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화폐로 거래할 때 일어날 해킹을 막기 위한 기술인 블록체인 열풍이 거세다. 수년 전만 해도 일부 개발자에게나 알려졌던 기술이 이제 대형 은행과 정부 조직의 핵심 기술로 채택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한 서비스는 위·변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금전 거래, 소유권 증명, 문서 보존, 정부 행정 등 신뢰와 보안이 필요한 모든 영역에 응용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의 대표 격인 비트코인은 브렉시트처럼 금융시장을 불안정하게 할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안전자산으로 주목받는다.  

그런데 단지 기술뿐일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블록체인은 단순한 기술의 집합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트코인의 구조와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암호화 프로그래밍에 능한 경제학자이거나 혹은 경제학과 심리학을 꿰뚫고 있는 기술자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비트코인에는 해킹이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기술적 장치뿐 아니라, 어떤 것을 ‘진짜’라고 확정하는 의사결정 구조 그리고 사용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인센티브 구조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의사결정 구조를 보자. 비트코인 거래 장부를 가진 컴퓨터 수천 대 중 51% 이상의 컴퓨터가 동일한 거래 내역을 가지게 되면 그 거래는 유효한 거래로 확정된다. 만약 해킹이나 우연한 사고로 N번째 거래가 서로 다른 값을 동시에 갖게 되는 경우에 51% 이상의 컴퓨터에 먼저 저장되는 값이 유효한 값으로 확정되고 다른 값은 버려진다. 즉 비트코인의 의사결정 구조에는 민주주의 기본 원리인 다수결 원칙이 숨어 있다.

또한 비트코인은 복잡한 수식으로 거래 내역을 암호화해 블록을 생성하는데, 개인이 자신의 컴퓨터 자원을 활용해 이 작업에 참여하면 인센티브로 비트코인을 준다. 즉 인센티브를 매개로 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기에는 기술만이 아니라 경제학·심리학 등의 인문 사회학 지식이 내재되어 있다.

다수 개인의 자발적 참여로 ‘거래 안전성’ 확보

다른 방식의 블록체인도 있다. 재미교포 한국인 ‘재권’은 비트코인 방식의 블록체인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속도가 느린 점을 지적하며, ‘텐더민트’라는 새로운 블록체인 알고리즘을 제시했다. 텐더민트 알고리즘은 복잡한 수식을 푸는 과정 없이 거래 참여자의 3분의 2가 해당 거래를 인증하면 그 거래를 유효한 거래로 확정한다. 여기에는 우리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사용하는 가중 다수결 원칙이 들어 있다. 이 구조에서 거래를 위조하려면 최소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분산된 환경(P2P)에서 참여자의 3분의 2 이상이 합심해 속이기는 쉽지 않다는 현실적 판단이 들어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3분의 2가 작당하고 거래를 위조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텐더민트에는 거래를 인증하는 감별사(validator) 제도가 있다. 텐더민트 코인을 가진 사람 중 일정한 기준으로 감별사 자격을 주고, 감별사로 인증된 사람 중 3분의 2가 특정 거래를 인증하면 해당 거래를 최종 승인하도록 했다. 그리고 감별사는 거래를 인증할 때마다 거래액의 일부(거래 수수료)를 인센티브로 나눠 갖는다. 이런 제도를 도입한 것은, 다수의 개인이 거래 체결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거래의 안전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거래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와 정책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처럼 블록체인 구조를 설계하는 데는 수많은 학문들이 녹아들어 있다. 수학·암호학뿐 아니라 경제학·심리학 등 여러 지식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이공계 육성 정책만 내놓으면 ‘과학기술·ICT 융합을 통한 창조경제’가 실현된다고 착각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좋은 기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과학이나, 더 근본적으로는 인문학 등 여러 학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기자명 전명산 (정보사회 분석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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