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02년 12월20일, 소설가 겸 기자 김훈은 〈한겨레〉에 기사 한 편을 썼다. “고뇌에 찬 50대, ‘늙음이 낡음인가’ 자괴감”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직후 쓴 것이었다. “조직되지 않고 동원되지 않은 젊은이들의 힘이 젊은 정치권력의 시대를 열었다…(하략).” 김훈이 취재한 50대들은 ‘두려움’을 말했고 20·30대 취재원들은 ‘희망’ ‘청춘의 승리’를 언급했다. 대선 결과에 대한 김훈 본인의 얼얼함이 느껴지는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젊은이들의 식탁은 ‘노무현’으로 시끌벅적했고, 50대들은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다.”

지난해 김훈이 낸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의 표제작 ‘라면을 끓이며’ 역시 식탁 앞 청춘들을 바라보며 쓴 글이다. 다만 그 시선의 정서는 두려움이나 질시가 아닌 ‘연민’이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희망과 변혁을 논하며 식탁 앞에 둘러앉지 않는다. 혼자, 24시간 프랜차이즈 분식집에서, 3500원짜리 짬뽕 라면 국물로 주린 배를 채울 뿐이다. ‘목구멍에 불을 지르는 듯이 날카롭고 사납게 달려드는’ 맛의 라면 국물을 마셔야만 하는 아르바이트생, 배달부, 술 취한 젊은이들을 김훈은 매우 가여워한다. 그래서 전한다는 위로가 바로 ‘덜 쓸쓸하고 견딜 만한’ 라면 레시피이다. “센 불에, 분말 수프를 3분의 2만 넣고, 미리 깨서 섞어놓은 달걀을 넣어라.” 늙은 작가의 가르침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유의 조언보다는 실용적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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