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은 예명이 아닌 본명이다. 접속조사로 된 이름 탓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할 때마다 곤란을 겪곤 한다. 이름자로는 잘 쓰지 않는다는 ‘여울 랑(瀧)’을 아버지가 자신에게 준 까닭은 잘 모른다. 아버지와 친하지 않아서 묻지 않았다. 이랑씨의 이름 뒤에 괄호를 치고 직업을 꼭 적어야 한다면 ‘늘 무언가 하는 사람’ 정도가 어울리지 않을까. 영화를 찍고, 만화를 그리고, 시나리오를 쓰고, 공연을 기획하고, 수업도 하고, 그러다 힘들면 노래를 불렀다. 하고 싶은 일은 늘 생겼다.

이랑씨가 사는 세계는 ‘왜?’로 가득 차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도대체 왜 매일 아침 일어나 학교에 가야 할까 궁금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 자퇴를 하게 됐을 때 정말 기뻤다. 일찍 일을 시작했다. 열일곱 살 때 월간지 〈페이퍼〉에 만화를 연재했다. 미대 입시에 실패한 뒤 영화 〈박하사탕〉을 보고 온종일 방을 구르며 울었다. 이창동 감독 앞에 의자 하나 꿰차고 앉고 싶어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시험장에서 시놉시스의 뜻을 몰라 조교에게 물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합격증을 받았다. 서울 석관동, 보증금 120만원에 월세 15만원짜리 옥탑방에 살면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만원짜리 옥탑방에 사는 친구를 부러워했다.

일이 없으면 무섭고 화가 났고, 일이 있어도 무섭고 화가 났다. 노래를 시작한 건 그래서였다. “노래는 나의 분노와 공포를 잠재우기 위한 치료법이었다. 혼자 노래를 지어 부르는 것이 스스로에게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뮤지션이니 싱어송라이터니 하는 외투를 걸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할까, 내 음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따위도 그때나 지금이나 고민하지 않는다.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노래 부문 후보에 올랐던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실린 정규 1집 〈욘욘슨〉(2012)의 곡들은, 모두 마이크도 없이 맥북 한 대로 집에서 녹음했다. 그저 자신이 듣고, 친구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들었고 그래서 아는 것에 대해서만 불렀다.

7월13일 발매된 정규 2집 〈신의 놀이〉 역시 스튜디오 녹음은 따로 하지 않았다. 대신 이랑씨가 집처럼 편안하게 여기는 공간인 서울 마포구 ‘아메노히 커피점’에서 불렀다. 영업이 끝난 새벽 시간에 녹음했다. 데드라인을 정하지 않고 작업한 까닭에 꼬박 4년 만에야 두 번째 앨범이 나왔다. 작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포기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때 만든 노래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였다.

새 앨범은 CD 없이 96쪽짜리 책 형태로 발매됐다. 책에 포함된 다운로드 코드를 이용해 밴드캠프(bandcamp)에서 음원을 받으면 된다. 책마다 코드를 달리 처리했다. 멜론이나 네이버뮤직 등 기존 음원 플랫폼에는 당분간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다. 1쇄 1000부가 발매한 지 이틀 만에 다 나가 2쇄를 찍어야 할 상황이다. 판매점으로부터 수금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새로 찍을 돈이 없는 웃지 못할 형편이다.

책에는 10곡 노래마다 담긴 사연을 썼다. 노래가, 그리고 글이 나온 곳은 어릴 때부터 써와서 수북이 쌓인 노트들이었다. 노트에는 무엇이든 떠오르는 대로 적어뒀다. 이번에는 그중 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추렸다. 이랑씨에게 삶은 무겁고 죽음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왜 죽고 싶은지 적다 보니 그 말이 사실은 ‘살고 싶다’는 말의 간절한 표현임을 깨닫게 됐다. 정말 죽고 싶은 사람들은 왜 죽고 싶은지 제대로 말해보지도 못한 채 죽어버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랑씨가 생각하는 〈신의 놀이〉는 ‘자살 방지 앨범’이다.

ⓒ시사IN 신선영

모두들 자신을 어떻게 돌보며 살고 있을까

사람들이 그렇게 죽기 전에 말을 걸고 싶었다. 오늘은 뭘 했을까, 어떤 기분일까, 내일은 무엇을 하고 싶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듯이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다. “깔깔 웃긴다기보다 낄낄 놀릴 거리가 더 많은 이상한 도시 서울”에서 모두들 자신을 어떻게 돌보며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목적은 위로다. 위로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도 결국 고단해질 것이다. 그래도 만들고 싶다. 사람들이 어떤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어떤 위로를 받고 싶은지 먼저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나의 어둡고 슬퍼하는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신의 놀이〉가 나온 날,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봤다. 스마트폰 전화번호부 목록을 밀어올리며 한 명씩 이름을 적어봤다. 한 달 전 자살한 10년 지기 친구의 이름 앞에서 멈칫했다.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문자를 찾아봤다. 죽은 친구를 함께 아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보낸 마지막 문자가 뭔지 알아? ‘콜라 사와’였어.” 친구가 답했다. “난 ‘잇츠 파티 타임’이라고 보냈어. 이상한 이모티콘이랑.” 그날 밤에는 꿈을 꿨다. 장례식장이 아니라 병원으로 가는 꿈. 자살에 실패한 친구를 타박하러 병문안 가는 꿈이었다. “친구가 죽기 전에 이 앨범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이 노래를 듣고, 이 글을 읽었으면 ‘아 쟤도 저러고 사는데 나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서두를걸…. 많이 자책했다.”

‘신’이라는 존재는 이랑씨에게 언제나 물음표다. 연애라든지 질투라든지 공포 같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신이 만든 게 분명한 것들이 계속 궁금하다. 특별히 종교가 있는 건 아니지만 신의 업적을 존경한다. 그럼에도 신이 제정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때로 이랑씨는 신을 이해해보기 위해 신을 흉내내본다. 그럴 때는 물을 자작하게 받은 대야 속에 드라이아이스를 넣는다. 대야 속에서 부드럽고 차가운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면 턱을 괴고 생각한다. ‘자, 무엇을 창조해볼까?’

이랑씨가 진행하는 영화 창작 수업의 제목도 ‘당신은 한 세계의 신이 된다’이다. 나를 소재로 쓰는 법을 제일 처음 가르친다. 이랑씨는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내가 아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잘 알아야 ‘남’도 만들 수 있다. 그러러면 우선 ‘나’를 등장인물로 만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모두 죽는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죽음을 돌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신의 놀이〉를 함께 제작한 유어마인드의 이로씨는 이 앨범을 “힘차게 어두운 음반”이라고 표현했다. 9월에는 일본에서 1집과 2집 앨범이 동시 발매되는데, 번역을 도와준 ‘아메노히 커피점’ 사장은 이랑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누마데 간바로(死ぬまで がんばろう).” 죽기 전까지 힘내자는 말이었다.

이랑씨는 언젠가는 정말 아이들이 주인공인 동요를 만들고 싶다. 3년 전에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작곡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밝고 명랑하고 귀여운 동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꽃이 나오고 잠자리가 나오고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엄마들이 좋아하고 그래서 ‘돈이 되는’ 그런 동요. 막상 아이들이 들려주는 세계는 피로와 무기력과 죽음에 대한 것들이었다. “‘엄마, 나 피곤해 죽을 거 같아’ 이런 노래 나오면 좋을 거 같지 않나? 왜 그런 ‘진짜 동요’는 없지? 잠시만, 잊어버리기 전에 메모해야지.” 그렇게 이랑씨의 수첩에 새로운 기획이 또 하나 적혔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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