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문화가 바뀌어 다른 이의 집에 가볼 기회가 줄었지만, 그래도 방문하게 되면 허락을 구하고 서재를 둘러보곤 한다. 옷장처럼 문이 닫히지 않았으니 그저 고개만 돌려도 서가를 훑어볼 수 있겠으나, 왠지 침실에 들어서는 일보다 조심스러운 기분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최근 들어 집, 그러니까 서재에 그 누구도 초대하지 못했다. 집에 들어서면 책밖에 없는데, 차마 그 책을 보여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정돈되지 않은, 즉 분야나 저자나 출판사 따위의 구분을 잊은 지 오래인 책 무더기일 뿐이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겠으나, 나의 사유를 발견하거나 나조차도 알지 못한 나를 다른 이가 알게 될까 두렵긴 하다.

한낱 ‘책 덕후’가 이럴진대, 독서가나 장서가로 이름을 남기거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관심을 받게 될 서재를 염려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히틀러처럼 이미 자신의 실패를 확인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상황이었다면. 아,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책 따위가 뭐 그리 중했을까.

ⓒAP Photo히틀러(오른쪽)는 책을 읽고 꼼꼼히 메모해서 활용했다.

어쨌든 남은 이들은 각자의 이유로 히틀러를 이해하고 분석하려 했고, 그가 남긴 책은 의미 있는 자료가 되었다. 매일 한두 권 책을 읽고서야 잠자리에 들었으며, 전장에서도 독서를 멈추지 않아 옆방에서 자던 육군 원수가 히틀러의 책장 넘기는 소리를 자장가로 삼아야 할 정도로 독서에 매진한 히틀러. 그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장서는 약 1만6300권이다. 〈히틀러의 비밀 서재〉(티머시 W. 라이백 지음, 글항아리)에 서술된 1942년 기록을 보면, 이 가운데 군사 분야가 7000권으로 가장 많고, 건축·연극·그림 등 예술 분야가 1500권으로 뒤를 이었다. 점성술과 심령론, 영양과 식사에 관한 책이 각 1000권에 이르고, 교회를 다룬 서적이 400권, 마지막으로 소설이 1000권 정도다. 당시 히틀러가 화재보험에 가입하며 ‘책 포함’이란 문구를 조항에 추가했다니, 그가 얼마나 책을 아꼈는지 알 법하다.

서재뿐 아니라 낱낱의 책에서도 히틀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유럽의 유대인을 체계적으로 제거하자고 주장한 〈독일인의 편지〉에는 무려 100쪽이 넘는 곳곳에 연필 자국이 남았고, “물로 전염되는 이 역병을 우리 강과 호수에서 박멸해야 한다”라는 문장에는 더욱 진하게 자국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그가 “쓰레기”라고 비판한 〈서양의 부활〉을 깔아뭉개려, 앞뒤가 안 맞는 구절을 찾아 한쪽 한쪽 짚어가며 다시 읽기도 하고, 그렇게 찾아낸 구절을 모아 목록을 만들어 신랄하게 반박하는 근거로 삼기도 했다. 또한 그는 당대의 베스트셀러 〈나의 투쟁〉 저자이기도 했기에, 그가 남긴 장서에는 저자 증정본이라 할 것 같은 책이 여러 권 있었다.

히틀러의 독서는 ‘모자이크’의 ‘돌’ 채우기

“히틀러는 독서를, 사전에 이미 형성된 관념의 ‘모자이크’를 채우기 위해 ‘돌’을 모으는 과정에 비유했다. 그는 차례나 색인을 살펴본 다음에 해당 장을 펼쳐서 ‘쓸 만한’ ‘정보’를 모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썼다. 물론 정보를 잘 기억하기 위해 아침 식사 때마다 전날 밤 읽은 책의 내용을 비서에게 장황하게 늘어놓았는데, 너무 상세하게 회상해서 지루할 정도였다고 한다. 〈히틀러의 비밀 서재〉는 부제에서 ‘한 독서광의 기이한 자기계발’이라 했지만, 나는 어쩐지 책에 대한 열정과 집착이 수긍된다. 물론 그의 책에는 확실한 목적이 있었고, 내 책은 아직 마땅한 쓸모를 찾지 못했을 뿐.

발터 베냐민은 “우리는 책을 보존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수집하지만 실제로는 책이 수집가를 보존한다”라고 말했다. “책이 수집가를 보존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책장들은 그의 인생을 기록한다”라는 것을 히틀러가 증명한 셈이다. 아, 서둘러 책을 정리해야겠다. 집을 가득 메운 책들의 쓸모가 내 인생의 기록이라면,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창피함은 잊은 지 오래지만.

기자명 박태근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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