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이념은 정치적 평등이다.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된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부장제에 기초한 성적 불평등과 여성 억압이 계속되고 있다. 남녀 불평등은 민주주의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다양한 사회문제에서 성평등 문제가 어떻게 배제되어 왔는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더 좋은 민주사회’로 만드는 데 왜 ‘젠더 관점’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노무현재단·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한국여성노동자회·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가 공동 주최한 ‘나의 첫 젠더 민주주의 수업-레드스타킹을 신어라’의 여섯 번째 강의를 정리해 중계한다. 

 

〈강의 중계 순서〉
① 젠더 관점으로 본 한국 사회-정희진(평화학 연구자)
② EU의 성평등 정책-아나 베아트리츠 마틴스(주한 EU대표부 수석정무관)

③ 워킹우먼 실종 사건-임윤옥(한국여성노동자회 상임대표)
④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나요?-변상욱(CBS 대기자)
⑤ 그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닙니다-손희정(문화평론가)
⑥ 우리도 여자黨?-서복경(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정치학을 공부한 지 20년이 넘었다.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를 공부한 게 아니고, 정치를 공부하다 보니 여성 문제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세 가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선 ‘여성은 정치를 어떻게 보고 있나’에 대해서다. 두 번째는 ‘정치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이고, 세 번째는 ‘좀 더 괜찮은 정치를 위해서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다.

여성은 정말 남성보다 정치에 관심이 덜할까? 여성은 이념과 관계없이 여성 대통령을 좋아한다든가, 여성은 나랏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든가 이런 편견은 얼마나 사실에 부합할까. 역대 대통령 선거의 성별 투표율을 살펴보면 여성 투표율이 특별히 낮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어도 투표 참여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여성이 특별히 정치에 덜 관심을 가진다고 볼 근거가 없다.

ⓒ시사IN 윤무영6월21일 서울 서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서복경 교수가 '우리도 여자당?'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선거 직후 유권자 조사를 해보면 어떤 선거에서는 남녀 편차가 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여성이 놓인 ‘어떤 조건’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일단 경제활동 참여율이 떨어진다. 또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노동시간이 길다. 가사노동의 볼륨이 남성과는 다르지 않나. 이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시간은 없고,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적기 때문에 정치 정보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이 때문에 아주 박빙의 선거, 이슈가 있는 선거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선거에서는 관심도가 떨어진다. 이건 젠더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정치 정보의 환경 차이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보수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일까? 현대정치연구소에서 매년 유권자 이념 성향 조사를 한다. 가장 진보적인 점수를 0으로 놓고, 보수를 10으로 했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진보적이라고 답하고 있다. 정책 태도에 대해서도 물었다. 예를 들면 ‘안보와 사회질서를 위해 때로 인권이 무시될 수 있다’라는 질문에 ‘아니다’라는 대답이 여성에서 더 높다. ‘대중교통 노조 파업은 엄단해야 한다’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여성의 반대가 더 높다. 이런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뭘까. 여성들이 남성보다 인권감수성이 좀 더 높고, 사회적 약자들의 결사권에 대한 지지와 공감이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여성은 왜 상대적으로 인권감수성과 권리감수성이 높을까. 차별을 당한 경험이 남성에 비해 많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관계, 국가보안법 등 다른 질문에서는 남녀의 입장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데, 유독 권리감수성의 문제에서만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진보적으로 나타난다.

‘여성이 남성보다 정치에 관심이 덜하다’는 편견 때문에 여성들은 정치 이슈를 이야기할 때 일단 기죽고 들어간다. 여성은 지금보다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열 받아’ 하는 것도 기죽는 일의 하나다. 내가 여자라서가 정치에 관심 없는 게 아니라, “어떤 조건과 상황에 놓이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애든, 어른이든 다 그렇게 된다”라고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말해주면 좋겠다.

