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EU와 영국 덮친 브렉시트 후폭풍

영국 청년들이 분노하는 까닭

현실적인 보수주의자, 테레사 메이 신임 총리

브렉시트에도 꺾이지 않은 코빈 지지세

트럼프와 힐러리의 ‘브렉시트 손익계산서’

 

“오는 11월 (대선에서) 미국인들에게도 다시 한번 독립을 선언할 기회가 올 것이다. 무역과 이민, 대외정책 부문에서도 ‘미국인이 먼저다’라는 쪽에 찬성표를 던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최근 영국이 국민투표로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직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득의양양하게 내뱉은 이야기다. 브렉시트(Brexit)로 분노를 표출한 영국인들은 대다수가 백인 노동자로 지구화에서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다. 노년층 가운데 상당수가 ‘탈퇴’에 투표했다. 트럼프로서는 이런 영국인들의 반(反)자유무역, 반(反)이민, 반(反)지구화 정서가 자신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대선 슬로건과 일맥상통한다고 본 것이다. 위스콘신 대학의 캐서린 크레이머 교수(정치학)도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현재 세계적 차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곤경을 겪으면서 비난 대상을 찾고 있었다. 트럼프와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그 비난의 대상(이주노동자 등)을 뚜렷이 제시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영국 국민투표의 결과는, 트럼프가 올해 말 대선에서 선전할 조짐일 수 있다.”

ⓒAP Photo영국의 EU 탈퇴 결정 당시 스코틀랜드에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는 “그들은 그들의 나라를 되찾았다. 위대한 일이다”라고 논평했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와 ABC 뉴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율이 트럼프를 15%포인트나 앞선다. 그러나 만약 브렉시트 현상이 미국에서도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브렉시트에 반대해온 클린턴은 예상과 달리 ‘탈퇴’ 측이 승리하자 일단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불확실한 시기에 미국인의 삶을 보호하려면, 차분하고 경험 많은 사람이 백악관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선거운동 캠프 내에서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에 대한 충격과 당혹감이 크다. 그동안 트럼프는 ‘무슬림 입국 금지’ ‘멕시코와 마주한 국경지대에 불법입국 차단용 장벽 설치’ ‘자유무역협정 개정’ 등을 주장해왔다. 클린턴은 트럼프의 이런 반자유무역·반이민 공약을 맹렬히 성토했다. 그러나 트럼프 측의 주장이, 미국과 함께 글로벌 자본주의를 이끌어온 영국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통해 드러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번 브렉시트 국민투표의 결과는 과연 클린턴보다 트럼프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까? 이에 대한 여론조사나 정치평론가들의 답변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미국 유권자들 역시 반이민·반자유무역 등의 정서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구 구성과 선거 방식 등 여러 측면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미국 대선은 차이가 크다. 민주당 선거전략가인 조 트리피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영국에 비해 인종적·지역적으로 훨씬 다양하다. 트럼프가 흥분했다면 브렉시트 투표 결과를 잘못 읽은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트리피에 따르면, 이민 문제만 해도 양국 국민 정서에는 뚜렷한 온도차가 있다. 영국의 경우, EU가 2000년대 초반에 회원국 간 자유로운 이민을 허용한 뒤 동유럽 주민들의 유입이 급증했다. 현재 영국에 사는 외국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14%에 이른 것은 EU의 이민정책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사정이 다르다. 미국의 문제는, 영국처럼 합법적 이민자가 아니라 1100만명에 이르는 불법 이민자들이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 수준에서 이민을 동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민을 늘려야 한다’보다 7%포인트 많다. 하지만 트럼프가 주장한 멕시코 국경지대 장벽 설치, 무슬림 입국 금지 등 초강경 반이민 조치에 대해서는 여론의 60%가 강하게 반대한다.

유권자의 인종별 분포도 다르다. 이번 브렉시트 투표 결과를 보면, 영국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소수인종 유권자들이 압도적으로 EU 잔류를 선택한 반면 84%인 백인 가운데 상당수가 탈퇴를 선호했다. 미국의 전체 유권자 중 백인 비율은 11월 대선 시점을 기준으로 69% 정도다. 반면 히스패닉과 흑인, 아시아인 등 비백인 유권자 인구는 30%를 돌파할 전망이다. 트럼프가 분노한 백인 노동자층의 지지를 다수 얻는다 해도 비백인 유권자, 특히 히스패닉의 지지 없이는 대선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NBC 뉴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비백인계의 트럼프 지지율은 고작 22%이다.

유권자 인종 분포와 선거 방식 영국과 달라

영국 브렉시트 투표와 미국 대선 투표는 선거 방식도 다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의 경우, 모든 유권자가 직접 투표소에 가서 찬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직접투표 방식이었다. 그러나 미국 대선의 경우, 각 주에서 인구 비례로 선출된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을 통해 대선 후보의 승패를 가리는 간접투표 방식이다. 따라서 히스패닉·흑인·아시아인 등 비백인 유권자들이 상당수 거주하는 대형 주에서 승리한 대선 후보가 백악관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1992년 이후 비백인 유권자들이 다수인 캘리포니아·뉴욕·뉴저지·일리노이·펜실베이니아 등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전체 선거인단 538표 가운데 승리하기 위해선 270표가 필요한데, 비백인 유권자가 많은 6개 주가 무려 166표를 갖고 있어서 트럼프에겐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다.

ⓒEPA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가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히스패닉 유권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처럼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트럼프에게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지만, 클린턴 역시 안심할 형편은 못 된다. 트럼프의 주 공략 대상인 백인 노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이미지는 ‘엘리트 귀족’이다. 그녀가 노동자들의 분노와 좌절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많다. 클린턴은 특히 미국의 자유무역협정을 주도해온 장본인이다. 트럼프가 ‘자유무역협정 때문에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비난해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특히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4년 1월 발효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미국 중서부 산업지대를 몰락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중서부 산업지대에는 오하이오·위스콘신·미네소타·아이오와·미시간 등 대선의 승부를 결정지을 5개 주가 몰려 있다.

애크런 대학의 데이비드 코언 정치학 교수는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미국 노동자들도 유럽 노동자들과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 이들은 지금의 세계경제 체제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느낀다”라고 지적했다. 클린턴이 노동자들의 분노와 좌절감을 해소할 만한 대책을 내놓지 못할 경우, 예비선거 과정에서 버니 샌더스를 지지한 무려 1200만명의 유권자들이 클린턴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이번 브렉시트 투표의 여파로 미국 유권자들이 11월 미국 대선에서 똑같은 분노와 좌절감을 트럼프 지지로 분출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많은 정치분석가들은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적 혼돈이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지속될 경우 트럼프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본다. 트럼프가 이를 오바마의 경제 실정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적 혼돈 외에 정치적 혼란까지 겹치는 상황이 벌어지면 ‘위기 시엔 국정 경험이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힐러리 클린턴의 주장이 훨씬 먹힐 수도 있다.

브렉시트의 거센 돌풍이 대서양을 건너 트럼프와 클린턴 가운데 어느 진영에 더 훈풍을 일으킬지, 아직 예측만 무성하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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