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6일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가족과 함께 미국에 입국했다. 그날부터 아들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게임을 하는데 자꾸 주위를 돌아다녀야 한단다. 호텔 바깥으로 한밤중에 나가겠다고 하거나 호텔 복도를 쭉 돌고 온다. 왜 이러나 싶었다. 보스턴 여행을 하면서 길거리를 보니 우리 아들만이 아니었다. 많은 미국 젊은이가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보면서 길을 걷거나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아들은 그럴 때마다 “〈포켓몬 고(Pokemon Go)〉 하는 거야”라고 외쳤다.

미국이 그야말로 〈포켓몬 고〉 열풍에 휩싸였다. 7월6일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아이폰·안드로이드폰용 스마트폰 앱으로 발표된 닌텐도의 〈포켓몬 고〉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증강현실(AR)이 결합된 게임이다. 스마트폰의 위치확인 기능을 이용해 지도 위 장소에 카메라로 현장을 비추며 다니다 보면 가상의 포켓몬스터 캐릭터가 나타난다. 이 캐릭터에 몬스터볼을 던져서 잡는 방식으로 게임한다.

컴퓨터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은 보통 가상세계에서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사용자들은 PC나 스마트폰 화면에만 몰입하기 마련이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최근 블리자드의 〈오버워치〉라는 전투 게임이 한국에서 초대박이 났다. 하지만 게임에 관심 없는 일반인은 이 열기를 느끼기 쉽지 않다. 〈오버워치〉 팬들은 PC방이나 자신의 방 안에 틀어박혀서 게임을 즐기기 때문이다.

ⓒAP Photo<포켓몬 고>를 잘하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녀야 한다. 게임 출시 후 길거리에 포켓몬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포켓몬 고〉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연결해버렸다.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녀야 한다. 그래야 게임을 즐기고 점수를 더 얻을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포켓몬 고〉가 나오자 오프라인 세상이 뒤집어졌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까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이 게임은 순식간에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 1위를 점령해버렸다. 길거리에는 포켓몬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포켓몬이 많다고 알려진 곳이나 게임 내에서 운동센터로 지정된 장소에는 갑자기 사람들이 밀어닥쳐서 인근 주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포켓몬이 있다며 밤에 으슥한 곳으로 사람들을 유인해 돈을 빼앗은 강도도 나왔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는 온통 포켓몬 이야기뿐이다. 〈뉴욕 타임스〉 〈보스턴 글로브〉 등 주요 신문도 〈포켓몬 고〉 열풍을 모두 1면에 다룰 만큼 주요 뉴스로 취급하고 있다. 한국에는 이 게임이 아직 출시되지 않아서 할 수 없는데도 벌써 화제 만발이다.

〈포켓몬 고〉로 닌텐도 명성 되찾을까

이 게임은 스마트폰 시대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고전하던 게임의 명가 닌텐도의 저력을 확인케 해주고 있다. 〈포켓몬 고〉가 나온 뒤 닌텐도의 주가는 60% 가까이 폭등했다. 시가총액도 10조원가량 늘었다. 지금의 닌텐도 시가총액인 30조원은 전성기였던 2007년 가을의 약 90조원에는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닌텐도가 〈포켓몬 고〉를 통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이 게임은 사실 닌텐도가 개발한 것이 아니다. 구글의 사내 벤처였다가 분사한 나이앤틱이라는 회사가 만들었다. 이 회사에 닌텐도·구글·포켓몬컴퍼니가 출자했다. 〈포켓몬 고〉 열풍은 포켓몬이라는 강력한 콘텐츠의 힘, 증강현실이라는 신기술, 그리고 나이앤틱이라는 스타트업의 열정이 어우러져 나왔다. 과연 이 열풍이 얼마나 이어질지, 증강현실 게임 붐으로 이어질지도 관심거리다. 한국의 포켓몬 팬들을 위해서도 이 게임이 한국에 출시되길 바란다(현재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게임이 가능하다. 〈포켓몬 고〉를 하려는 게이머들이 ‘태초 성지’를 찾고 있다).

기자명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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