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하는 내내 요리에서는 손을 뗐다. 1인 가구로 사는 이에게 요리는 사치였다. 2년마다 이사하면서 유통기한 2∼3년을 넘긴 조미료가 속속 발견됐다. 냉장고에서 시들해진 채소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로 직행했다. 주말 동안 한 끼를 만들어 먹기 위해 산 식재료는 한 끼를 사 먹을 때보다 비싼 값을 치르고도 남기기 일쑤였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식당 음식은 강한 조미료 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해영씨(30)는 건강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잘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은 ‘좋은 삶’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2014년 백수가 되었다. 밥을 지어 먹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자 오히려 즐거웠다. 자기가 밥 짓는 일에 이렇게 마음을 빼앗길 줄 미처 몰랐다. “온종일 청소와 빨래를 하고 밥 짓는 데 몰두했다. 집안을 챙기는 여유야말로 나를 돌보는 활동이라는 걸 깨달았다.” 요리하는 냄새가 집안에 퍼지면서 친구들이 찾아왔다. 밥상을 앞에 둔 이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집 밥을 너무 오랜만에 먹는다.’ 그들의 말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을 떠올렸다. ‘우리는 왜 집 밥을 못 먹고 살게 됐을까?’

ⓒ시사IN 이명익

마침 한국여성재단에서 지원하는 지역 풀뿌리 여성활동가 사업에 신청서를 냈다. 또래의 이웃에게 밥을 차려주고 고민을 나누는 ‘우야식당’을 마련했다. 식당 건물을 따로 얻은 게 아니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자기 집에 초대하는 식이다. ‘손님’이 음식을 주문하면, 약속한 시간에 해영씨가 직접 밥을 차린다. 밥을 먹은 사람은 그만큼의 음식 재료비를 낸다. 트위터(@wooyacook)로 친구뿐만 아니라 안면이 없는 이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상대방은 언제나 고마움을 표시한다. 마음이 오가면서 함께 오물거리다 보니 관계가 형성된다.”

지난 3월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과 협업해 우야식당을 확장했다. 1인 가구를 위한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던 시장 상인들을 만나면서, 망원시장에도 우야식당을 연 것이다. 우야식당은 시장 내 복합 문화공간 ‘스페이스 2012’에서 15분 만에 만드는 쉽고 간단한 요리 교실, 냉장고 속 재료로 만드는 냉장고를 부탁해, 쿡방TV 등 다양한 행사를 지속적으로 연다. 모든 재료는 망원시장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것을 쓴다.

그녀는 밥이 삶을 관통한다고 생각한다. ‘집 밥’을 먹으며 만난 친구들과 청년 식생활 연구모임 ‘끼다’를 꾸렸다. 밥만 잘 먹는 삶이 아니라 밥을 잘 먹기 위한 주거 환경, 하루 한 끼 ‘집 밥’을 먹을 수 있는 여유 있는 노동환경 등을 궁리하고 있다.

해영씨는 오는 8월 열리는 서울청년의회에서 ‘4대 보험이 없는 청년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안할 계획이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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