 

출산율은 여성 책임이 아닌 정책의 함수

 

정치에서 여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살펴보자.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2014년 11월에 이런 말을 했다. “애 많이 낳는 순서대로 여성 비례 공천 줘야 한다.” 열 받는 얘기고, 참 후진 얘기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저분은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 집권당의 대표를 했던 분이다. 저런 발언을 공식적으로 했을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가진 생각은 반드시 정책으로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게 정말 심각한 문제다. 이 사람이 보기에 애 낳는 것은 누구 책임인가? 가임 능력이 있는 여성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연합뉴스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위) 같은 정치인의 발언은 반드시 정책적 결과를 가져온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1970년에 4.53명에서 2005년에 1.08명까지 떨어졌다. 저출산은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문제다. 우리가 정치공동체를 유지하고 세금을 내는 이유가 뭔가. 잘 먹고 잘살려고. 지금도 잘 먹고 잘살고 있지 않은데(웃음). 앞으로 더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스웨덴도 저출산 문제를 겪었다. 정부의 정책 개입에 따라 출산율이 올라가거나 떨어지거나 한다. 어떤 정책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잘못된 정책을 쓰면 출산율은 떨어진다. 결국 출산율은 정책의 함수다. 여성이 뒤집어쓸 문제가 아니다. 한국도 2005년 1.08에서 지금 1.23까지 올라갔다. 별것 아닌 거 같지만 이만큼이나마 만들기 위해서 정부가 엄청나게 노력을 했다. 근 10년에 걸쳐 정책을 만들고 돈을 써서 그나마 1.23이 됐다. 출산율은 정부가 재정을 얼마나 투입하고 다양한 정책을 쓰느냐에 달린 문제지 가임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김무성 전 대표가 틀린 것도 이 부분이다. 이런 정치인이 정책을 만들면 출산율은 다시 떨어질 수 있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도 참 걱정이 많은 분이다. 2015년 1월에 이런 말을 했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배경에 무상보육이 있다. 엄마 품이 필요한 0~2세 아이들조차 3분의 2가 보육시설에 가 있다.” 그런데 같은 당의 이주영 의원이 당 정책위 의장일 때인 2011년 발언을 보자. 이분은 0~2세 보육료와 양육수당 지원을 2014년까지 모든 가정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0~5세 아이들 보육은 국가가 반드시 책임진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박재완 기재부 장관도 같은 기조로 이야기한다. 이분들도 다 새누리당이다. 물론 같은 당 안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찾아보면 2011~2012년에는 심재철 의원 같은 ‘망발’을 하는 분들이 없었다. 과연 2011년과 2015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심 의원의 정서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다.

전업주부 어린이집 이용 제한이 이런 기조 아래서 나오는 정책이다. 이걸 ‘맞춤형 보육’이라고 광고한다. 부모와 애착이 중요한 영아기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갖게 하자는 취지라서 전업주부에게 보육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건데, 아이를 맡길까 말까의 결정 주체는 누구인가. 엄마가 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때 심재철 의원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할 것이다(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선택을 할 때는 그런 이유가 있지 않겠나. 나라가 애착관계를 형성하라고 배려해주지 않아도 내가 필요를 느끼거나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하겠지. 그 선택은 정부가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하는 발언은 ‘후지다’ ‘어처구니없다’로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치인의 생각이 반드시 정책적 결과를 내기 때문이다. 방치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정책 결정자가 여성의 노동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여성을 집에서 내보내는 정책을 쓴다. 온갖 미사여구가 판을 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실업률이 올라가고, 세계경기가 엉망이다. 이럴 때는 여성에게 다시 집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가장 좋은 알리바이가 뭘까? 모성애다. 노동시장에 대한 정부의 접근 자체를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쓰는 것이다. 경험적 증거가 많다. 경기가 활황이면 싼값의 저임금 노동을 할 여성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열심히 어린이집 짓고 보육교사를 채용한다. 그러다 경기침체가 오면 모성애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다. 이런데도 정치인의 발언을 그냥 욕 한번 하고 넘길 수 있나.

