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댓글, 처음엔 무시하려 했다
  • 이승한 (칼럼니스트)
  • 호수 461
  • 승인 2016.07.22 16: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슨 글을 써도 ‘너는 누구 편이냐’라고 묻는 댓글들과 몇 차례 마주치고 나면 댓글을 안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면서 정작 고립되었던 건 내가 아니었을까?

글 쓰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조언 중 가장 흔한 건 아마 “댓글에 일일이 신경 쓰지 마라”일 것이다. 물론 독자와 소통하고 글에 대한 반응을 체크해 다음 글쓰기에 반영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무슨 글을 써도 ‘너는 누구 편이냐’라고 묻는 댓글들과 몇 차례 마주치고 나면 자연스레 댓글을 안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성혐오 이슈에 대해 글을 쓰면 “여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여자 편을 드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망명자와 노동 이민자를 포용하는 데 인색한 한국 사회에 대해 글을 쓰면 “왜 무슬림 편을 드느냐”라는 얘기를 듣고, 뿌리 깊은 호남 멸시에 대해 글을 쓰면 “너 난닝구(호남 유권자를 멸시하여 일컫는 말)였냐”라는 넘겨짚음을 당한다. ‘성 소수자도 아니면서, 장애인도 아니면서, 현대중공업 노동자도 아니면서 왜 저들의 편을 드느냐’는 식의 피아 식별용 댓글을 볼 때마다, 댓글 난에 두었던 시선이 한 뼘씩 멀어졌다.

그러던 중에 최근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방송에 반영된 여성 연예인에 대한 관음증적 시선을 지적하는 글을 어느 매체에 기고했던 날, 인사도 생략하고 저돌적으로 본론부터 물어오는 메일이 온 것이다. “여자 연예인이 이런 일을 겪으면 기사가 나오는데, 왜 남자 연예인이 이런 일을 겪으면 기삿거리가 안 되는 거죠? 양성 구별인가요, 양성 차별인가요?” 여느 때처럼 그냥 한숨이나 한번 내쉬고 넘어갈까 했는데, 문득 독자가 추신으로 덧붙인 말이 눈에 밟혔다. “기사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박영희 그림〈/font〉〈/div〉

내용에 반박하는 건 아니고, 관련 의견이 궁금해서 직접 여쭈어봅니다. 불쾌함을 끼쳐드렸다면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스마트폰을 붙잡고 길고 긴 답장을 보냈다. 방송계는 여전히 남자 연예인보다는 여자 연예인에게 더 가혹한 곳이며, 남자 연예인에 대한 글보다 여자 연예인에 대한 글의 빈도가 높아 보이는 건 아마 실제로 방송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빈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이 충분히 되었기를, 이런 내 견해에 동의는 못 하시더라도 이해는 해주실 수 있길 바란다고.

답장을 보내면서도 나는 그것으로 끝일 줄 알았다. 메일 한 통으로 뭔가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것이라는 말랑말랑한 기대 따위는 애당초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의 체념이 무색하게, 독자는 내 메일을 받고 잠시 뒤 답장을 보내왔다. “평소 이런 유의 글이나 SNS 반응을 볼 때면 같은 경우의 일이 다른 성(남성)에게 일어날 때에도 반응이 이럴까 궁금하던 참에 기사를 보고 여쭙고 싶었다. 좋은 답변 감사하다”라고 적은 짧은 답장이었다. 문득 내 자신이 창피해졌다. 잠시나마 이 사람 또한 불쾌한 댓글을 다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일 것이라 넘겨짚은 내 선입견이 틀렸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까. 무례한 건 그가 아니라 나였다.

TK니까, 어르신이니까, 독실한 신자니까, 비장애인이니까?

우리는 상처를 피하기 위해 종종 상대를 스테레오타입(고정관념)화해서 생각하곤 한다. TK니까, 어르신이니까, 독실한 신자니까, 어려움 같은 건 모르고 자란 사람이니까, 남자니까, 헤테로섹슈얼(이성애자)이니까, 비장애인이니까, 인터넷 공간에서 마주친 독자니까. 상대의 인구학적 특성에 따라 미리 기대치를 조절함으로써, 상대와 나 사이의 이견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려 하는 것이다. 원활한 대화나 설득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이러한 체념은 종종 배제의 논리로 발전한다. 애초에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이니 포섭을 포기하고 가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는 무척 경제적이다. 어느 순간 댓글을 읽는 걸 포기한 내 마음이 딱 그랬다. 하지만 설득과 대화를 포기하며 정작 고립되었던 건 내가 아니었을까? 다시 조심스레 댓글을 읽기 시작해야겠다. 우리에겐, 아니 최소한 나에겐 지금보다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