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 궁금해요? 나는 왜 아이를 낳는지 궁금하던데…. 이상하지 않아요? ‘왜 아이를 낳아요?’라고는 아무도 안 물어보잖아요.” 결혼 3년차 직장인 임서영씨(가명·33) 역시 임신을 우연에 맡겨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임씨는 ‘협박’이라고 표현했다)에 확신 없는 상태에서 임신을 준비하기도 했다. 1년 넘게 기다렸지만 특별한 건강상의 이유가 없음에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 자책과 불안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깨달은 게 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결혼하라고 하고, 결혼을 하고 나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성화였다. 그것이 ‘정상’이고 ‘당위’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식이었다. 임씨가 새삼 놀라웠던 건 그렇게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왜 낳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누구도 명확히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방송작가인 박세훈씨(35) 역시 ‘아이 있는 삶’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결혼 전 아내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임신과 출산에 대한 문제였다. “솔직히 남자는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크게 피해를 보지 않거든요. 그런데 아내는 달라요. 직장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일단 임신 기간에 몸이 무리를 해야 하고, 낳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손이 필요한 게 아이잖아요. 산후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친구들도 많이 봤는데….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굳이 그런 경험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늙으면 외롭다고 하는데, 글쎄요. 안 가본 미래라서 모르겠어요. 지금 행복한데 나중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고요.”

ⓒ시사IN 신선영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준비가 안 된 사람’ 혹은 ‘일반적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없는 인생을 선택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것이다.

미국의 임상심리사인 〈아이 없는 완전한 삶〉(푸른숲, 2016)의 저자 엘런 L. 워커는 현대사회에 세 가지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성인이 되면 으레 부모가 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길인 양 살아가던 세대를 지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임약 덕분에 자녀를 가질지 말지 선택할 수 있게 됐고, 자녀 없이 사는 삶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겼으며, 일부 부모들은 자녀를 낳은 일을 후회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결혼한 성인 남녀, 그중 가임기 여성이 수없이 맞닥뜨리는 질문 앞에서 저자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녀가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얼마나 자주 듣는지 모른다. ‘아이가 없어요’라고 대답하면 난감해한다.” 또래들이 하나둘 아이를 낳기 시작하는 시기를 그저 흘려보내고 있자니 처신하기 힘들고 어색했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부족한 사람 취급을 당하거나 소외감을 느껴야 했던 저자는 ‘아이 없는 삶’을 다룬 책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안 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기로 결심했다. 아이 없는 사람들은 크게 세 분류로 나눌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와 ‘어쩔 수 없이(생물학적 이유)’가 있고, ‘스스로 선택’한 부류가 있었다. 한 인터뷰이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를 낳고 싶은 것이 타고난 욕망인지, 사회 환경이나 동년배들의 시선 때문에 생겨난 욕망인지 잘 구분할 수 없더라고요.”

기자와 만난 사람 중에는 책의 사례와 달리 지극히 ‘한국적’인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들도 있었다.

“이런 나라에서 아이 낳으라고 하는 거 무책임하지 않아요? 저는 세월호 참사 보면서 알았어요. 여기서는 아이를 낳으면 안 되는구나…. 탈조선 할 돈도 없으니까 그냥 저는 제 대에서 멸종을 선택한 겁니다.”(29세 회사원, 기혼)

“출산율로 협박하지 말고 있는 애들이나 잘 돌봤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입양 가는 애들 많지 않아요? 때마다 언론에서 베이비박스 다루잖아요. 그거 해결할 의지가 있나요? 있는 애들도 제대로 못 키우는데 뭘 자꾸 낳으래…. ‘정상 가족’ 해체된 지가 언젠데, 왜 계속 집착하지?”(32세 대학원생, 비혼)

아이를 낳지 않는 지극히 ‘한국적’인 이유

저출산 문제를 여성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에 대한 불만도 상당했다. 여성의 ‘재생산권’을 통제하는 걸로 유지되어온 사회에서 여성의 몸(자궁)은 개인의 몸이 아니라 마치 공공재처럼 인식되곤 한다.

“왜들 남의 자궁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아이를 갖고 싶지만 못 낳는 사람들도 있는데, 임신과 출산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 대해 사람들이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31세 출판편집자, 기혼)

“무슨 돈으로 애를 키워요? 정부가 내놓는 ‘저출산 정책’이 저 같은 비정규직한테는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요.”(33세 회사원, 기혼)

스타의 임신과 출산 소식, 대가족의 삶을 미화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그것이 정상이고 축하받아야 하는 삶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한다. 2009년 폴리 버넌 기자는 〈옵서버〉에 ‘나는 왜 아이를 원하지 않나(Why I Don’t Want Children)’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이를 원치 않는다고 말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라 썼다. 2016년 한국에서 살고 있는 기혼 남성 박세훈씨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해지려면 싸워야 하고, 싸우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기 위해서 아이를 원하지 않고, 그래서 (대를 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집안 어른들과) 싸운다.”

〈아이 없는 완전한 삶〉의 저자 엘런 L. 워커는 “오른손잡이들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왼손잡이들처럼 가족 중심 사회에서 독특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책을 썼다. 아이 없는 삶 역시 다른 삶의 선택지처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모두 있으며, “인생이 제공하는 모든 경험을 전부 해볼 수는 없으니 놓친 경험에 대해서는 크게 마음 쓰지 않고 넘길 수 있어야 한다”라고 다독인다.

저자는 아이를 낳는 대신 반려견 두 마리를 키우면서 살고 있다. “아이 없이 사는 사람이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면 왜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방어적으로 구는 걸까. 나는 누군가 부모가 되기로 했다고 해서 그게 옳은 결정이라느니, 아니라느니 하며 멋대로 판단하지 않았다. 부모가 되는 일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어야 한다.”

그리고 조언한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준비가 안 된 사람’ 혹은 ‘일반적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없는 인생을 선택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거라고. 자신을 상황의 희생자로 여기는 대신 지금처럼 아이가 없는 상태로 살게 되기까지 삶의 여정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엘런 L. 워커는 〈아이 없는 완전한 삶〉을 이렇게 끝맺는다. “아이를 가질지 말지를 놓고 오랜 시간 숙고하는 것은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양상이다. 가임기에 들어서는 젊은이들은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찬찬히 생각할 기회를 누릴 자격이 있으며, 그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인정과 존중을 받아 마땅하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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