공사 강행을 통보할 수 있다. 보상 액수 역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한국전력이 상공부 장관의 재정을 얻어 일방적으로 보상금을 지급하면 적법한 절차가 되었다. 1979년에 발효된 전원개발특례법(촉진법)은 한국전력이 전원설비 계획을 입안하고 입지를 선정하면 해당 지역의 토지 소유주나 주민은 자기 재산에 대한 처분 권리를 자동 상실하도록 개악되었으며, 그 법에는 주민에게 동의를 구하는 법적 절차도 생략됐다.

국가는 각 개인의 소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타자의 소유에 대한 약탈을 방지해야 한다. 국가가 사업의 주체인 국책사업

〈밀양 전쟁〉장훈교 지음나름북스 펴냄

이라고 해서 이런 질서로부터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전액을 출자한 한국전력공사의 토지 수용 셈법에는 상품의 가치와 가격이 일치하는 등가교환의 원칙이 무시되었다. 토지 수용 과정에서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주민에게 언제나 부등가교환을 강제했다. 밀양에서 약 40년 동안 밤농사를 지어온 양상용 할아버지와 임오순 할머니는 6700평(약 2만2000㎡)의 땅에서 난 밤으로 1년의 전체 수입인 600만~700만원을 벌었는데, 한국전력은 두 사람에게 150만원을 땅값으로 보상했다. 이것은 국가가 법과 공권력으로 약탈한 것이다.

문제는 부등가교환에만 있지 않다. 밀양 주민들이 잃게 될 장소(고향)는 그 어떤 등가교환으로도 보상되지 않는다. 장소는 경제학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실존의 거처이자, 나의 정체성을 유지해주는 기억의 집이다. 몇 년째 애용하던 단골 커피숍이나 대폿집이 사라졌을 때 가슴에 밀려온 상실감을 느껴본 도시인이라면 자신의 근거를 빼앗긴 밀양 주민의 박탈감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그토록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것도, 장소 상실에 대한 공허감을 메우고자 했던 것 말고 뭐가 더 있나?

“밀양 사람들은 내부 식민지의 희생자”

지은이는 송전탑에 자신의 장소를 빼앗기고 난민이 될 처지에 놓인 밀양 사람들을 내부 식민지의 희생자로 부른다. “자본주의 산업화 과정에서 선발 그리고 후발 자본주의 산업국가들은 국가 외부의 ‘식민지’ 건설을 통해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외부에 전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 지구적인 탈식민화 이후 산업화 과정에 접어든 후후발 국가군에 속하는 한국은 외부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는 국가 역량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체 사회의 내부에 ‘식민 관계’를 창출해 산업화 비용을 ‘내부’의 또 다른 ‘외부’로 전가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전쟁은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지, 내부의 갈등을 조정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국가가 자신의 내부에 식민지를 거느리려고 할 때, 국가는 내전의 원리로 조직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전의 원리로 조직된 국가는 정치를 포기한 것이나 같다. 격렬한 갈등을 동반했던 새만금, 평택 미군기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한·미 FTA, 그리고 정부와 한국전력공사의 약탈에 결사 항전한 밀양은 전쟁이 벌어진 전장이었다. 안타깝게도 열거된 모든 전장은 군사정권 시절이 아닌 노무현 정권 아래서 생겼다. 두 번의 민주당 정권과 노무현 정부는 군부 시절의 산업화 과정에 구축된, 개발을 위한 ‘방법으로서의 군사주의’를 민주화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은 군사정부 시절의 비효율성 문제를 민주주의의 확장이 아닌, 신자유주의 기획이 제안한 민영화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지난 7월8일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기로 최종 결정하면서, 후보지로 지목된 칠곡·예천·평택·군산·원주·기장에서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반대 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결국 경북 성주가 횡액을 맞게 되었지만, 강정과 밀양의 주민들을 향해 ‘님비’니 ‘종북’이니 하던 자들도 이제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배후는 국가의 결정으로부터 배제된 주민들의 자기 결정이었다는 것을. 이제 밀양은 고유명이 아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