새누리당만 그런 것도 아니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2016년 3월에 한 말이다. “지식을 전제로 한 직업의 경우 오히려 남성이 차별받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여성이 너무 조급하다.” 지식을 전제로 한 직업이 뭔가? 전문직이다. 그중에서도 이분이 이야기하는 건 공무원인 것 같다. 9급 공무원 시험에서 여성이 50%를 넘은 게 3년째다. 임용고시를 비롯한 일부 공무원 시험에서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는 게 사실은 가슴 아픈 이야기다. 여성이라 차별받지 않고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안정된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중앙과 지방의 공무원 수를 합치면 대략 100만명이다. 한국에서 경제활동 가능 인구는 대략 3500만명 정도 된다. 그렇게 따지면 100만 개의 자리는 아주 제한된 직종이다. 그런데 여기서 여성의 비율이 좀 더 높다고 해서 공당의 대표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와도 되나.

 

ⓒ시사IN 윤무영

 

아마 여성 노동환경이 얼마나 심각한지 현실을 모르고 한 말일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면 유권자의 현실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심각한 문제이긴 하다. 한국 정치인 대부분은 정말 ‘모르고’ 저런 말을 한다. 정몽준씨의 버스비 발언도 마찬가지다. 정몽준씨가 버스비가 얼마인지 알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분은 평생 대중교통을 타지 않아도 되는 분이다. 그런 사람이 국회에 들어가서 대중교통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 활동을 할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가르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분들을 가르쳐서 관련 정책을 만들라고 하는 게 빠를까, 아니면 평소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만드는 게 빠를까? 정몽준씨를 욕할 게 아니라, 버스 타고 전철 타는 사람이 국회에 더 많이 들어가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젠더 문제도 마찬가지다. 잘못 생각하면 잘못된 정책이 나온다. 젠더 감수성을 탑재한 사람들이 국회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는 게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의 2008년 발언을 보자. “1등 신붓감은 예쁜 여자 선생님. 2등은 못생긴 여자 선생님….” 내 아이의 배우자가 안정적 직장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분의 발언이 비현실적이어서 비판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분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 알 고 있다(웃음). 대책 세우라고 국민 세금 받고 일하는 사람이 이걸 나름 유머라고 말한 것이 문제다. 1등, 2등 카테고리에 못 들어가는 사람도 행복하자고 당신에게 월급 주는 거니까 당신의 대책과 정책이 뭐냐고 정치인에게 따져 물어야 한다.

김을동 전 의원이 지난 총선 기간에 “여성이 너무 똑똑한 척을 하면 밉상을 산다”라고 말했다. 열 받으면 안 된다. 이런 얘긴 사실 불평등 구조 안에서 여성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그분 방식의 아주 친절한 가이드다(웃음). 여러분도 무수히 들었을 이야기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가만히 있으면 2등이라도 한다 등등. 여자니까 술 취하면 안 되고, 새벽에 집에 들어가면 안 되고, 이런 ‘가이드라인’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약자들에게 제일 큰 자산은 ‘머릿수’

 

그래도 지난 30년 동안 한국 정치가 여성을 보는 법이 시나브로 많이 변했다. 예전 같았으면 김 전 의원의 발언 같은 건 기삿거리도 안 됐다. 모두가 다 그랬으니까. 중요한 건 이거다. 우리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후진데, 1등 뽑아서 보낸 사람이어도 후질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 자체가 특히 젠더 문제에 대해서는 차별과 배제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이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말해야 한다. 열 받아서 고개 돌리고 시니컬해서는 이 구조를 변화시킬 수 없다.

