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르포] “사드 성주 배치 반대” 외친 사회자가 욕 먹은 까닭
  • 김연희 기자
  • 호수 462
  • 승인 2016.07.1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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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는 지금 전쟁 중이다. 사드 배치 예정지로 발표된 이후 성주 민심은 하루가 다르게 폭발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던 이곳에서 정부·여당을 규탄하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커버 스토리


[르포] 성주의 미래, 일본의 ‘사드 마을’을 가다

“새로운 기지란 적에겐 ‘타깃’이다”

[성주 르포] “사드 성주 배치 반대” 외친 사회자가 욕 먹은 까닭

 
 
 

7월14일 오전 경북 성주군 성원1리 마을회관. 성원1리는 사드 기지가 들어서는 성산리에 인접한 마을이다. 사드 기지(예정)에서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박근혜 대통령의 선영(고조부터 8대 조상들 묘역)이 있는 곳으로 고령 박씨가 25가구가량 살고 있다.

성원1리 마을회관에는 할머니 12명이 오전 참외 농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다들 고령 박씨 집안에 시집온 며느리라고 했다. 거실에는 가로·세로 2m 정도 되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 걸개가 한쪽 벽면을 덮고 있었다.



기자가 사드 배치에 대해 묻자 할머니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올해 여든 가까이 되었다는 이 아무개 할머니는 “여기 다 참외로 먹고사는데 사드를 놓으면 어떻게 하나. 어제 처음으로 데모하러 나가봤는데 이제 계속 나갈 거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대화 도중 마을회관에 강 아무개 할머니가 도착했다. 강 할머니는 “박근혜가 (사드 배치를) 허락했단다”라고 씩씩대며 벽면에 붙어 있던 박 대통령 사진을 뜯어내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강 할머니가 오면서 택시 기사를 만났는데 박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승낙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할머니들은 박 대통령 사진을 돌돌 말아 현관 한구석으로 치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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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강 할머니는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사업을 어렵게 하셨고, 육영수 여사는 안타깝게 가시지 않았나. 그 후손이라서 (대통령을) 시켜준 건데 이게 뭐냐. 군수고, 이완영(지역구 국회의원)이고 다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라고 울분을 토해냈다. 성원1리 주민들이 박 대통령 사진을 뗀 사건은 이날 오후부터 언론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의 선영이 있는 지역에서 대통령의 ‘존영’이 수난을 겪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p>

<p>경북 성주는 지금 전쟁 중이다. 급작스러운 ‘사드 폭격’을 맞은 이후 성주 민심은 하루가 다르게 폭발하고 있다. 수십 년간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던 이곳에서 정부·여당을 규탄하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7월12일 집회가 열린 첫날 이후 구호 강도가 세지고 있다. 단지 성주군에 사드를 배치하지 말라는 주장이 아니다.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p>

<p><strong>“사드 성주 배치 반대에서 ‘성주’를 빼라”</strong></p>

<p>7월15일 군민 집회에서 사회를 맡은 범군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석현철 사무국장이 ‘사드 성주 배치 반대’ 구호를 선창하자 주민 일부가 격렬하게 반발했다. 성주에서 두 자녀를 키우는 주부 배정하씨는 사회자에게 “사드 성주 배치 반대에서 성주를 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사드가) 대한민국에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겁니다. 왜 모여 있는 우리들을 모욕합니까. 그렇게 말하면 성주 군민은 또다시 욕만 먹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서 “옳소”라는 소리와 함께 환호가 터져 나왔다. 몇몇은 사회자와 군수가 있는 군청 현관으로 뛰어들려다 저지당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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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사드의 성주 배치에는 반대하면서도 사드 도입 필요성은 인정하는 김항곤 성주군수와 지역 주민 사이에도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사드가 성주 지역에 배치되는 것만 반대해서는 지역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이 주민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군청 공무원들 역시 주민 여론이 사드 자체에 대한 반대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자, 향후 대응 방안을 놓고 고심하는 분위기다.</p>

