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3일 아침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삼성전자서비스 서울 성북센터 수리기사인 진 아무개씨(44)는 아침 회의가 끝나자마자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는 주차장 대신 서비스센터 앞에 차를 세워놓곤 했다. 서둘러 출발해 최대한 빨리 수리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동료 박제호씨는 진씨를 보며 ‘커피를 한잔하든지, 담배라도 한 대 피우지 또 바쁘게 나가네’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박씨가 기억하는 진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 오후 2시30분, 진씨는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던 도중 빌라 3층에서 추락했다. 진씨는 실외기를 고치기 위해 의자를 받쳐놓고 창 바깥으로 몸을 굽혔다. 몸이 닿자 낡은 난간은 무게를 버티지 못했다. 난간이 통째로 뜯겨 나가면서 그는 실외기와 함께 9m 아래로 떨어졌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간이 심하게 파열돼 의사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진씨는 23년차 베테랑 수리기사였다. 군대 제대 직후 삼성 가전제품 수리 일을 시작했다. 진씨가 떠난 자리에는 아내와 초등학교 5학년 아들, 2학년 딸이 남았다. 차 뒷좌석에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황망한 죽음 앞에서 아내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를 대신해 두 아이가 말을 전했다. 진씨의 아들과 딸은 “우리 가족 걱정하지 마시고 저한테 맡기세요” “우리를 놔두고 가시면 어떡해요. 그러니까 하늘에서 편안하게 쉬세요. 꼭꼭꼭”이라는 메시지를 포스트잇에 써서 아빠에게 보냈다.

ⓒ시사IN 이명익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은 한 시간에 한 건 처리를 기준으로 짜인 일정을 수행한다.

진씨가 사망하고 닷새 뒤, 영화감독 진모영씨를 만났다. 노부부의 사랑과 이별을 담은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연출한 진 감독은 진씨의 사촌 형이다. 진 감독은 1997년부터 1998년까지 1년간 그와 함께 살았다. 진 감독은 사촌 동생이 출근하던 모습이 또렷이 기억난다고 했다. “동생은 항상 단정하게 와이셔츠를 입었다. 그 밑에는 검정 정장바지를 받쳐 입고 정장 구두를 신었다. 한 손에는 커다란 공구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도시락을 들고 나갔다.” 동생 진씨는 항상 바쁜 사람이었다. 아버지 제사에도 번번이 늦었다. 진 감독은 “일이 많아서 늦었다고 하더라. 특히 여름에는 에어컨 고치느라 너무 바쁘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진씨는 성북센터에서 콜(수리 접수)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하루에 보통 3~4건은 더 뛰었다. 수리기사들은 한 달에 기본급으로 130만원을 받는다. 건당 수수료 제도로 월 60건 이상 수리를 해야 그 이후부터 한 건당 수당이 붙는다. 진씨와 16년을 같이 일한 박제호씨는 “정말 일을 열심히 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진씨는 에어컨 실외기 수리처럼 다른 기사들이 꺼리는 업무나, 어려운 수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집안에 잔치가 있어도 급하게 콜이 들어오면 중간에 나와 수리를 하고 다시 돌아갔다. 쉴 틈 없이 바쁜 중에도 후배들이 어려워하는 수리가 있으면 그 집에 들러서 후배를 도와주고 자기 업무를 보러 갔다. 진씨는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노동조합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박씨는 “회사가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친구일 거다”라고 말했다. 진 감독은 “동생이 어렸을 때 집안이 매우 가난했다. ‘열심히 일해서 이 가난의 고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 아이들은 여유롭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무척 강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우수 직원의 죽음 앞에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는 ‘안전장비를 지급하고 안전교육을 시행했다’라며 책임 소재에 대한 선을 그었다. 그러나 박씨는 “회사에서 지급한 안전장비는 사실상 쓸모가 없다”라고 말했다. “안전벨트를 주기는 하는데 건설 현장에 적합한 장비이지 우리처럼 실내에서 작업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다. 가정집에는 안전벨트 끝에 있는 고리를 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유일한 대책은 이동식 발판을 갖춘 스카이차를 이용해 외부에서 작업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상 수리 기간이 끝난 이후에는 15만원에 달하는 스카이차 비용을 고객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스카이차를 부르면 작업 시간이 배 이상 늘어난다. 회사가 한 시간에 한 건 처리를 기준으로 작업 일정을 짜놓은 탓이다. 결국 직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금속노조 산하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진씨가 아닌 다른 직원이 그 수리 작업을 맡았더라도 죽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규탄했다.

“안전이냐 생계냐 양자택일이 되는 거다”

진씨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 와중에도 회사에서는 계속해서 마감 독촉 단체 문자가 휴대전화로 왔다. ‘현재 시간 외근 미결이 위험 수위로 가고 있음’(오후 4시41분), ‘금일 처리 건이 매우 부진함. 늦은 시간까지 1건이라도 뺄 수 있는 건은 절대적으로 처리’(오후 6시52분). 진씨는 이날 밤 9시에 숨을 거뒀다.

동료 박제호씨는 “한 시간 안에 수리를 못 마치면 다른 집에 갔다가 일과 시간 이후에 다시 가는 경우가 많다. 저녁 9시, 심하면 밤 12시에 방문할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일을 해도 미결(처리하지 못한 접수)은 발생한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따르면 수리기사들의 휴대전화에 깔린 애플리케이션 ‘애니존(Any Zone)’을 통해 수리 처리 건수가 회사(서비스센터)와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에 실시간으로 보고된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본사는, 지역 센터는 독립법인 형태로 협력업체 관계라고 말한다. 하지만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본사가 실고용주라고 주장하며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실적을 집계해 전국에 있는 서비스센터의 등급을 매긴다. 미결률이 높은 서비스센터에는 심한 압박이 들어온다. 원청에서 실적 압박을 받으면 그 압박은 서비스센터 직원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삼성전자서비스 홍보팀 관계자는 “애니존 애플리케이션을 보급한 건 맞지만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실시간으로 보고받지는 않는다”라고 밝혔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제공사망한 진 아무개씨의 자녀들이 포스트잇에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담았다(왼쪽). 아내가 싸 준 도시락은 마지막 유품이 되었다.

회사의 독촉이 외부에서 오는 구속이었다면, 건당 수수료 제도는 수리기사 스스로를 옭아매게 만들었다. 한 수리기사는 “여름철 성수기에 무리해서라도 콜을 최대한 많이 받아야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안전이냐 생계냐 양자택일이 되는 거다”라고 말했다.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인 서비스센터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은 ‘비용 절감’과 ‘고객 만족’을 추구했다. 공고한 체계 속에 수리기사의 안전을 위한 완충제는 없었다. 진씨는 이 길을 지독히도 성실히 따랐을 뿐이었다.

수리 처리 애플리케이션과 건당 수수료 제도로 인해 수리기사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지적에 대해 삼성전자서비스 홍보팀 관계자는 “협력사와 함께 안전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스케줄이 빡빡하다고 하지만 1건당 1시간이 걸리지 않는 수리도 많다”라고 말했다.  

6월26일 화장터에서 가족들은 맥주와 마른 오징어를 준비했다. 진씨가 딱 하나 즐기는 게 퇴근 후 맥주였다. 진모영 감독은 “하루 종일 빌라와 아파트를 오르내리며 땀을 흘린 후 집에 와서 마시는 맥주 한 캔이 어떤 맛이었을까”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줌 재로 돌아온 아들 앞에서 진씨의 어머니는 넋두리처럼 말했다. “불쌍한 내 새끼. 평생 종노릇만 하다 갔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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