제도는 굉장히 중요하다. 역대 국회의원 선거의 여성 후보자 비율을 보자. 13대 2.2%에서 20대에는 15.8%로 뛰었다. 그 중간에 16대, 17대를 보자. 이때 무슨 일이 있었나? 법이 바뀌었다. 비례대표 명부에 여성 50% 등재 의무 옵션이 생겼다. 지퍼 방식으로 여성 50%를 무조건 채워야 명부를 낼 수 있게 한 강제조항 때문이다. 지금 여성계에서 많이 싸우는 주제가 이와 관련 있다. 현행법에서는 지역구 후보 공천에서 여성을 30% 채우도록 ‘노력한다’고 돼 있다. 이걸 ‘채워야 한다’로 바꾸자는 제도 개선 운동을 하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가 한 또 다른 엄청난 발언이 있다. “나도 여성 공천 주고 싶은데 줄 사람이 없다, 괜찮은 사람 있으면 데리고 와라.” 어떻게 생각하나? 실제 정당에서 후보 공천할 때 여성 후보 할당인원을 못 채운다. 그래서 어부지리로 공천을 받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그런데 공천할 만한 여성이 없다는 말을 따져보자. 우리가 낸 세금으로 정당에 정당보조금을 준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선거 잘 치르라고 선거보조금도 준다. 여성 후보 잘 추천하라고 여성 후보 추천보조금도 준다. 그 보조금 받아먹으면서 여성 후보는 왜 안 키웠나? 그 돈은 다 어디로 가고 선거 때만 되면 사람이 없다고 하는지, 그 돈으로 뭘 했는지 정당들에 물어야 한다.

그리고 제도만큼 중요한 게 있다. 일상적 공감과 연대다. 이게 뒷받침 안 되면 선거 때 정당에 ‘뭐 해라’ 요구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 구의역 사건을 보자. 2015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산업재해로 몇 사람이 죽었는지 알고 있나. 매일 2.6명이다. 구의역 희생자는 365일 매일 죽어가는 2.6명 중 한 명이었다. 시민들이 들고일어나지 않았으면 그랬다는 거다. 강남역 사건도 마찬가지다. 매일 여성들이 폭력을 당하고 죽어간다. 그중 한 명이 되지 않게 만들었던 것도 사람들의 힘이다.

ⓒ시사IN 조남진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 중 숨진 김모씨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일상적인 공감이나 연대의 행동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평범한 개인들은 사실 굉장히 약한 존재다. 유명한 사람들은 억울한 일 당하면 기자회견을 하거나 변호사를 살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약자들에게 제일 큰 자산은 ‘머릿수’다. 우리가 1억은 없지만 1000원은 있다. 1인 시위는 부담스럽지만 1000명이 모이는 시위에 한 명으로 참여할 수는 있다. 그럼 뭐라도 할 수 있다. 동료 시민의 문제에 대해 일상적으로 같이 공감하고 느껴주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1000원이라도 입금하고, 집회 한 번 나가고, 탄원서 한 번 서명해주자는 얘기다. 아무리 해도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약자의 권리를 확보해온 건 같은 약자들의 시나브로 연대였다. 정책의 이해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연대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정책을 만들어도 유지되지 않는다.

끝으로 한 가지 짚고 갈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는 출산도, 보육도, 교육도, 돌봄노동도, 기회의 평등, 소득 평등, 아동인권, 청소년인권 등을 몽땅 여성 문제로 친다. 한국 정책의 기본 프레임이 그렇다. 관련 문제를 다 여성 정책 언저리에 붙여놓는다. 출산, 보육, 교육 등은 사실 모든 구성원이 함께 고민해야 할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문제지 여성의 문제가 아니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다 여성 정책이라고 하는데, 이게 왜 여성만의 문제인가. 아동인권이나 청소년 범죄 사건도 여성 정책으로 다루는데 이게 왜 여성 정책인가. 여성은 좀 더 많은 차별의 구조 속에 있기 때문에 더 많이 공감하고, 절실하게 느낄 수 있지만 이걸 모두 합쳐서 ‘여성 정치’라고 해서는 안 된다. 현재 프레임에서는 모든 문제를 여성의 어깨 위에 얹어놓고 있다. 이런 프레임이 전환돼야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정책의 범주화를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리·장일호 기자

기자명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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