<p>시위 양상도 하루가 다르게 ‘반정부’ 성격을 띠어가고 있다. 7월14일 군청 앞에서 진행된 사드 배치 반대 삭발식에서 첫 번째로 머리를 깍은 손호택 성원2리 이장은 “어제 국방부에 갔더니 대책은 없고 주민을 설득해달라는 말만 하더라. 한국에는 사드가 필요 없다. 이것은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섯 번째로 머리를 깎은 성산리 주민 이기영씨는 “사드 기지가 들어설 성산포대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에 산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삭발 전 이씨는 마이크를 잡고 군청 현관에서 단식농성 중인 김항곤 군수에게 “이 사태가 누구 책임이냐”라고 물었다. 김 군수가 “국방부 장관”이라고 답하자 이씨는 “박근혜는 물러가라”고 소리를 쳤다. 난데없는 호통에 주민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p>

<p>손호택 성원2리 이장은 나중에 기자와 따로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1번만 찍어온 사람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가 아니라 문재인이 (대통령) 됐으면 사드는 안 들어왔을 건데… 그때 얼마 차이 안 나게 졌잖아. 그런데 박근혜를 찍어가지고”라며 한숨을 쉬었다.</p>

<p>실제로 사드가 성주의 정치 민심을 확 바꿔놓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삼곤 성주농민회 부회장은 “하루가 다르게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 성향이 짙은 우리 지역에서 농민회는 왕따 비슷한 신세였다. 그런데 사드 배치가 확정된 이후 뉴스 등을 통해 사드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사람들 생각이 바뀌고 있다. 이곳은 새누리당 공천받으면 무조건 당선되는 지역이었지만 다음에는 다를 거다”라고 말했다.</p>

<p>성주가 사드 배치 지역으로 확정됐다는 보도가 나온 건 7월12일이었다. 김삼곤 성주농민회 부회장은 “정말 황당했다. 바로 전날까지도 전혀 생각을 못했다. 너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김항곤 성주군수를 비롯해 이재복 비대위 위원장 등 도·군 관계자 11명이 이날 오후 6시10분부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그날 밤부터 성주 읍내 곳곳에 ‘사드 배치 반대’ 플래카드가 나붙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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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튿날인 7월13일 오전 찌는 듯한 더위 속에 열린 ‘사드 배치 반대 범군민 궐기대회’에는 성주군민 5000여 명이 참가했다. 궐기대회는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했다. ‘사드 결사반대’라고 쓰인 빨간 띠를 두른 사람들이 가슴 위에 오른손을 얹었다.</p>

<p>집회에 참석한 노연우씨는 19개월 된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왔다. 노씨는 군청과 비대위의 입장과 달리 사드 자체를 반대한다고 했다. “수도권 방어도 안 되고, 결국 미국이나 일본을 위한 건데 왜 찬성합니까.” 노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혹시나 사드 배치가 취소됐다는 기사가 나올까 해서 밤새 인터넷을 봤어요. 댓글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어떤 사람들은 사드 배치로 선물을 받을 거라지만, 나는 정부 정책 찬성한 적도 없고요. 무고한 아이만 고통받을 걸 생각하면….”</p>

<p>궐기대회는 사드 배치의 원인을 제공한 북한 무수단 미사일 모형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로 끝났다. 김 군수와 비대위 그리고 성주 주민들은 궐기대회에서 쓴 ‘사드 성주 배치 결사반대’ 혈서를 들고 서울 용산 국방부로 향했다.</p>

<p>이날 오후 3시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터미널 앞을 지나다 뉴스를 본 박 아무개씨는 “성주는 이제 망했다”라고 중얼거렸다. 박씨는 “성주 검색해보면 사드 참외, 전자파 참외 이런 거 나와요. 이사 가려고 집을 내놓아도 팔리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임신 2개월인데, 레이더에서 나온다는 전자파가 너무 걱정된다. 사드 기지가 성주읍에서 1.5㎞밖에 안 된다. 성산포대에서 밤에 불을 켜면 성주읍에서 다 보인다”라고 탄식했다.</p>

<p>7월은 막바지 참외 출하 시기다. 참외밭에서 만난 김화성씨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성주가 고향인 김씨는 3년 전 귀농했다. 대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며 모은 돈과 농협 대출을 받아 참외 비닐하우스 12동을 지었다. 비닐하우스 한 동 설치에는 최소한 1000만원이 든다. 김씨는 “올해만 해도 7000만원 대출을 받았다. 5~6년 해야 그때부터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레이더 전자파가 안전하다고 해도 사람들 인식이 한번 나빠지면 성주 참외 안 산다. 대구에 있는 아내마저 이제 참외 못 먹겠다고 하더라. 참외를 수확해야 하는데 의욕이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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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미국 육군 교본엔 ‘반경 3.6㎞까지 접근 금지’</strong></p>

<p>사드 기지가 들어설 성산포대는 성산(해발 389m)에 있다. 성주 주민들이 앞산이라고 부를 만큼 읍내에서 가깝다. 반경 3.6㎞ 이내에 성주군청, 성주버스터미널, 성주여중·고교, 성주초등학교, 성주중앙초등학교, 성주체육관 등 주요 시설이 대부분 들어간다. 2012년 작성된 미국 육군 교본은 사드 레이더 반경 3.6㎞까지 ‘허가받지 않은 사람’의 접근을 금지하고 있다. 전자파의 위해성 때문이다. 성주군청에서 출발해 굽은 산길을 10여 분 달리자 현재 호크 미사일 기지로 쓰이는 성산포대가 나왔다. 취재진을 발견한 군은 경고방송을 시작했다 “군사보호구역으로 촬영은 불허돼 있습니다. 즉각 돌아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곧바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파도처럼 넘실대는 참외 비닐하우스 단지 한가운데 섬처럼 박혀 있는 성주읍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드 레이더 기지 예정지와 성주읍내는 짐작보다 훨씬 가까웠다. 7월14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전자파 유해성에 대해 직접 해명했다. 박 대통령은 “레이더는 마을보다 400m 높은 곳에 위치하고 전자파는 5° 각도 위로 발사가 되기 때문에 지상 약 700m 위로 전자파가 지나가게 된다. 그 아래 지역은 우려할 것이 없는 안전지역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 가운데 이 말을 믿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p>

<p>다음 날인 7월15일 오전 11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성주군청을 찾았다. 황 총리가 마이크를 잡자 경북 성주군청 앞에 모인 주민 3000여 명이 한목소리로 “결사반대”를 외쳤다. “주민 여러분들께서 아무런 걱정 없이 생업에 종사하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는 황 총리의 말에 고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주민들 사이에서 물병과 날달걀이 날아오기 시작했다.</p>

<p>황교안 총리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급하게 버스에 올라탔지만 성난 주민들에게 가로막혔다. 주차장으로 이동한 주민 300여 명은 “사드 배치 철회하고 가라”며 버스 앞에 주저앉았다. 나중에는 트랙터까지 동원해 버스를 막았다. 황 총리 일행은 결국 이날 저녁 6시에야 군청 주차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이 주민들에 의해 6시간 넘게 포위됐다가 ‘탈출’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p>

<p>이날 밤 8시 성주군청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 분위기는 또 달랐다. 30~40대 학부모 위주로 모였던 지난 촛불집회와 달리 노인들도 상당수 자리를 지켰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이날 집회 현장에선 황당한 소식 하나가 알려졌다. 2시간 전 군청 주차장을 빠져나간 황교안 총리의 차량이 어린이들까지 탄 한 성주 주민의 차량을 들이받고 도망쳤다는 것이다. 이 주민은 황 총리의 차가 사드 기지 예정지인 성산포대로 향한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차로 포대 진입로를 막고 있었다. 국무총리의 성주 방문이 성주군민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되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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